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함께 실천하는 부처님법"

1월28일 수요일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의 새벽이 밝았다. 4시30분 기상하여 예불 및 기도를 한뒤 순례단은 배낭과 매트 손전등, 장갑과 물을 챙겨 전정각산으로 향했다. 보드가야 둥게스와리에 위치한 전정각산은 부처님이 6년간 고행하신 바위와 돌이 많고 매우 험준한 산이다. 산중턱쯤 오르자 유일하게 물이 고여있는 샘터가 나온다. 건기(乾期)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2,600년전 부처님께서 고행하시며 이 물을 드셨다고 한다. 곧이어 아늑하고 바람이 잔잔한 바위로 둘러싸인 6년간의 치열한 고행 속에서 깊은 사유와 정진을 하셨을 곳으로 추정되는 명상터가 나온다. 우리는 직접 물을 마셔보진 못했지만 지금도 물이 차오른 샘터를 바라보고 명상터에 앉아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곧이어 산 정상에 오르니 인도의 탁 트인 평원과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곳에서 부처님이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며 고행하신 곳이라니...바람 한점, 돌과 바위 하나하나, 풍경들을 느끼고 마음에 새기며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우리는 다시 수자타 아카데미로 돌아와 아침공양을 한뒤 고 설성봉 거사님의 추모식에 참석, 마음을 담아 예를 올렸다. 고인은 인도 JTS 초창기 시절 수자타아카데미 건축 현장에서 헌신하다가 2002년1월 무장 괴한의 침입에 안타깝게 46세의 나이로 순직한 분이시다. 그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고자 수자타 아카데미안에 그의 넋을 기리는 부도탑이 세워져 있다.
이날은 바로 수자타 아카데미의 32주년 개교기념일이다. 수자타 아카데미는 바로 이곳 전정각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곳 둥게스와리 지역은 비하르주에 속하는데 인도에서도 가장 극심한 빈곤지역으로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곳이다. 하리잔 중에서도 더 계급이 낮은 불가촉 천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땅은 거의 거친 모래땅이라 연중 3개월정도 겨우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부족한 식량은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구걸하거나 때로는 약탈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곳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곳에 1993년 12월 처음 법륜스님이 방문하여 학교에 갈 아이들이 길에서 구걸하는 안타까운 모습에 동네주민들에게 함께 학교를 지어보자고 설득하여 주민들은 땅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JTS는 자재를 공급하여 결국 1994년 수자타 아카데미를 열었다. 이후 중학교와 각 마을의 유치원 등을 개설하였고 1995년에는 둥게스와리에 콜레라가 돌자 수자타아카데미는 휴교를 하고 교실 하나를 진료소로 운영하다가 곧 학교 전체를 콜레라 진료소로 운영하게 되었다. 콜레라 유행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학교를 찾았고, 2001년 한국 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아 병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병원 이름은 부처님을 치료했던 의사 지바카의 이름을 따서 지이바카 병원이 되었는데 개원후 주변 16개 마을 1만여 명의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이어오고 있다.
오전 9시20분 부터 마을 주민들이 학교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0시부터 시작될 수자타아카데미 32주년 개교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인데 모두들 단정하고 아름답게 깔끔하게 차려입고 밝고 행복한 얼굴로 순식간에 학교 운동장이 우리 순례단과 마을주민들로 한가득 질서정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인도 비하르주 입법의회 의장 프렘쿠마르, 비하르주 입법 의원 사르브지트 파스완, 며칠 전부터 스님을 호위했던 가야 소속 경찰과 군인들, 보드가야 미얀마절, 캄보디아절의 주지 스님들 그리고 수자타 아카데미 초창기를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리했다.
드디어 오전 10시가 되자 학생들은 단정한 모습으로 무대위에서 '빤쯔실'(삼귀의.오계)과 교가를 합창함으로 개교32주년 기념식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고 학생들의 춤과 태권도 시범, 전통춤, 마을 주민들의 노래와 악기 연주로 열기가 더해졌다. 학생들의 무대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의상 또한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넋을 놓고 보았다. 학생들이 멋진 무대를 만들어 가기 위해 얼마나 연습을 하고 또 했을까 보는 내내 벅차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을 주민들의 얼굴엔 기쁨과 행복감으로 모두들 웃고 박수치며 기쁨을 나눴다. 저렇게 재능많고 영리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될까. 교육이라는게 무엇일까. 잠시 한국과 미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괴리감(乖離感)이 느껴졌다.

잠시후 스님이 무대에 오르셔서 감사의 뜻을 전하신다. 어떤 아이든 좋은 교육을 받으면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는점. 우리가 마음을 모은다면 둥게스와리도 살기 좋은 마을로 바꿀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함께 힘을 모아 나아가자고...그리고 함께 해 주신 모든분께 깊은 감사를 전하셨다.
곧이어 기다리던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마을사람들에게 도시락으로 나눠주고 순례단과 학생들 모두가 함께 점심을 먹은뒤 망고 가든에서 열린 인도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입기, 이마에 빨간 장식을 붙이는 빈디, 천연 염료로 손에 문양을 그리는 메헨디와 손톱에 메니큐어 칠하기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진도 찍고 얘기도 나누며 시간가는줄 모르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학교 안의 상점에서도 여러가지 핸드메이드 제품이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꼭 갖고 싶었던 부처님 6년 고행상을 얼른 사서 고이 간직하여 미국 집까지 가져왔다.

다시 조별로 모여 나누기를 한뒤 모두가 학교 대청소를 했다. 누구하나 미루거나 빼려는 사람없이 서로 나서서 얼마나 열심히 청소를 하던지...평소 집에서 귀찮아 하던일을 여기 와서는 이런 작은 일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저녁 7시가 되어 쁘락보디홀에서 저녁예불 및 법회가 있었는데 장소가 야외에 위치 해 있고, 저녁이면 꽤 쌀쌀하여 담요와 따뜻한 겉옷을 챙겨 참여했다. 법회에 앞서 수자타 아카데미의 BTS라 불리는 인도의 소년들이 우리 순례단을 위해 특별 공연을 선보였는데 객석에서는 그들의 무대를 보며 박수와 환호로 응원을 보내주었다. 소박해 보이지만 그 열정만큼은 BTS 못지 않다는 생각이든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인도에서도 제2의 BTS가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수자타 아카데미의32년 우리가 증명해 온것은 무엇인지, 차별과 충돌 속에서 세운 원칙은 무엇인지, 불법은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이라는점, 부처님은 왜 제자들에게 혼자서 가라고 하셨는지..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다. 그당시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을 그저 사람이라면 필요할때 배워야 한다는 그 한가지 이유로 시작한 일이 32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는지. 배움에 대한 간절함, 많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그래도 결국 해내고 함께 나아간다는것 이런 실천이 바로 불법이라는 점에 큰 울림이 있었다.
이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두려워 못하는건 무엇이고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뒤로 미루고 있는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용기와 자비심으로 실천해 오시는 스님의 삶에 깊은 존경심을 느끼며 잠들었다.

글 사진 유정선 | 미주한인우리세상 앵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