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의 결혼식은 ‘강남스타일’이 아니라 ‘돌섬스타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양가 사촌까지만 모이는 조촐한 가족잔치로 말입니다.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열린문학회’ 스타일이 돼버렸습니다. 초청장도 안 보냈는데 동우회식구들이 많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보세요. 꼭 열린문학회 끝내고 찍은 단체사진의 얼굴들 같지 않습니까?
동우회원들은 날씨부터 걱정해줬습니다. 일년중 날씨가 가장 아름답다는 한가위 전날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 내내 비 가온다는 예보라지 뭡니까? 뉴저지의 동욱님 뉴욕의 남미님은 그날만은 제발 비가 오지 말게 해 줍시사! 하고 새벽마다 빌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우군 김소엽시인은 결혼식장에 꼭 장끼가 나타나 꿩꿩! 축복해달라고 국제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3일전 수정된 일기예보는 그날 2일 동안은 비가 안 온다는 낭보였습니다. 구름은 끼었지만 비만 안와도 고맙지요. 야외식장이니까요. 이제는 꿩만 울어주면 됩니다. 예식은 뮤지컬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였습니다. 한국어린이 미국어린이가 쌍쌍으로 들어가고 신랑 마이클 스미스가 입장했습니다. 원래는 신랑시부 동시입장 계획이었습니다.
“너희들 둘이서 유럽여행까지 다녀왔으니 둘이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것도 멋있겠지?”
딸애가 첨에는 좋아하더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아빠 손잡고 입장할래요. 25년전 미국와서 영어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첨 학교가는날이 무서웠어요. 그날 아빠가 제 손을 꼭 잡고 걸어가면서 걱정 말아라, 두려워말아라, 하나님과 아빠가 이렇게 손잡고 있잖니? 하시는데 무서움이 사라지고 힘이 생기는 거예요. 결혼식장에도 아빠 손을 잡고 갈래요.”
첼로연주자의 주악(奏樂)에 맞춰 딸애 손을 잡고 1분 동안 10미터를 걸어들어 갔습니다. 38년 동안의 지나간 만상이 눈앞에 펼쳐 보이는 듯 합니다. 딸애가 38살이니까요.
주례자의 5분 설교와 서약 반지교환 성혼선포 축도가 끝나고 축하송 시간입니다. “듀엣 피앙세“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렀습니다. 빠스또르를 이어받은 지인식 이정은목사부부의 이중창을 우리는 “듀엣 피앙세”라고 명칭했지요. 탈렌트처럼 잘생겼기 때문에 피앙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곡은 바리톤 김동규가 불러 유명해졌지만 임태경 박소연 이중창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임태경은 동우회 배희남이사장의 생질(甥姪)입니다.
이정은사모가 1절을 지인식목사가 2절을 불렀습니다. 다시 피앙세가 입을 모아 듀엣으로 힘차게 2절을 합창했습니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 라는 것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멋진날에“
그건 하늘을 울리는 천둥소리였습니다. 아닙니다. 숲속을 뒤흔들고 뛰어나온 장끼가 꿩! 꿩! 하고 외치는 포효입니다. 순간 하늘 문이 열리면서 가든에 햇빛이 가득 쏟아져 내렸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그건 결혼무대를 축복으로 비춰주는 하늘의 조명 같았습니다.
이정은사모는 노래가 끝나고 아름다운 정적이 흐르자 “September!"하고 외쳤습니다. 원래 이 노래는 10월의 노래인데 9월로 앞당겨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 깜찍한 연기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멋진 추임새였어요.
이중창이 끝나자 이정은 사모가 영어로 독창을 했습니다. 유명한 팝송 “You Raise Me Up”입니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워낙 유명한 팝이라서 모두가 좋아하는데 나는 안절부절이 됐습니다. 오늘 인사를 영어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꽤 준비를 했는데 날씨걱정 손님걱정을 하는 바람에 머리가 멍멍해져버렸습니다. 하나도 생각나는 게 없어요.
노래가 끝나자 주례자가 나를 부르는데 머릿속이 하얀 상태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내 머리위로 햇볓이 하얗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햇볓이 아름답다니! 나도 모르게 외쳤습니다.
“Thank You, Beautiful songs. And another Beautiful, Beautiful Sunshine!"
세상에 내가 이렇게 멋진 즉석 감동시를 읊다니! 그것도 영어로. 그 다음 인사말은 자유자재(?)였답니다.
딸애의 결혼식을 치뤘지만 꼭 기독문학동우회의 열린문학회를 끝낸 기분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몇장 보내드립니다. 물심양면으로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