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단톡방 지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김정은위원장 급변설에 관한 내용을 아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루머는 지난 4월 15일 태양절 행사에 김정은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으면서 급속히 퍼졌는데 이미 수년전에 떠돈 것을 다시 누군가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꼼꼼이 읽어보면 싯점도 다르고 앞뒤가 안맞는게 보여 가짜 정보라는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뜬금없이 “아시안게임 중 방한한 북한 실세 3인방이 현재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둥 2014년말 강제 해산된 “통합진보당 최고지도부가 멘붕 상태”라는둥 타임머신 소환도 아니고 5년도 더 된 '찌라시'가 SNS를 통해 맹렬히 퍼지는 것을 보니 황당합니다.
언론인으로서 개탄스러운 것은 이번 일을 통해 기성 언론의 병폐(病弊)들이 또다시 드러난 것입니다. 세계적인 뉴스채널 CNN은 20일 김위원장이 수술후 심각한 위험에 처한 정보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근거는 익명(匿名)의 정부 인사(according to 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 입니다. 두 번째 정보제공자는 “관련 보도를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세번째 관계자는 “김위원장 건강에 관한 사안은 신뢰하지만 심각성을 평가하긴 어렵다”고 싱거운 소리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실명을 밝힌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은 “관련 보도를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고 재탕을 합니다.
CNN 기사엔 익명 3명, 실명 1명의 정보제공자가 등장했지만 김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확인해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관련보도를 주의깊게 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과연 이게 기사의 요건이 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CNN의 무리한 보도는 데일리NK라는 국내 인터넷 미디어에 의해 촉발됐습니다. 데일리NK는 김위원장이 12일 향산군에서 심혈관 수술을 받았고 현재 가료중이라는 보도를 20일 오후 5시경(한국시간) 올렸습니다.
기사는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것으로 착각할만큼 상세합니다. ‘전해졌다’ ‘알려졌다’ ‘내부소식통’만 없다면 말이죠. 데일리NK는 서울 마포에 사무실이 있는 북한전문 미디어입니다. 북에 있다는 소식통을 인용해 많은 기사들을 쏟아내고 영어 번역판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CNN 등 서방 매체들이 기사들을 참조하기 쉬운 조건입니다.
데일리NK가 보도할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국내언론들은 CNN 기사에 호떡집 불난 듯 속보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언론의 보도를 미국의 유력언론이 따라쓰면 다시 전체 한국언론이 인용 보도하는 행태가 되풀이된 것입니다. 정작 CNN은 “대북정보 수집은 미정보국도 큰 끔찍하게 어렵다, 2014년에도 (발목수술로) 한달여 공백이 있었다”고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입니다.
언론의 보도는 믿을만한 제보자가 있다해도 신중해야 합니다. ‘아니면 말고’의 무책임한 보도는 언론의 임무를 포기한 것입니다. 진위(眞僞)를 확인할 때 눈여겨 볼 것은 정황 등 간접 증거입니다. 만일 급변이라면 군부 움직임과 인공위성 정보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합니다.
남측과 미국의 정보당국이 소위 ‘휴민트’라고 해서 탈북자와 밀무역을 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를 모아서 분석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태영호같이 고위급 탈북자가 제공하는 것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는 떨어집니다.
북에서 최고 기밀중의 기밀인 최고지도자 동향이나 건강문제를 시시콜콜 제보할 수 있는 내부자라면 그는 상식적으로 ‘이너서클(핵심 권력층)’이어야 합니다. 북 권력의 최고 상층부에 있는 사람이 남쪽의 언론, 그것도 일개 인터넷 매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제보 활동을 한다구요? 데일리NK를 무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번 보도에 대해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주성하기자가 21일 낮 페이스북에서 ‘완전 오보’라고 반박했습니다. 주기자는 “완전 확실한 정보 받았다. 민감하니 나중에 풀겠지만 결론은 김정은 향산, 평양 병원 의사 수술설은 100% 오보라고 단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성하기자는 앞서 페북에 “추신= 김정은 이상시 동정 낌새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는 북한 내부 소식통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왔다. 받은 자세한 정보는 공개가 어렵지만 종합하면 위에 내가 서술한 내용이 맞다는 확증이다”라고 했더군요. 이쯤되면 북의 상층부에 있는 고급 정보원들이 남쪽 언론을 위해 복수로 활약(?)한다는 것이니 기함(氣陷) 할 노릇입니다.
북은 지난 수년간 천지개벽(天地開闢)의 급속한 변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3년전까지 북을 정기적으로 방문한 이들조차 최근 평양 등 북녘 모습과 달라진 것들을 들려주면 눈 크게 뜨고 놀라곤 합니다. 하물며 북의 종말을 원하는 일부 탈북자들이 5년, 10년도 지난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해봐야 ‘흘러간 유행가’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북을 베일에 싸인 은둔의 왕국이라고 폄하(貶下)합니다. 남측과 서방의 편견과 오해입니다. 북에 관한 정보가 없다구요? 북을 타도와 전복의 대상으로 놓았기때문입니다. 우리는 북을 제대로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속속들이 알고 싶다면 지난 70년간 북이 요구한대로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맺고 다른 나라들처럼 우호관계를 맺으면 됩니다. 대사관도 설치하고 언론사 지국도 내면 그렇게 바라는 고급정보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요즘 북녘 사람들은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런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리 언론입니다. 더이상 억측으로 헛다리 짚지 말고 민족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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