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오전 9시였습니다. 맑은 아침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새해 벽두라서 만물이 새롭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우리부부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까치설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까치부부처럼.
“이런때 까치 한 마리 날라와 거실 유리창을 콕콕 찍어대면서 깍깍 울어준다면 얼마나 근사한 신년축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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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복도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침부터 누가 문을 두드리지?”
문을 열던 아내가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니, 문목사님 아니오? 우리는 까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봉황이 날라왔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목회하는 문형일목사가 찾아왔습니다. 걸어서 1600리요 차로 달려 9시간입니다. 축지법(縮地法)을 쓰는 홍길동도 아닌데 그 먼 거리를 어떻게 왔을까?
“어제 초하루를 가족과 함께 쇠었어요. 하루를 끝내고 잠을 자려는데 한국에 두고온 고향생각 부모님생각에 잠이 안 오는거예요.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세배도 못드리는구나. 그러자 갑자기 미국에 세배드릴분이 계시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어요. 그때가 밤 12시였습니다. ‘여보 뉴욕에 올라가 이계선목사님에게 세배드리고 내려올게’ 잠자는 아내에게 귓속말을 남기고 차를 몰았어요. 교통이 펑 뚫린 새벽길이라 좀 과속으로 달려 8시간 만에 올수 있었습니다”
문목사는 과일상자를 내려놓으며 큰절을 하려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성경생각이 났습니다. 불레셋과의 싸움에 밀리던 다윗왕은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버렸습니다. 어린시절이 그리웠습니다. 임금이고 전쟁이고 다 때려치우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동구밖 우물의 샘물을 퍼마시고 싶었습니다. 왕은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습니다.
“아! 목 마르다. 고향의 샘물을 마시고 싶구나.”
세 용사가 겹겹이 싸인 적진을 뚫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샘물 한바가지를 떠다 바쳤습니다. 샘물바가지를 받아든 다윗은 소리쳤습니다.
“이건 목숨을 버리고 떠온 부하들의 피요 생명인데 내 어찌 마실수 있으랴!”
통곡하면서 병사들의 머리위로 뿌렸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이 용기백배 사기충천하여 대승했다고 합니다. 문형일의 세배길이 그랬습니다. 자다 일어나 9시간을 달려온건 목숨건 운전입니다.
그런 세배를 내가 어떻게 받습니까? 또 놀라운건 문목사는 세시간 만 있다가 돌아가야 한답니다. 가는길은 눈보라를 뚫고 운전하기에 10시간도 더 걸립니다. 더 놀라운 건 그의 차입니다. 88년도형 4기통 찦차이기 때문입니다. 동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보다도 더 늙었습니다. 25년된 늙은 차를 끌고 왕복 3천2백리를 자지 않고 달리다니? 그건 목숨건 세배길입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그 세배를 받겠습니까? 우리는 세배대신 눈물의 세배기도를 나눴습니다.
세시간후 문목사는 덜컹거리는 낡은 찦차를 끌고 떠나갔습니다. 차의 뒷모습이 눈보라속으로 사라져 버리자 나는 그에 관한 추억을 찾아갔습니다.
18년전 퀸즈 변방 릿지우드에서 교회를 개척할때입니다. 단아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젊은 여인이 주일예배에 십일조 5백불을 헌금하고 갔습니다.
‘근처 친척집을 찾은 귀부인이겠지?’
다음주일에는 200불 십일조를 했습니다.
‘아직도 안 간 모양이지?‘
그런데 돌아가던 그녀가 따졌습니다.
“다른 교회는 새얼굴이 나오면 전교인이 달려들어 등록하라고 야단들인데 왜 이교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아요?”
“보다시피 댁같은 귀부인이 이런 교회에 나오겠어요?”
“왜 어때서요? 좋기만 한데요”
등록한 그녀는 문형일의 부인 정현숙입니다. 서울대음대를 나와 동아콩쿠르에서 금상을 차지한 문형일은 뛰어난 바리톤입니다. 유학을 끝내고 미국 유럽으로 오페라공연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6개월후 주일예배시간입니다. 개회찬송 ‘시온의 영광’을 부르는데 우렁찬 봉황(鳳凰)의 울음소리가 천정을 울렸습니다. 문형일이 순회공연을 끝내고 돌아온 것입니다. 어느날 그는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제가 미 전역과 유럽무대에 서 봤지만 성악가들의 꿈인 맨해튼오페라좌를 정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결이 없을까요?”
“득음(得音)해서 천상의 목소리를 받아야 합니다. 국악인이 득음하면 달빛이 조요히 흐르는 깊은 산속 계곡에서 들려오는 귀신의 호곡같은 소리를 내겠지요. 성악가들은 구름을 울리고 내려오는 천사장의 나팔소리 같은 목소리를 내구요. 자유자재로 노래하는 파파로티를 득음했다고 봐요. 나 역시 득도(得道)하려고 이런 변방에서 웅크리고 지내고 있어요.”
득음을 하겠다고 문형일은 자주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는 설교시간이면 울기 시작했습니다. 방언기도로 몸부림치면서 밤을 새웠습니다. 성령을 받은것입니다.
“쯔쯧 나 때문에 문형일이 망했구나. 내가 언제 득음해라 했지 득령 해라 했소?”
“아닙니다. 목사님, 제가 서울에서 한얼산 기도원장 이천석목사님이 목회하는 대형교회성가대를 지휘하면서도 체험 못한 성령을 받았어요.”
문형일은 뜨루신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왕복 5시간을 운전하면서 말입니다.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지금은 서부 버지니아 어촌마을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아담한 미국감리교회입니다. 성악과 그림같은 아름다운 목회입니다.
‘문형일이 득음에 실패하여 망하길 잘했구나.’
나 역시 득도에 실패하여 ‘돌섬통신’이나 쓰는 ‘독자투고 전문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건 여간 행복한게 아닙니다.
“목사님, 눈보라를 뚫고 운전하느라 12시간이 걸렸습니다. 세배길이 행복했습니다.”
봉황이 날라 와 울고 갔으니 새해에는 운수대통할 것 같습니다. 1월 31일은 고향의설날인 구정입니다. 신정에 세배 드리지 못한 분들에게 전화세배라도 해야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53:07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