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학교가 쉬는 연방공휴일인 오늘 집에서 쉬면서 음악을 듣기 위해 앨범 하나를 골랐다. 그 중 에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새 것을 집어 들었다. 겉 껍질이 온통 금빛이라 유치하다 싶어서 아예 열어보지 조차 않았던 것으로 금장을 둘렀다고 해야 하나 금박을 입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지간에 온통 황금 빛이다.
지난번 앨범을 받아 들면서 ‘어쩜 이렇게 촌스럽게 그리고 유치하게 만들었을까’ 싶어 실소를 금치 못했었던 것이었는데 그 빤찔거리다 못해 눈이 부시기까지 한 표지를 만지작거리다가 궁금해졌다. 하나같이 힙합 가수들은 왜 그토록 황금에 목을 매는 것일까? 목이 휠 정도의 수도 없이 걸치는 금 목걸이, 서넛씩 끼는 뭉툭한 금반지,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금테 굵게 두른 선글라스 심지어는 금니까지…… 그러다가 막연하게나마 ‘황금’과 힙합가수와는 밀접함이 느껴지는 듯도 싶었다.
다시 말해서 손바닥으로 그 답이 전해져 왔다고 해야 할까. 대부분의 힙합가수들이 그렇듯이 황금 장신구(裝身具)를 걸친다는 것은 분명 부자를 뜻함과 동시에 그들의 지난 가난한 환경 즉, ‘게토(Ghetto)’를 벗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황금을 통한 바램이 앨범 표지까지도 그렇게 금빛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힙합의 제왕(帝王)이라는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 를 만나 악수할 때 씨익~ 웃던 그의 치아에서 돋보이던 금니와 금테 안경도 그랬었고 지난 겨울 자선모금 파티에서 만났던 제이 지 ‘Jay-Z’ 역시도 상징처럼 굵은 사슬의 목걸이도 금이었지 않은가.
그 두 힙합 제왕들이 뉴욕공연에 이어 뉴저지에서도 콘서트를 가져 지난 11월 다녀왔다. 힙합이란 쟝르에 대해서 무지한 수준인 나는 욕설이 난무(亂舞)하는 허접한 흑인들의 음악 쟝르 정도로만 인식을 하고 있었던 터라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개인적으로 제이지와 카니에 웨스트 라는 가수들을 가까이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힙합 공연’까지도 물어서 다녀오게 되었다.
우연한 계기란 다름아닌 미드타운의 컴퓨터 매장에서의 일이다. 내 뒤에 흑인 청년 한명이 서 있었는데 회색 모자가 달린 평범한 회색 운동복 차림의 그를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고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덩치가 큰 경호원 몇몇이 인파로부터 제지하기 위해 막아섰고 마침 그의 앞줄에 서 있던 나는 순간, 유명한 사람인듯 싶으니 일단 악수부터 하고 보자 싶어 악수를 청했고 내친김에 사인까지도 받았다.
그의 친절함에 고마워서 이름도 익히 알고 있음을 주지시켜 주고 싶은 마음에 ‘와, 당신이 그 유명한 코비 브라이언트군요. 반갑습니다’ 그날 밤 집에 와서 사인 받은 정황(情況)을 들은 옆지기가 뒤로 넘어갔다.
‘아니, 힙합으로 최고로 유명한 그를 두고 성 스캔들을 일으킨 농구선수 이름을 대다니~’. 그러면서 지난 생중계 되던 그래미 시상식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흑인들을 혐오한다’ 라는 발언으로 한때 물의를 빚었던 그 힙합 가수가 바로 카니예 웨스트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그런 황당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었구나, 모르면 그냥 잠자코 있었어야 했는데…… 그 놈의 쓰잘데 없는 오지랖이 결국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의 실수를 계기로 그 가수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생겼으며 근자에는 ‘제이지’가 여는 자선모금 파티에서 사진을 찍다가 그만 플래쉬가 눈 앞에서 파파팍 터지는 바람에 그와 눈을 마주쳐야 했던 무안한 기억이 있었던 터라 두 사람의 공연을 더 보고 싶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우여곡절을 겪고서 공연이 열리기 몇시간 전에서야 어렵사리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힙합 공연과는 너무 동떨어진 복장이라 고민이 되었다. 오래 전 파리에서 유명한 헤비메탈 공연을 갔을 때 밋밋한 차림으로 가서 뻘쭘했던 기억도 있는데다 관중들의 뭇매 어린 시선을 통해서 ‘말없는 수모’를 당했던 기억도 새로웠기 때문이다. 일단 관중을 김새게 하는 복장은 최소한 면해야지 싶어 공연 보기 앞서 옷을 구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뒤집어 눌러쓴 힙합 모자, 헐렁한 옷, 푸대 자루를 방불케 하는 통바지를 고무줄로 대충 묶고 나니 나름 성의를 보였다고 여겼는지 관중들의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아시안이, 더군다나 중년 여성이 힙합을 다 감상 할 줄 아는 것 같다는 긍정적인 눈길을 넘어 폭발적인(?) 관심과 사진촬영까지도 제의를 받았다.
▲ 힙합 공연이 열린 애틀란틱 시티의 컨벤션 홀
공연장은 유서깊은 컨벤션 홀로 1만5000 명이 넘는 팬들이 빼곡하게 운집하였으며 90 프로가 흑인들로 채워져 있었다. 백인, 히스패닉, 아시안은 가뭄에 콩나듯 보일 정도였으니 우리 두사람의 위치는 거의 독보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하튼 한껏 성장(盛裝)을 하고 멋을 낸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로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주급 전부를 털어 온 듯 보이는 이들도 적쟎은듯 싶어 보였다. 그냥 공연을 보러 온 느낌을 벗어나 진한 형제애를 느끼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다른 여타의 공연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뭐랄까 ‘진하면서도 뭉클함이 느껴지는’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무대엔 단 두 사람뿐이었다. 반주도 밴드도 없었다. 무선 마이크 만을 잡은 두 사람이 대형 비디오 화면을 배경으로 심장을 때리는 듯한 빠른 비트의 리듬속에서 거친 숨소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알아듣기 힘든 빠른 노랫말과 혼잣말 같기도 한 독백(獨白)들이 반복되는 소리속에 공연장을 뿌연 스모크한 분위기 속에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관중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이 하나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들은 환호하였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스스로 위로 받고 있는듯 싶었다. 힙합의 제왕들은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노래하였다. 공감하면서 받아치는 느낌이 마치 판소리 공연과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음유시인(吟遊詩人)처럼 끊임없이 읊조리기도 하고 더러는 중얼거리고 동네 친구들이 어울려 웅얼대는 그런 느낌 속에서 외계인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낯설음도 느껴졌다.
나름 동화되려고 애썼고 그들의 제스츄어도 분위기에 맞게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들을 올곶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이방인(異邦人)에 불과한 느낌이 들었으며 사이사이 섞어진 욕설과 속어들은 공연을 맛깔나게 해주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는듯 했다. 노랫말을 다 못알아 듣는것도 몰입하기 어려웠지만 정작 문제는 그들이 겪은 것을 같이 공감할 수 없는 것이 한계로 여겨졌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아니면 절대 공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엄연히 존재했다. 그저 듣고 본 전해들은 것을 토대로 그들의 삶을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어슴푸레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흑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실제로 경험 해 보지 않고서 어찌 이해될 수 있을까 그리고 거칠고 힘든 환경에서 자라고 차별과 편견이 만연(蔓延)한 사회에서 살면서 조상 대대로 거슬러 당한 아픔과 생채기가 있는 그들의 삶을, 그 삶이 녹아든 힙합을 어찌 두어시간 공연으로 감히 공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무대와 객석은 구별되지 않았다. 그들은 공연을 통해서 하나가 되었고 토해내는 노랫말을 통해서 공감하고 서로 위로받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놀라운 것은 또 있었다. 관중 대부분이 길고도 긴 노랫말들을 거의 다 아는듯했다.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두 손을 위로 높이높이 치켜들면서 온몸으로 던지는 그 메시지는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힙합은 사회를 향한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향한 노래이기도 했다. 뿌듯함, 아픔, 자긍심, 우울함, 기쁨, 소외감, 자존감, 분노 등이 뒤엉켜 있었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피어내야 할 희망을 두 힙합의 제왕들은 강렬하게 노래하고, 아니 부르짖고 있었다. 마치 주술사(呪術師)가 된 것처럼 청중들을 향해 ‘희망’을 주지(周知)시키고 있었다.
▲ 팬들 대부분이 이런 동작으로 손들을 높이 치켜 올렸다.
힘들고 모진 환경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서는 결국엔 그 꿈도 이룰 수 있음을 반복적인 노랫말로 되뇌이고 있었다.
그 ‘언젠가는 도래 할 기회’ 덕분 이었을까? 공연 당일이라 그나마 몇 장 남지 않아서 아주 어렵사리 구했던 싼 표였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운까지 주어졌다. 무대조차 가려서 보이지 않는 아주 후미지고 가장 헐한 가격의 65불짜리 좌석이었음에도 우리는 기꺼웠으며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되었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최측이 오더니 관객 몇 명을 무작위로 300불이 넘는 무대 바로 앞의 오케스트라 좌석으로 옮겨주었다. 그야말로 공연장에서 ‘희망’을 증명 해 보였다고나 할까?
▲ 최악의 자리에서 최고의 오케스트라석으로 옮기도록 주최측이 배려한 'VIP' 종이 팔찌
가수와 객석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었던 그 공연은 이제껏 내가 본 어느 화려하고도 명성이 있던 공연과는 다른 느낌이었고 가슴 뭉클한 것이었다. ‘메이드 인 어메리카(Made in America)’ 라는 제목의 노래에서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과 ‘말콤 엑스 (Malcom X)’에 관해서도 나왔으며 그들의 얼굴이 화면으로 확대되어 각인되었다. 그들의 자긍심(自矜心)과 미국내에서 달라져가는 흑인들의 위상을 ‘미국을 바로 그들이 만들어 나가고 있음을’ 유감없이 리듬으로 노래로 보여주고 있었다.
▲ '메이드인 아메리카'는 킹목사와 말콤 엑스에 관한 노래로 그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겨있다. 이 긴 가사들을 다 꿸 수 있는 힙합 가수들의 기억력 또한 놀랍기 그지 없다.
킹 박사의 탄생기념일인 1월 16일. 뒤를 돌아보니 그가 떠난지도 벌써 49주년이 된다. 힙합 황제들의 콘서트 실황 녹음을 다시 들으며 미국에서 유명한 흑인 세 사람을 다시 만난 느낌이 든다. 흑인여성들의 긴 손톱치장들을 볼 때 마다 ‘게으름의 소지’라 힐난하고 흑인들이 쫒는 황금이 그저 ‘유치하고 저급하다’고 폄하했던 무지함을 벗어나 좀 더 그들 편에서 힙합 ‘Hip Hop’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날이 되었다.
제이 지, 카니예 웨스트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동시에 만난 오늘 휴일로서의 의미에 앞서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말하고 희망이 보이는 그런 날이었음 하는 마음 가득하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인종적인 갈등과 차별 없이 평등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그런 희망’을 말하면서 말이다.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연설을 미국의 3대 명 연설로 꼽는데 그중에서도 1963년 8월 28일 25만 여 명이 운집했던 워싱턴 디시의 링컨 기념관에서 있었던 그의 연설은 역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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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평등과 공존’을 이야기 하고 있는 ‘나 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일부분을 옮겨본다.
“나는 언젠가 나의 자녀들이 그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판단 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지닐 때 우리는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멩이를 캐낼 수 있습니다.”
▲ 제목/Black Figure 한지에 먹 2004 설명/ '제이-지' 와 '카니예 웨스트' 두 가수를 통해서 '힙합' 나아가 미국 내 흑인들의 위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