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알기 힘든 나라 중의 하나이다. 북한의 실제 모습은 어떠할까? 김정은이 한편으로는 핵실험을 하다가, 갑자기 한국과 미국을 향해 화해 기조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북한을 통치하는 수단은 무엇일까? 러시아의 작가 세르게이 플레하노프가 북한을 방문하고 본 느낌과 인상을 러시아 일간 모스콥스키콤소몰레츠에 실었다. <편집자 주>
<모스콥스키콤소몰레츠 웹사이트>
150미터 높이의 주체사상탑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본 평양시는 현대적으로 잘 가꾸어진 도시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평양시의 모습은 내려와서 보면 딴판인 다른 나라의 대도시들과는 달리, 실제로도 그렇다. 평양의 길거리는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다. 보도를 걸어가는 시민들의 모습은 꼿꼿하고 확고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여기저기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보인다. 이것은 김정은의 자유주의적인 통치 노선의 결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식량을 자급하고 있으며, 도시와 농촌에 농부들이 남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의복도 자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수요가 해결된다. 북한 주민들은 외국산 옷도 입지만 대부분은 북한산 옷을 입고 있다. 북한 전체의 풍경도 마찬가지이다. 비행기가 평양에 가까이 오면 들이 잘 정돈되고 산등성이도 모두 경작(耕作)된 것이 보인다.
주체사상탑 밑에는 딱 보기에 노동자와 농민인 것으로 알 수 있는 조각상들이 있다. 그런데 북한의 사회적인 통합을 의미하는 상징물에는 또 하나의 조각, 높이 든 손에 붓을 들고 있는 지식인의 대표가 포함되어 있다. 지식인 계층을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요 원동력으로 포함시킨 것은 김일성이 만든 혁신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북한의 이데올로기가 국제주의적인 좌파에서 혁명적인 민족주의로 이행(履行)한 것을 보여주는 작지만 특징적인 표시이다. 이 혁명적 민족주의는 수 년 후에 확실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 주체사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런 자신들만의 사상을 가진 것에 대한 자부심인지 북한에는 한 번도 외국인 스승들, 즉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이 세워진 적이 없고 오직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뿐이다.
학교와 기관들의 건물 전면에는 항상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肖像畵)가 있다. 또한 김일성, 김정일 뱃지도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니는데 이 뱃지들은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받는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극동 지방 문명의 기본적인 정서에 존재하는 국가적인 종교이다. 이런 국가적 종교의 전통은 수백 년, 수천 년을 뛰어넘어 그들의 가슴속에 존재하던 조상 숭배 사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마르크시즘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에 반해 김정은의 초상화는 어디에도 없다. 그 이유에 대해 북한 공식 인사는 그가 겸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양 궁전에서 김일성, 김정일에게 주어지는 명예와 김정은의 위상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김일성은 최초이고 유일한 불멸의 수령이다. 김정일은 물론, 그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고 노동당 당 서기, 국방 위원장이었다. 김정은의 공식 직함도 김정일과 같은 위치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대원수로 불렸던데 반해, 김정일은 생전에는 장군이었다가 죽고 나서 대원수가 되었다. 김정은은 군사적인 직함으로는 장군이다. 그러나 김정일과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은 북한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바로 느낄 만큼 분명하다. 김정은은 북한이 부딪치고 있는 여러 도전들을 더 잘 소화하기 위해 국가 권력 시스템의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주체사상 체계는 김정일 시대에 최종 완성을 보았다. 1989년에 출간된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김정일은 영원히 살아있는 교훈이라던 마르크시즘이 힘을 잃고 이제는 낙후(落後)된 것이 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또한 2015년에 북한 사회는 이데올로기 진화를 완료했다면서 그때까지 평양의 주 광장에 있던 마르크스와 레닌의 마지막 초상화들을 제거했다. 이것은 김정은이 과거를 보고 회귀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려고 시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개최한 제7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새로운 당 강령을 채택했다. 이 내용은 일부만 공표되었는데, 알려진 부분만 보아도 북한 노동당이 마르크시즘과 결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서 무엇인가를 배웠을 수도 있지만 극동 지방 국가답게 상당히 조심스럽고 주도면밀한 것이 드러나 보인다.
북한 사회는 소련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현재도 살아있는 유산으로 남아있다. 기본적인 사회 구조, 중공업 우선 개발, 문화 정책들이 그렇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북한 TV에서처럼 많은 수의 소련 영화를 방송하는 곳이 없다. 거의 매일 소련 시대의 클래식 영화중의 하나가 방영된다. 현대 북한 영화는 전반적으로 소련시대의 서사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만 소련의 규범과 교조적인 사상에서는 벗어난 것이 확실히 보인다. 길거리와 사회에도 시민들의 모임이나 교제가 늘어난 것이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일이 끝나면 바로 자기 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길거리에서, 집 앞에서 서로 담화하고 장기나 다른 놀이를 한다. 북한 사회가 변화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휴대폰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대부분 북한산이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해이(解弛)해졌다고는 보기 어렵다. 조직성이나 동원 준비성은 여전히 매우 높다. 사람들의 집중력과 질서감은 대단하다. 군중들은 조용히 정류장에서 대중교통 수단을 기다린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6일제 근무를 하고, 개인의 생활이라고 해도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이 될 수 없다. 일찍 결혼하는 것은 환영받지 못하며, 보통 결혼 연령이 여성은 25-28세, 남성은 이보다 2-3세가 더 많다. 가정을 가지기 전에,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이 있는 때를 국가와 사회에 바쳐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이데올로기이다. 인간이 자연과 사회의 주인이요, 지배자요, 변화의 주체자라는 사상이 대중의 뇌리(腦裏)에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효과적인 사회 통제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즉 십여 년간 봉쇄되고 군사적인 대치 상태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삶의 눈으로 북한을 둘러싼 사태를 보면 어떨 것인가? 이 사람들은 온 힘을 집중하고 긴장해야 하는 극한적인 일상을 자신들의 세계요 인생의 과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자신들의 삶을 선과 악의 잔혹하고 치열한 투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은 종말의 시대에 동요하지 않고 관조적(觀照的)이면서 분명하게 자신들이 지켜나갈 이상을 수호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동양적인 정신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들의 수령 숭배는 바로 이런 세계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자연과 사회의 변화의 주역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김일성과 김정은의 모든 초상화는 사진처럼 세세하고 실제적이다. 초상화와 동상의 사실주의는 그들이 어떤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일성이 소련의 브레즈네프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동양적인 국가지도자라면, 김정일은 훨씬 더 민주적이고 연구소 직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정일이야말로 정치적인 전략에 능하고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시작한 사람이다. 김일성 사망 후 집권한 그는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노선으로의 이행이라는 상황에 처해서 ‘선군’, 즉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을 펼쳤다. 미국과 그 위성국가들의 끊임없는 압력 하에서 국가 체제를 손상시키지 않고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런데 핵무기 개발을 이루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학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2011년에 사망한 김정일은 거의 20년간 매달린 핵 프로그램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고 작년 몇 번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 있었고 한 번의 수소폭탄 실험이 있었다. 공식적인 데이터에 따르면 화성 14형과 화성 15형 미사일은 정점 고도 3500km와 4500km에 이르러 미국 영토 내 모든 지점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미국은 마치 자신들이 필연적인 침략을 받는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유엔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멸시켜버리겠다고 연설하는 것을 들으며 어떻게 북한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한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의 이 연설을 들은 후, 470만 명이 자원입대에 지원했으며, 이중에 122만 명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수의 군대라 하더라도 북한의 전력은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대적인 항공모함도, 사드도 없고, 북한의 탱크는 미국의 첨단무기 앞에서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즉 핵무기만이 그들의 방어 수단이라고 느낀 것이다.
최근 평양 중심가에 세워진 주택들은, 북한의 방어수단을 개발하고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힘이 붓을 든 사람임을 가르쳐 준다. 대동강변을 따라 평행선으로 이어진 미래 거리에는 과학계의 꽃들이라 할 수 있는 두뇌들이 입주해서 산다. 북한 정권은 슬로건과 이데올로기만으로 이들을 관리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보상을 해 주고 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이 붓을 든 사람을 북한 민족의 중추(中樞)로 여기고 이들을 통해 국가를 세워나가고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평양에서 대학교육을 받았는데 물리학을 전공했다. 북한에서 시행한 6번의 핵 실험 중 네 번이 그의 집권 이후에 이루어졌다.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전략적 목표는 국제 사회에서 세계적인 현안을 결정하는데 참가하는 주권 국가가 되기 위함이었다. 북한의 모든 주민은 외부의 침략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산다. 군인들은 장화를 벗지 않고 잔다. 그 중에서도 붓을 든 사람은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든다.
글 = 세르게이 플레하노프 국제문제 전문학자 | 러시아 일간 모스콥스키콤소몰레츠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열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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