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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요동요서 위치 소고(3)

백이숙제묘가 있는 곳이 孤竹國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0-07-19 (일) 23:20:03

 

다음은括地志(괄지지)󰡕의 기록이다. “고죽의 옛성은 노룡현 남쪽 20리에 있고 지금의 영평지방 18리에 있는 보(:행정단위). 즉 옛 노룡새이다. 영평부는 한나라의 우북평이다. 백이숙제(伯夷叔齊)의 사당이 영평부에 있다." (李泰, 󰡔括地志󰡕, “孤竹古城在盧龍縣南十二里 今永平地方十八里堡 卽古盧龍塞也 永平府卽 漢之右北平 夷齊廟在永平府https://baike.baidu.com/itm.) 라하여 한()나라 때 우북평이라 부른 노룡현인 영평지방에 백이숙제의 묘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노룡현에는 옛 고죽성이 있고 백이숙제의 나라였다. 전국시 연()에 속했다. ()나라의 우북평과 요서 두 개의 군()이다. ()나라 때는 요서군이다. 후위(後魏) 역시 요서군이라 했다. ()나라 초에 평주라 했다. 수양제가 주를 폐지하고 다시 평주라 하였다.” (杜佑, 󰡔通典󰡕 178, 주군8 平州: “平州今理盧龍縣, 殷時孤竹國, 春秋山戎肥子二國地也. 今盧龍縣, 有古孤竹城, 伯夷叔弟之國也. 戰國時屬燕, 秦爲右北平及遼西二郡之境, 二漢因之, 晉屬遼西郡. 後魏亦曰遼西郡. 隋初置平州, 煬帝初州廢, 復置北平郡. 大唐因之領縣二.”)󰡔통전󰡕이 말해주고 있다.

노룡현(영평부)에 대한 󰡔百度百科(백도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원나라에서는 영평로라고 불렀고 중서성에 직속시켰다. 명나라 홍무 2(1369)에 평란부로 고치고 하남분성에 속하였다. 홍무 4년 영평부로 고치고, 이후 북직이(北直隶)로 바꿔 속하였다.... 은나라 상나라 때는 고죽국의 땅이다. 춘추(春秋) 때는 북연에 속했다. 후에 비자국에 속하였다. 진한(秦漢)부터 진()에 이르기까지 유주 요서군에 속하였으며 수나라 개황 18(598)부터 노룡현을 설치하고 북평군에 속하였다. ()부터 요·금에 이르기까지 평주에 속하였고, ·금 때, 이곳을 평주로 고쳤으며 원나라 때 이곳은 영평로의 치소이다.... 명나라 때부터 이곳을 영평부로 고쳐 불렀다.” 󰡔百度百科󰡕 https://baike.baidu.com/item/永平府/4692407?fr=aladdin#1

(“元朝称为永平路直属于中书省. 明朝洪武二年改为平滦府属河南分省.洪武四年改永平府.此后改属北直隶....殷商时期为孤竹国地春秋属北燕后为肥子国.秦汉至晋均属幽州辽西郡.隋开皇十八年公元598始设卢龙县属北平郡.唐至辽金时期属平州金时将这里改称平州元朝时这里是永平路的治所....从明朝起这里又改称为永平府”) 라고 설명하고 있다.

 

노룡(영평지방)은 은나라 상나라 때에 고죽국의 땅인데 춘추시기(770-403BC)에는 북연에 속했으며 후에 비자국에 속했다. ()나라 때부터 유주 요서군에 속했고, 수나라 때인 598년에 노룡현을 설치했다. 명나라 때인 1369년에 노룡현을 평란부로 고치고 하남분성(河南分省)에 속하게 했다. 하남분성에 속했다는 것은 산서성과 하남성이 황하로 경계를 이룬 가까운 인접 지역이였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문에서 언급한 비자국은 산서성(山西省)에 있었다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중국역사지명대사전󰡕이 잘 입증하고 있다. (臧勵龢等, 󰡔中國古今地名大辭典󰡕 (臺灣: 尙務印書館, 1982), 4, p. 1230. “盧龍縣: 商孤竹國, 春秋爲肥子國.”; 魏嵩山 主編, 󰡔中國歷史地名大辭典󰡕 (廣州: 廣東敎育出版社, 1995), p.684. “肥國: 春秋時方國之一. 在今山西昔陽縣東后爲晉所滅.”; 臧勵龢等, 앞의책, 2-3, p.529. “: 春秋時夷國, 子爵, 今山西昔陽縣東五十里有昔陽故城, 卽其國都, 后爲晉所滅.”; 魏嵩山 主編, 앞의책, p.631. “昔陽縣: 1914年以樂平縣改名, 治所卽今山西昔陽縣.”) 오늘날의 하북성에 있다는 노룡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곳의 지명이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결국은 이들 지명들은 모두 산서성 남서부에 있는 지역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왕조의 흥망과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같은 지명이 여러 이름으로 불려진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노룡(盧龍)’이라는 지명은 먼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산서성 남서부의 백이숙제의 나라인 고죽국에 있던 지명이 아닌 것이다. 결정적인 근거가 바로 유수(濡水)’라는 하천과 수양산인 중조산(中條山)’이다. 유수는 백이숙제(伯夷叔弟)의 나라인 고죽성(孤竹城)의 서쪽으로 흐르는 오늘날의 산서성 서남부에 있는 하천이라는 사실이다.

(󰡔水經注󰡕 ()(三民書局印行, 2011), pp.594-597, “[濡水]: 濡水從塞外來 東南過遼西令支縣北, ... 濡水又東南逕盧龍故城東... 濡水又東南流逕令支縣故城東... 分燕置遼西令支隷焉. 󰡔魏土地記.. 肥如城四十里 有濡水, 南流逕孤竹城西, 右合玄水, 世謂之小濡水, 非也.”)

󰡔水經注(수경주)󰡕는 유수(濡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유수(濡水)는 북쪽 변경 밖에서 동남쪽으로 흘러오다가 요서(遼西) 영지현(令支縣) 북쪽을 지나간다. ... 유수는 다시 동남으로 흘러 노룡새(盧龍塞)를 지난다. ...유수는 다시 동남으로 흘러 노룡(盧龍)의 고성(故城) 동쪽을 지나간다. 이 고성은 한()나라 건안(建安) 12년에 조조(曹操)가 답돈을 정벌할 때 쌓은 성이다. ...유수는 다시 동남으로 흘러 영지현(令支縣) 고성(故城) 동쪽을 지나는데 이곳이 왕망의 영씨정(令氏亭)이다.

진시황 22년에 연()나라를 갈라 요서군(遼西郡)을 설치한 뒤 영지현을 예속시켰다. 󰡔魏土地記(위토지기)󰡕에서 말하길 비여성(肥如城) 서쪽으로 10리에 유수가 있는데, 남쪽으로 흘러가는 물은 고죽성(孤竹城) 서쪽을 지나간다. ... 󰡔地理志(지리지)󰡕에서 말하길 노수(盧水)는 남쪽에서 현수(玄水)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현수는 다시 서남으로 흐르다가 고죽성(孤竹城) 북쪽을 지나 서(西)로 흘러 유수(濡水)로 들어간다. 그래서 󰡔地理志(지리지)󰡕현수가 유수의 동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地理志(지리지)󰡕에서 말하길 영지(令支)에는 고죽성(孤竹城)이 있는데, 고죽성은 옛 고죽국(孤竹國)이다라고 하였다.

󰡔史記(사기)󰡕에서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이다라고 했는데, 이곳에서 나라를 사양하였고,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다.

()나라 영제(靈帝) 때 요서태수 염번(廉翻)이 꿈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내가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백이(伯夷)의 아우이다. 요해(遼海: 요수와 황하의 만나는 곳의 물) 에 나의 관()이 떠돌고 있는데, 그대가 착하고 어질다하니 잘 묻어주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다음날 가보니 과연 물 위에 떠있는 관이 있었다. 아전들 중에서 그 관을 보고 웃는 자들은 모두 까닭없이 죽었다. 이에 다시 잘 묻어 주었다.

 

󰡔晉書(진서)󰡕 「地道志(지도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요서(遼西) 사람들이 요수(遼水)에 떠 있는 관을 깨려고 했으나 관 속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죽군(孤竹君)이다. 너희들이 나를 깨면 어쩐단 말이냐?’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사당을 세워 주었다.’라는 글이 있다. 사당은 산 위에 있고, ()은 산 옆에 있다. 비여현 남쪽 12리에는 흐르는 물들이 모이는 곳이다. ...

유수(濡水)는 다시 동남 류현(絫縣) 갈석산(碣石山)에 도달한다. 문영(文穎)이 말하길 갈석산(碣石山)은 요서(遼西) 류현에 있다라고 했다. ... 󰡔地理志(지리지)󰡕에서 말하길 대갈석산(大碣石山)은 우북평 려성현 서남쪽에 있는데 왕망이 이를 게석(揭石)으로 바꿨다라고 하였다.

옛날 한무제(漢武帝)도 대갈석산에 올라 망망대해(황하)를 바라보고 이곳 돌에 공적을 새겨 놓았다. 지금도 황하에는 우뚝 솟아오른 돌들이 수십 리나 늘어서 있다. 산위에는 큰 돌이 기둥 같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곳에 서 있으면 종종 큰 황하의 바닥을 볼 수 있다. 조수가 많이 몰려 올 때는 물에 묻혔다가 조수가 물러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얼마나 깊고 얕은지 알 수 없기에 세상 사람들은 천교주(天橋柱)라 이름 붙였다. 마치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같지만 저절로 생긴 돌이다. 위소(韋昭)도 그 돌을 가리키면서 이게 갈석(碣石)이다라고 하였다. ...

(󰡔水經注󰡕14, [濡水]: “濡水從塞外, 來東南過遼西, 令支縣北. ... 濡水又東南逕盧龍塞 塞道自無終縣東出渡濡水 向林蘭脛 東至淸脛 盧龍之險 峻坂縈折 故有九䋫之名矣.... 濡水又東南逕盧龍故城東 漢建安十二年 魏武征蹋頓所築也. 濡水又南 黃洛水注之 水北出盧龍山 南流入于濡. 濡水于東南 洛水合焉 水出盧龍塞西 南流注濡水. 濡水又屈而流 左得去潤水 又合敖水 二水竝自盧龍西注濡水. 濡水又東南流逕令支縣故城東 王莽之令氏亭也 秦始皇二十二年 分燕置遼西郡 令支隷焉. 󰡔魏土地記󰡕曰 肥如城西十里有濡水 南流逕孤竹城西. ...󰡔地理志󰡕曰 盧水南入玄. 濡水又西南逕孤竹城北 西入濡水. 󰡔地理志󰡕曰 玄水東入濡. 盖自東而注也. 󰡔地理志󰡕曰 令支有孤竹城 故孤竹國也. 󰡔史記󰡕曰 孤竹君之二子伯夷叔齊 讓國于此 而餓死于首陽. 漢靈帝時 遼西太守廉翻夢人謂已曰余孤竹君之子 伯夷之弟 遼海漂吾棺槨 聞君仁善 願見藏覆 明日視之 水上有浮棺 吏嗤笑者皆無疾而死 于是改葬之. 󰡔晉書󰡕 「地道志曰 遼西人見遼水有浮棺 欲破之語曰 我孤竹君也. 汝破我何爲 因爲立祠焉 祠在山上 城在山側 肥如縣南十二里 水之會也.... 濡水又東南至絫縣碣石山 文穎曰 碣石在遼西絫縣. ... 󰡔地理志󰡕曰 大碣石山在右北平驪成縣西南 王莽改曰揭石也. 漢武帝亦嘗登之以望巨海 而勒其石于此. 今枕海有石如甬道數十里 當山頂有大石如柱形 往往而見 立于巨海之中 潮水大至則隱 及潮波退 不動不沒 不知深淺 世名之天橋柱也. 狀若人造 要亦非人力所就 韋昭亦指此以爲碣石也.”)

사마천의 󰡔사기󰡕에는 지리지가 없다.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부터 왕망(王莽) 때까지 서한(西漢) 200여 년 동안의 일을 기록한 반고의 󰡔한서󰡕에 비로소 지리지가 나온다.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지리지이다. 강의 위치를 확인해야 땅의 위치를 알 수 있었기에 반고는 산과 하천을 중요하게 여겼다. 9주의 하나인 형주(荊州)를 설명한 󰡔한서󰡕 「지리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荊及衡陽 惟荊州 江漢 朝宗 于海 九江본문에서의 강한(江漢)이란 장강(長江)과 한수(漢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은 한수로 오늘날의 섬서성 영강현(寧羌縣)에서 발원하여 지금의 무한(武漢)에 이르러 장강과 합류한다. 마치 요수(遼水)가 해()라는 별칭의 황하와 합류한 물을 요해(遼海)라고 한 것과 같다. 내륙의 하천이 황하로 들어갈 때 황하를 해()라고 표현한 것을 지리지지명대사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유수(濡水)를 기록한 본문은 산서, 섬서, 황하가 굴곡하는 지역을 설명하고 있음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따라서 요해(遼海)는 산서성 북쪽에서 발원한 요수(遼水)가 남쪽으로 흐르다가 곡옥에서 물이 남서쪽으로 굽어 해(황하)로 들어가 두 물이 합류한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지금의 하북성에는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먹었다는 수양산(首陽山)인 중조산(中條山)이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首陽山 (李吉甫撰, 󰡔元和郡縣圖志󰡕 [], 中國古代地理總志叢刊(北京: 中華書局, 2005, p.349, “雷首山一名中條山今按..括地志云..‘蒲州河東縣雷首山, 一名中條山, 亦名歷山, 亦名首陽山, 亦名襄山, 亦名甘棗山, 亦名猪山, 亦名獨頭山, 亦名蒲山, 亦名吳山. 此山西起雷首, 東至吳坂, 凡十一名. 蒲山卽襄山, 括地志擧十一名, 實只九名. 通典有八名, 不數雷首山, 太平寰宇記與通典同, 惟加陑山爲九. 此志只擧中條, 疑有脫文.”

孫星衍,󰡔括地志󰡕,正覺樓叢書,[],“陶城在蒲州河束懸北一十里即舜所都也南去仙山不選或陶所在則可何必定陶防隔附舜陶之陶也斯或一疏(史記五帝沐紀匠義)蒲州河東縣雷首山一各中條山亦名歷山亦名首陽山亦名蒲山亦名襄山亦名甘棗山亦名豬山亦名獨頭山亦各薄山亦名吳山此山西起雷首山東至吳叛凡十一名隨州縣分之(史記五帝)”,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https://ctext.org/wiki.pl?if=gb&chapter=871051) 은 현재의 中條山으로 山西省 남부에 있는 산이다. 하북성에 있다는 수양산을 중조산이라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유주(幽州)에 속하는 영지(令支)에 있는 고죽성(孤竹城)은 백이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 죽었다는 고죽국으로 산서성(山西省) 남서쪽 황하(黃河) 근처에 있는 현재의 영제시(永濟市)이며, 영평(永平), 평주(平州), 노룡(盧龍),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유주(幽州), 갈석(碣石) 모두 산서성에 있던 지명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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