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미국의 서민(庶民)을 보려면 다이너(Diner)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서민들이 즐겨찾아 식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1880년대 마차(馬車)가 끄는 식당칸으로 시작된 Diner는 1930년대 조립형(組立型) 식당칸으로 나타난다. 아직도 교외로 나가면 마치 기차식당칸같은 형태를 만날 수 있다.
Diner가 Restaurant과 다른 점은 주로 이태리인들이 경영하고 있는오전11:00부터 오후11:00까지 Lunch 와 Dinner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형태의 Restaurant과 달리 Breakfast를 포함 세끼 모두 제공하는 24시간 영업형태로,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 격식(格式)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 Stool이 있어 혼자라도 어색(語塞)하지 않게 식사하고 나올 수 있다는 점, 뉴욕일원 90 % 이상을 그리스인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식종류가 Restaurant보다 많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분위기가 그렇게 때문에 손님들사이 허물없이 격식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곳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제는 우리말이 되어 버린 ‘케주얼’한 곳이다.
아무리 ’Restaurant체질’인 사람도 Diner에 가면 Diner의 분위기를 쫓게 마련이다.
지난 화요일(12/9) 뉴욕시 최고급 거주지역인 Central Park East Side-Jacqueline Kennedy Onassis가 살던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Madison Avenue 84가에 있는 Diner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친구와 식사를 하고 헤어진 후, Greek Diner를 주고객으로 하고 있는 필자는 ‘먹이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명함 한 장 건네주러 들어 갔다가 커피 한 잔하며, 옆 손님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멋진 남독일(南獨逸) Bayern 모자을 쓴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몇 Table 건너에 앉아있던 할머니 한 분이 필자에게 중국인이냐고 말을 걸어 왔다. 같은 Table에는 손녀인듯한 일곱, 여덟살되어 보이는 소녀가 노트에 무엇인가 적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이 아이가 손녀아인데 지난 3년동안 중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당신이 중국인이면 이 아이와 잠깐 대화를 나누어 보아 줄 수 있겠습니까?” “예, 제가 중국어는 못합니다만, 한자(漢字)는 알고 있습니다.아마 중국인들보다 정자(繁體)를 더 많이 알고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럼 저 아이 Notebook을 보아 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문화권이 다른 중국어를 가르칠 생각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Russia출신이기 때문에 Russian을 가르칠까 했었어요. 그런데 이 아이 삼촌이 Columbia대학 교수인데. ‘아니다, Russian은 집에서도 간간히 할머니가 가르칠 수 있지 않느냐? 중국이 부상(浮上)하고 있다. 학교 정식교과과정 속에 있는 중국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삼촌의 조언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한 살아래인 이 아이 동생도 벌써 2년째 배우고 있습니다.” 할머니 앞에 앉아 있던 Christine은 한자이름까지 필자에게 써 보였다. 宇星이라고……기가 찰 노릇이었다!
같은 문화권인 우리는 한자교육을 등한시(等閑視)하고 있는데 미국아이들에게는 ‘화성(火星)의 문자’같아 보일 한자를,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니……우리에게 한자는 미국학생들에 비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문자’나 마찬가지다.
한글은 일주일이면 땔 수 있는 문자다. 한자(漢字)를 배우면 한글은 저절로 익힐 수 있다. 한자는 신(神)이 인류에게 하사(下賜)한 문자라고 하지 않는가? 한자 글자안에 우주만물(宇宙萬物),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들어 있다. 한자를 모르니 우리말이 깨어지고 있고, 의사전달도 어렴풋이 전달될 뿐이다. 의사(意思)와 학식(學識), 학문(學文)은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정확한 한가지 사실이 전달되어져야 한다. 한글로 쓰여져 소리만 들려오니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한글로만 쓰다보니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양산(量産)되고 있다. 선대(先代)가 정성을다해 작명하여 준 한자이름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글은 뜻을 전달하지 않아 사물의 개념전달이 모호(模糊)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한글전용은 학문발전을 저해(沮害)시키고 있다. 가을철이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필자는 단언(斷言)한다. 한글만 고집한다면, 노벨수상자는 절대로 탄생(誕生)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자의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고(思考)자체가 과학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과 일본에 노벨수상자가 많은 이유를 언어에서도 찾아 볼 수 있겠다. 독일어는 컴퓨터언어가 아닐런지 모르지만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사실을 전달한다. 한자(漢字)도 개념을 하나로 한정(限定)하여 전달한다.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 일본을 중국의 변방(邊方)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한글지상(至上)주의, 값싸고 경박(輕薄)한 국수주의(國粹主義)에서 하루속히 벗어나라. 미국아이들도 한자를 배우고 있다. 한국인들이여 한글이 만능(萬能)이라는 환상(幻想)에서 깨어나라. 한글은 발음기호(發音記號)일 뿐이다. 한글은 상대가 한자(漢字)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前提)할 때, 쓰는 글이다. 문제는 상대가 전달된 소리가 무슨 뜻이지 모르는데서 발생한다. 그러니 안중근의사가 Doctor로 둔갑(遁甲)하는 것이다. 웃을 이야기가 아니다.
Diner같은 소탈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대학생도 아닌 일곱,여덟살짜리 어린 미국아이들이 한자(漢字)를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뻔 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꺼꾸로 가고 있는 조국(祖國)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大韓民國을 못쓰는 대학생이 95%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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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을 써서 10년 전 월간조선(月刊朝鮮) 기고(寄稿)를 계기로 교류하게 된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무안읍 소재 초당(草堂)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며 ‘한글전용은 위헌(違憲)이다’의 저자인 김창진(金昌辰)씨에게 보냈던 바,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 왔다. 국내에서 국한문혼용 (混用)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그의 이메일을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한태격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큰 일입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한자를 억지로 못 배우게 하니 말입니다. 지금 제가 한글전용으로 헌법소원을 하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2년 11월에 헌법소원 냈으니 3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측 변호사 말을 들으니 내년에는 심리에 들아간다 합니다. 내년이면 잘하면 한글전용이 위헌 심판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날까지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역만리 미국에서도 한 선생님 같은 분들은 이렇게 모국을 위하여 애를 쓰시는데, 여기 사는 저희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제 겨울이 옵니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