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막 걸음마를 시작한 1982년 시즌이 끝난 뒤 홈런왕 행크 아론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더블A 팀과 과거 시카고 커브스의 전설적인 유격수인 어니 뱅크스를 대동해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혼성팀과 6차례 경기를 치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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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모두 여섯 번 경기를 한 이들은 4승2패를 거두고 돌아갔다. 이 같은 행크 아론의 한국 방문은 그가 쓴 ‘내게는 망치가 있었다(I had a hammer)’라는 自敍傳(자서전)에도 소개가 돼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책을 읽던 필자도 뜻하지 않던 한국 프로야구 이야기가 책 末尾(말미)에 나와 너무도 반가웠던 적이 있다. 세계적인 슈퍼스타 자서전에 존재조차도 알려지지 않던 한국 프로야구가 등장했으니 당시로선 뜻밖이고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개된 내용인즉, 당시 그들을 초청한 관계자 가운데 한 명이 집요하게 어니 뱅크스의 경기 출전을 요청했다는 것이고 이는 분명히 賭博(도박)이 개입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50대 초반으로 초기에 접어든 뱅크스가 각종 행사에 참가하고 또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하는 것을 요구한 것은 상식 밖이며 이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게 행크 아론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한국사회를 모르고 한 소리. 전두환 군사 정권이 전국의 불량배와 도박꾼들을 잡아다 삼청교육대에 입소시키는 등 살벌한 사회분위기 속에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해 순진하기까지 했던 한국 프로야구계가 세계적인 스타를 초청해 도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책을 읽은 뒤 당장 한국 프로야구위원회에 항의를 하라고 권유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이미 그 책이 나온 지는 수년이 지난 뒤였고 좋지도 않은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 프로 스포츠계는 수치스런 승부조작 스캔들에 휩싸였다. 프로축구에서 시작된 수사는 프로배구를 거쳐 프로농구와 프로야구에까지 그 범위가 확대 됐다. 프로야구 선수단 일부 선수는 자신이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밝혀 疑惑(의혹)이 전혀 사실무근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한국사회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놓고 의견이 둘로 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일벌백계를 통해 紀綱(기강)을 바로 잡아 팬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쪽은 그 책임을 한국사회로 돌리고 있다. 수업을 전폐하다시피 학창시절을 보내고 어린 시절부터 운동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외줄타기로 인생을 살아온 그들에게 올바른 교육기회를 주지 못한 사회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프로스포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부조작은 191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월드시리즈에서 일어난 블랙삭스 스캔들이다.
당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인 판사 출신의 케네소 랜디스는 인종차별주의자로도 알려져 있지만 가담자들에 대한 秋霜(추상)같은 영구제명으로 메이저리그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엄한 처벌 덕분에 메이저리그가 팬들의 신뢰를 회복했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한다. 개인의 사정이야 알고 보면 모두가 딱하다. 하지만 그들을 용서하면 한국 프로스포츠계는 늘 의혹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스포츠에 가장 필요한 것은 一罰百戒(일벌백계)로 보인다.
* News Korea Texas, Inc.(www.newskorea.com) 제공 ‘김홍식의 스포츠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