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여주는 열린문학회

10년 만에 조국을 찾아가 보니 강산은 의구(依舊)한데 모든 게 변해있었습니다. 도시는 마천루로 덮여있고 농촌은 아름다운 전원도시입니다. 그중 아름다운 건 도시마다 일고 있는 문예부흥 운동입니다. 내고향 평택안중에도 문학회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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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고향 안산에 있는 ‘상록수 문학회’에 가봤습니다. 선배 인산(김영백목사님)이 회장으로 있는 곳입니다. 머리카락을 하얗게 휘날리면서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멀리 서울 경기 충청 강원에서 오는 발걸음들입니다. 은퇴한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들이 대부분입니다. 영화배우 박규채씨도 보였습니다. 한때 교수로 사업가로 고급공무원으로 잘나가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남녀공학 중학교문예반 모임처럼 재미있어 보입니다. 학생들(?)의 평균나이가 자그만치 77살인데 말입니다. 40여명이 매월 모입니다. 계절이 바뀔 적마다 철따라 길 따라 문학기행을 떠난답니다. 황진이와 서경덕의 풍류여행처럼 멋져 보입니다.

‘아름답고 멋지게 늙는구나!’

안중중학교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소설책을 읽다가 들키면 아버지는 문학이 밥 먹여주느냐? 고 꾸짖으셨습니다. 저는 밥을 굶어가면서도,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가면서도 몰래 소설을 읽었습니다. 아버지는 10년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말씀이 생각나서 제 곁에 앉은 회원에게 물어 봤습니다. 그분은 80이 넘으신 이보경 장로님입니다. 30대에 전매청 공장장을 지내신 이장로님은 유명한 자연과학자이십니다.

“장로님, 문학이 밥 먹여 줍니까?”

장난끼로 물었는데 답변이 아주 진지했습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문학책 보다는 보리밥 한 그릇이 더 절실했지요. 지금은 없어 못 먹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배가 부르고 보니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고급 맨션에서 기름진 요리를 먹고 고급차를 몰고 골프채를 휘둘려 댄다고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니쟎아요? 지금 우리는 밥을 굶어가면서 몰래 소설책을 읽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때야 말로 내 영혼이 따듯했던 행복한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은퇴 후에 문학회를 찾아가는 거지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요. 톨스토이도 토스트에프스키도 100년을 못살고 갔어요. 그러나 그들이 남긴 <전쟁과 평화> <죄와 벌>은 지금도 살아있는 글이 되어 계속 읽혀지고 있습니다. 문학은 은퇴생활을 멋지게 만듭니다. 은퇴 1년이면 10년 늙어버립니다. 그런데 문학을 하면 은퇴1년이면 10년 젊어진답니다.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인간은 누구나 장편소설 몇 권을 쓸만한 기막힌 사연이 있지요. 그걸 시로 수필로 소설로 낙서해 보는 거예요. 얼마나 재미있다구요? 노벨문학상 작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상록수 문학회로 모입니다. 뉴욕에 있는 미주 기독문학동우회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미주기독문학동우회는 밥 먹여 주는 문학회를 합니다. 2년에 한번씩 <해외기독문학>을 발행합니다. 그리고 열린문학회로 모이지요. 잘 나갈 때는 두 달에 한번씩 ‘열린문학회’를 했어요. 우리 아버지는 ‘문학이 밥 먹여 주느냐?’ 물으셨지만 동우회는 문학회 오는 분들에게 먼저 밥을 먹여줍니다. 상록수문학회는 끝나고 밥을 먹지만 동우회는 밥 먹고 문학회를 한답니다. 사계절 중 식후경의 금강산이 가장 아름다우니까요”

“하하하하 뉴욕에 가면 꼭 동우회 밥을 먹어보고 싶군요”

12월 11일 뉴욕 베데스타교회에서 열린 문학회로 모입니다. 6시에 교회에서 대접하는 식사가 있습니다. 금강산 뷔페 못지않은 진수성찬입니다.

식사후 15분짜리 1부 예배에서 태산 김원기목사님의 문학설교를 듣게 됩니다. 열린문학회는 설교와 기도에서도 문학의 향기를 느끼지요.

2부 문학회는 강연 음악 작품발표로 채웠습니다.

김해종 김요현 김길홍 백명훈회원이 시를 최순희회원은 수필을 발표합니다. 회원들의 작품을 공개하는 검증시간이기도 합니다. 유상열회원이 기획하는 음악프로는 그날 가봐야 알게 됩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이철수회원의 강연입니다. 연제는 “미학으로 조명해보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소설이 나온 지 몇 년이 됐어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입니다. 한글원문 보다도 영문번역이 더 잘 됐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도 인기이지요. 강용흘의 <초당>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김은국의 <순교자>가 노벨문학상을 두드려 봤지만 아직도 열지 못했습니다. 조국에서는 고은시인이 해마다 노벨문학상을 기다리다가 지쳐버렸습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노벨문학상을 타는 신데릴라가 될 수 있을런지? 이철수 수필가의 예언적인 강연을 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성탄절이 있는 은총(恩寵)의 달 12월입니다. 그날 밤 만나서 밥도 먹고 문학과 더불어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