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마철도 아닌 2월 그것도 뉴욕에서 ‘천둥, 번개’를 찾는 것이 아니다. 올 겨울은 이상기온 탓인지 겨울이 실종(失踪) 되었다고 할 만큼 눈도 한파(寒波)도 없었고 더군다나 날씨는 거의 맑은 날씨를 내내 보이고 있다.
몇 달에 걸쳐 e-mail 을 열 때 마다 광고성 스팸 메일(Spam Mail)로 골치를 앓았다. 대부분이 ‘애견’과 관련된 것들 일색으로 정작 기다리는 소식은 하나도 없고 하나같이 애견 분양과 관련된 상업적인 것들로 도배가 되는 지경이다.
몇 달 전 ‘당부성 알림 글’ 모두를 삭제했다. 이제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탓이다. 그리고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이제 더는 기다리지 말렴. 그렇다고 흉측한 생각도 하지 말고. 아마도 누군가 욕심을 낸 것 같으니 그저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자. 나 나름대로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썼던 올린 글들 모두 내리니 이해해주렴.’
친구 중에 산악인이 있다. 늘 유쾌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 그리 자주 보거나 수시로 연락을 하는 편은 아니나 언제 어디서 보아도 한결같은 소박한 심성과 신실함으로 소주 한잔을 기분 좋게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로 알고 지낸지 얼추 20 여년이 되었다.
두 해 전 서울에 갔을 때 소개해줄 식구가 있으니 기대하라고 했다. 속으로 ‘아, 드디어 이 친구도 독신을 면하는 구나.’ 하는 마음에 잔뜩 축하를 해줄 요량으로 친구 집을 찾았다. 작은 마당이 있는 한옥 집에 들어서자 친구가 만면(滿面)에 희색을 띄면서 소리친다. ‘인사해 애들아!’ 이어서 내게 소개하기를 ‘얘가 천둥이고, 얘가 번개’
새 식구가 신랑도 남자 친구도 아닌 강아지인데다 강아지 이름같지 않은 호칭에 자못 당황스러웠다. 내 기색을 눈치 챈 친구가 이어 소개하기를 모시는 상사가 일본에 가서 구해준 혈통으로 평소 개를 키울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지만 여간 든든하지 않다고 했다. 그 녀석들과 더불어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작고 토실토실한 생김이 마치 곰 인형을 방불케 해서 누가 봐도 안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귀여운 강아지 한 쌍 이었다. 친구는 작년 무렵 때이른 퇴직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 넘치는 도심의 생활을 접고 ‘예비 농사꾼’의 삶을 다지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덩치가 산만큼 커지고 있는 녀석들을 애견 학교에 보내는 등 마치 자식 둘 돌보듯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었다. 천성이 순한 녀석들은 사람들을 잘 따라서 시골에서도 마구 짖어대거나 하는 일이 없이 꿩이나 새, 다람쥐들을 쫒아 다니는 것을 일상으로 삼고 잘 지내고 있었다. 인적 뜸한 시골에서 그 두 녀석은 친구의 말벗이자 든든한 가족이 되어 주었으며 외부인이 올 때 마다 목청 좋은 소리로 컹컹 짖어가며 확실한 집 지킴이로 또, 여차하면 경호(?) 역할까지도 잘 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키우던 녀석들이 사라졌다며 펑펑 우는 것이었다. ‘울지마, 찾을 거야.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아. 플래카드며 전단지를 동네방네 그리고 주변의 국도에 다 붙이고 찾아보자. 멀리 있는 나는 온라인 상에서 도울 방법을 찾아볼게.’
친구는 군청과 읍, 면사무소, 경찰서 등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렸고 나는 나대로 친구동네의 커뮤니티와 애견 카페 및 동호회 등을 다니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으로 천둥, 번개 개 2마리를 찾습니다’ 라는 글을 수시로 올렸다. 더러 실종된 개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할 때 마다 찾을 수 있다는 힘이 희망이 되곤 했다.
시간이 시나브로 지나고 있었다. 보름, 한달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나도록 행여 했던 기대는 사라지고 어떤 전화도 이메일도 없었다. 친구 말마따나 사는 동네 반경 30 킬로 전체를 전단지로 도배 했을 만큼 안 다닌 데 없이 붙이고 다녔다는데 그리고 가가호호 탐문(探問)까지도 했다는데 녀석들 행방은 묘연했다.
덩치가 이따만한 개 두마리가 동시에 없어졌으니 누군가 봤어도 벌써 봤을 일이고 돌려줄 마음이었더라면 벌써 돌려줬을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결국 실낱같은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우려는 깊어졌다.
‘어쩌면 오래 전에 개 장사에게 넘겨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도 미쳤지만 차마 포기하라는 말은 못하였다. ‘녀석들이 똘똘하고 사람을 경계없이 잘 따르니까 어딜가서도 다시 팔릴지언정 우려하는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을것’ 이라며 다독였다. 그러나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트럭을 끌고 다니면서 동네방네 개 팔라고 다니는 이들도 있는 판국에 어쩔 수 없이 자리잡는 생각은 ‘포기’였다.
모르는 사람은 개야 다시 키우면 된다고 하지만 몇 년간을 함께 하면서 정을 듬뿍 담아서 키운 개는 동물 그 이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속에 보신탕을 먹는 다수의 이들에게 뻗치는 한없는 원망과 분노도 커지고 있었다.
깊은 겨울이 되었고 혹한기(酷寒期)에 접어들면서는 현실성 없는 기대를 마냥 더 부추길 수도 없어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해가 바뀌었고 개 분양에 대한 스팸메일도 잦아든 어느 날 날아갈듯한 목소리의 외마디. “찾았어~~~~~!”
저간의 사정은 이러했다. 어느 날 두 녀석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동시에 줄이 풀렸고 늘 다니던 국도변 쪽으로 달려 나갔는데 그만 국도변의 나무에 둘이 엉키고 말았다. 누군가 트럭을 세우고 줄을 푼 다음 차에 싣고 떠났다. 몇 달이 지나서 멀리 사는 곳의 한 주민이 이웃집 뒷 켠에 숨기고 키우는 개 두 마리를 이상하게 여겨 우여곡절끝에 찾아냈다고 했다.
‘천둥처럼, 번개처럼’ 자신을 놀래켰다가 나타난 녀석들을 그 이름 덕분에 다시 찾은 것 같다고 믿는 친구는 예의 환한 웃음을 찾았다. ‘천둥, 번개’ 더는 집을 잃어버리는 일 없이 내 친구의 든든한 지킴이로 오래오래 잘 살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매년 이맘때 맨해튼 미드타운에서는 평소 보기 힘든 각종 화려한 개들을 볼 수 있다. 올 해로 136년 째 역사를 자랑하는 ‘독 쇼’(Dog Show)가 열리고 때문인데 ‘개 정말 맞아?’ 싶은 콧대 높은 애견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서 최고를 뽑는 경연무대이다.
일년 동안 대략 50여 차례나 된다는 전국의 애견대회에 수억의 투자를 해가며 쫒아다니는 이들은 ‘명예와 명성 그리고 부’ 를 쫒는 쇼 독(Show Dog)의 주인들이다. 이런 쇼를 개인적인 관심사로 10여년 간 줄곧 보고 있는데 한국의 상황과 너무도 판이한 ‘개의 또 다른 세계’ 가 있음에 놀라게 된다.
쇼 독은 태어날 때부터 오랜 시간 철저하게 준비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필요하고 엄청난 거금을 들여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개와 관련한 무수한 사업의 연결고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독 쇼의 아름답고 우아한 개들보다는 가정에서나 동네에서 만나는 평범한 개들이 더욱 정감있게 느껴진다.
‘개와 사람’ 간의 그 독특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미뤄볼 때 어떤 혈통이나 태생과 관계없이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정을 주면서 돌보는 개야 말로 ‘정말 최고의 개’ 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끝으로 부탁 한가지. 더러, 주인 잃은 개를 보시거든 그 잃어버린 이의 심정을 깊이 헤아려서 꼭 주인을 찾아 돌려주시기를~
▲ 제목/ Croquis of Dog Face 2011 종이에 수채물감. 개도 꾸미기 나름인가? 싶을만큼 정성을 듬뿍 들인 개들을 보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