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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만난 사람들 순덕이와 기덕이

글쓴이 : 김치김 날짜 : 2015-09-30 (수) 00:57:37


2015.8.28. scan11 - Copy.jpg

 

프란치스코(Fransico) 교황의 역사적인 쿠바방문이 있었던 전후로 미국 공중파 방송에서는 연일 쿠바 관련 일색이었다. 지난 해 오랜 경제 봉쇄정책(Embargo)으로부터 풀린 쿠바는 미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 경제, 문화, 여행 등에 걸쳐 경쟁적으로 관련 뉴스가 속속 올라오는 등 가장 관심과 주목을 받는 핫(Hot)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교황 방문 중에는 쿠바로 시작해서 쿠바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앞다퉈 교황의 행보를 내보내었는데 그를 에워싼 쿠바인들로 회면이 가득 채워지면 여행중 만났던 낯익은 얼굴들이 행여 카메라 앵글에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행이란 것을 멀리 소문나게 다녀오고 나면 어디가 제일 좋았으며 어디를 가면 좋겠는지 추천을 해달라는 질문을 듣곤 하는데 쿠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갈 수 없었던 땅이어서 그랬는지 미국인, 한국인 가릴 것 없이 쿠바에 관한 다각도의 질문을 해대는 이들이 많았다.

 

겨우 한달 남짓 주먹구구식으로 다녀온 입장에서 그래도 인상깊었던 지역이나 역사적인 명소를 짚어주거나 특별한 먹거리나 재미난 기억이 있었던 곳을 열거하며 질문에 근접한 맞춤형 답을 찾아주려고 애썼지만 부족하다고 여겨지긴 마찬가지였다.

 

마치 누군가가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 입맛에 맞을 음식 하나만 콕 집어 달라'고 했을때 느끼는 황당함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입맛이라는 것은 태어난 나라, 자연환경, 전통, 재료,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 마련이라서 하나로 귀결할 수 없는데 여행은 다양성의 폭이 음식과는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큰데 어떻게 한군데만을 짚어내어 달라는 것인지 발상 자체가 우문(愚問)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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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동유럽에서 초로의 배낭 여행객을 만난 적이 있었다. 어느날 여행기를 썼다며 '출판 기념회'에 참석 해달라는 연락이 와서 모임엘 갔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자리잡은 나이도 지긋해 보이는 이들이 주로 모였는데 몇나라를 갔다왔는지에 무척인 초점을 맞춰 화제로 삼는 것을 보면서 뭐랄까 땅 따먹기 놀이를 하는 성인들 같았다.

 

환승하느라 공항에서 머문 몇시간 조차도 그 나라를 여행한 셈 치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보름에 무려 10개국을 찍고 다닐 정도로 입국 도장 수집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도 여행가 아무개라고 쓴 명함을 돌리기도 했다.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돈을 쏟아가며 남미 단체 여행을 갔다온 이들은 (배낭을 메고 다녀서인지) 배낭 여행의 선구자라도 되는 양 서로를 추켜세우는 웃지못할 광경도 보았다.

 

동유럽에서 고생하다가 만났던 이들과의 반가운 해후(邂逅)를 예상하며 나간 자리에서 알맹이 없는 사치와 경제적인 과시욕으로 포장된 무늬만 여행자들을 대하니 어이가 없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남미에서 토산품 및 기념품을 싹쓸이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물량을 가져온 이가 있었는데 남의 출판기념회에 와서 백화점서 특별판매 행사를 기획중이라며 홍보까지 하는게 아닌가. 이건 원 장날 야바우 꾼들의 집합소에 온 것 마냥 당혹스러웠고 제사는 안중에도 없고 잿밥에만 혼이 팔린 모습들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개중에는 초면의 여행 잡지사 사장도 있었는데 내게 여자 홀로다닌 여행기를 쓰면 금방 베스트 셀러가 되겠다며 바람을 잡는 장사치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이기도 했다. 관광과 여행을 구분하지 못하고 여행기와 여행 안내서와의 차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정(裝訂)만 화려하고 내용은 없는 묵직한 책들을 접하기라도 하면 겉표지라도 수수하게 만들었더라면 욕이라도 덜 먹을텐데 하는 헛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나랏수나 여행기간 같은 외적인 기준으로 여행기가 양산되는 그래서 뜬구름 잡는 내용이나 사실이 아닌 포장만 요란한 책자는 이제는 지양(止揚)해야 하지 않을까. 소문으로 들은 것을 사실검증없이 싣거나 무책임한 정보를 남발하는 실수연발 안내서는 그만 좀 나왔으면 좋겠다. 무릇 여행기란 글재주 만으로는 2% 부족한 자기 자신에게 먼저 솔직한 이들이 써야하는 그래서 남이 한 실수를 귀감(龜鑑)삼아 좀 더 나은 여행을 다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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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여행을 진즉부터 꿈꿔왔지만 게으름과 시간 여유없다는 핑계로 지침서나 안내서 내지는 여행기 한권 독파하지 못하고 무작정 나선 내 여정은 어찌보면 무식이 용감 그 자체였고 무모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보나 지식으로 무장하는 것 만이 최고의 답은 아니라는 것이고 때로는 민낯의 그리고 날 것 그대로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스페인어도 딸리고 아는것도 없고 그나마 나름 믿는 구석이었던 두둑했던 주머니도 어느 순간에 빈털터리가 되고 난 뒤 더러는 헤매고 더러는 헷갈리는 어쭙쟎은 행보의 연속이었지만 사람들로 받은 호의와 친절로 해서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두 명은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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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리따(Margarita)는 정부 관료로 쿠바의 경제적인 형편상 부수적으로 일을 가지고 있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바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 나는대로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주곤 했는데 친구며 가족 이웃까지도 일일이 소개를 시키는 통에 주체하기 힘들 인맥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덕분에 단기 여행자로서는 꿈도 못 꿀 가정집들을 방문하여 속속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할 수 있었다.

 

적극적이고 다혈질 성향이었으나 천성이 순해서 순덕이라는 우리네 이름을 붙여 주었더니 앞으로는 썬드기’(!)라고 부르라며 좋아라 했다. 살림살이가 넉넉치 않았지만 어디서도 주눅들지 않은 당당하고 가족관계를 중시해서 부모 및 남편과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현모양처의 전형(典型)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를 알게 된 것이 뿌듯하고 여간 자랑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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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덕이가 보석 같은 존재였다면 쿠바노인 알레한드로(Alejandro )는 막 길어올린 샘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하는 분야가 워낙 머리를 써야하는 딱딱한 직업군에 속해 있었지만 타고난 유머감각과 열린 생각으로 해서 대화에 막힘이 없었고 생각의 경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따금 목젖이 보일 정도로 파안대소(破顔大笑)라도 할라치면 여행하다 지친 꿀꿀함을 싹 가시게 만들 만큼 유쾌한 웃음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직업상 철학이랄지 신념이 너무 앞서가서 옳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웬만해서 물러서지 않으려는 쇠고집 같은게 느껴진 것과 마누라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시가를 늘 물고 다니는 금연할 생각이 앞으로도 없음을 강조하는 정도가 어렵사리 찾아낸 단점이 아닌가 싶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절묘하게 조화된 겸손하기까지 한 수줍음 잘타는 성격의 그를 일러 자연스럽게 기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 두사람에게는 놀랍게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우리말을 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한 사람은 평양에서 공부를 하고 온 이력으로 실력이 수준급이었고 한 사람은 무역업을 하는 서울사람을 통해 배운 상태라 짧은 대화 정도 가능한 우리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내 스페인어와 그들의 한계가 있는 영어외에 부족하나마 우리말로 간격을 채워넣을 수 있었음은 예상치 못했던 소득이자 여간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단 하나의 기념선물 쇼핑 없이 빈가방으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무형의 선물을 넘치도록 버겁게 받아온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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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친절했던 세무공무원인 젊은 새댁 메우리(Meuri), 스페인어 통역이 필요할 때 마다 한걸음에 달려와주곤 했던 임대업하는 헥터(Hector) 아저씨, 온화한 모습으로 내 여행 일정을 꼼꼼하게 챙겨주던 골초 아나(Anna) 아주머니, 교통수단이 필요할 때 마다 굳이 흥정하지 않아도 적정한 가격만을 받던 양심적인 훌리오(Julio) 청년, 살사와 메렝게를 전수하고 뿌듯해하던 가브리엘라(Gabriela) 등 등 쿠바에 다시가면 꼭 찾아가고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여간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여행 중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한가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 대신 ‘Korean?’이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더러 남이냐 북이냐를 굳이 묻는 이가 있어도 고집스럽게 ‘I am just Korean’ 이라고만 대답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쿠바에 조상들이 처음 정착했을 당시 우리는 한 민족으로 나뉘지 않은 하나의 코리아 였기때문에 쿠바에서 만큼은 분단된 코리아를 강조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쿠바에서 우리는 하나의 조국 ‘One Korea’를 다시 생각해보는 원점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러다가보면 여행중일지라도 통일을 향한 작은 실마리들을 각자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와 바람을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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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방문중에 교황은 '종교를 섬기지 말고 어려운 주변의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는데 그 덕분인지 TV 속 교황을 바라볼 때 마다 그를 중심으로 에워싼 군중들이 보였던 것에서, 나아가 쿠바인들 속에 교황이 있음을 인지하는 새로운 시각도 생겼다. 교황의 쿠바 방문은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사람이 곧, 하늘' 임을 생각해보고 깨닫게 해준 아주 특별하고도 의미있는 역사적인 방문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쿠바 방문을 마치고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기억에 남을 사람은 누구였을지 궁금하다. 이름없고 소외된 누구였을지 아니면 머지않아 가톨릭으로 개종할 의사도 없지 않아 있음을 피력한 피델 카스트로 였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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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키 제목 / A Human Figure 2015. 종이에 수채물감.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고 받들라는 말은 비단 비단 동학(東學) 사상에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 여행지는 망각속에 묻혀버리고 말지만 좋은 사람을 만난 기억은 빛 바래지 않고 오래오래 추억(追憶)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여행에서 사람만큼 의미가 있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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