감동과 웃음, 그리고 눈시울을 붉힌 세시간이었다. 미주한인 최초의 창작뮤지컬로 관심을 모은 ‘자화상(自畵像)’이 배우가 급작스런 사고로 타계하는 슬픔을 딛고 성공리에 공연을 마쳤다.
9일 밤 뉴저지 놀우드(Norwood)에 있는 뉴저지초대교회 공연장, 극의 연장선과도 같은 슬픈 에필로그가 펼쳐졌다. 박수와 환호속에 무대 인사를 마친 배우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도열하자 관객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배우들은 벌써 눈자위가 촉촉이 젖고 있었다. 잠시후 배우 최유진 씨가 사진하나를 품고 막 뒤에서 걸어나왔다. 까만 테두리의 액자, 그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중년의 여성.
윤인석 씨였다. 연극배우겸 성우로 이름을 날렸던 ‘자화상’을 공연한 극단 M.A.T의 최고참 배우였다. 성서뮤지컬 전문극단 ‘여디디아(대표 송태경)’와 연극전문인들의 극단 ‘메타 퍼포먼스 그룹(대표 임홍주)’이 통합후 첫 무대로 기획한 ‘자화상’은 지난달 19일부터 매주말 4회 연속 뉴욕과 뉴저지 필라델피아 등에서 공연이 계속되고 있었다.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비보가 날아든 것은 지난 2일 필라델피아에서 세 번째 공연을 마치고 메릴랜드의 집으로 귀가하던 윤인석 씨가 다음날 새벽 집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幽明)달리했다. 윤인석 씨는 최유진 씨와 함께 더블 캐스팅(피은혜 역)으로 출연, 이날이 마지막 공연이었다.
9일 뉴저지초대교회에서 최종 공연을 앞두었던 연출진과 단원들은 급작스런 타계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충격과 당혹속에 경황없는 며칠을 보낸 단원들은 장례식을 지내며 마지막 무대를 고인을 위한 헌정공연으로 기획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평생 연극을 사랑한 고인의 뜻을 기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선지 이날 공연에 임하는 배우들은 어느때보다도 혼신의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자화상’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연극이자 뮤지컬이다. 실제로 오간 배우들과 참여자들의 대화 극적인 장치를 더한 작품으로 ‘복음과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과정을 극본으로 담았다.
배우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연극대본의 공동 참여자가 되었다. 찬반논쟁과 갈등, 이해와 화합의 과정이 정교한 극적 장치를 통해 연극적 재미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포획할 수 있었다.
‘자화상’은 연출가와 배우들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공동대표인 연극인이자 법조인 송태경 변호사와 임홍주 상임연출가의 캐릭터인 성경택 역(황길재 분)과 연출가 역(최훈민 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덕분에 “성극의 상식을 깬 파격”, “믿는자들의 위선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충격”이란 세간의 평가속에 신앙인들 모두가 공감하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고 윤인석 씨가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복음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토로한 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자화상의 감동적인 에필로그였다.
헌정 공연을 마친 후 배우들과 함께 단상에 선 최유진씨는 고 윤인석씨를 기리는 글을 낭송하며 고인이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내가 한 대사 하나하나가 바로 나를 위한 소리였다”고 너무도 흡족해 했다는 사연을 들려주어 장내를 숙연케 했다.
“자화상 공연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친 지난 9개월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는 임홍주 연출가는 “윤인석 선배님은 진정한 연극인이었다. 애통한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겠다. 이번 공연에 대한 반응이 아주 뜨거워 연장공연을 계획하고 있다”이라고 귀띔했다.
놀우드(뉴저지주)=민지영특파원 jymin@newsroh.com
<꼬리뉴스>
‘자화상’..배우 성악가 등 실력파 연기자 총집결
‘자화상’은 뉴욕 일원의 실력파 배우들과 성악가 등이 집결해 연습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뮤지컬배우 최유진, 오프브로드웨이 극단에서 활약한 박지은, 성악가 출신의 보컬트레이너 신혜지, 타고난 노래꾼 권주리, 영화연출가이자 연극인 황길재, 미국서 공부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평가받은 구본훈과 차세대연극인으로 각광받는 최훈민, 김수아 등 탁월한 재능의 연기자들이 힘을 합쳤다.
무대밖의 든든한 조력자들도 자화상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추계 예술대학교 작곡과와 NYU대학원 뮤지컬 작곡과를 졸업한 황민정 음악감독은 뮤지컬 ‘The three Ninjas’, ‘Kira Starcloud’ 와 단막극 당선작 ‘It’s Me‘로 실력을 인정받은 주인공. 이 작품을 위해 ‘나의 고향 그곳’과 ‘그분의 약속’ 등 여섯 곡을 작곡하고 키보드 연주자로 직접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종은 안무가와 함께 안무를 책임진 이경준은 푸름 발레단 수석 단원 출신으로 현재 뉴욕 PCDC 컨템포러리 무용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촌철살인의 짧은 대사로 극적 재미를 안겨준 ‘박삼규 역’을 맡기도 했다.
이밖에 김원근 무대감독과 의상(나윤정), 소품(육윤희), 연주팀의 김일곤(베이스기타) 박주연(기타), 김훈용(드럼) 씨 등이 작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