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vs 파리생제르맹, 레알 마드리드 vs A.C.밀란.
이름만 들어도 설레게 만드는 축구 명문팀의 경기를 뉴욕 양키스 야구장에서 관람했다면 얼마나 믿을까.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06 독일 월드컵까지 여러 축구경기장을 들락날락해봤지만, 야구장에서 축구를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유럽 최고 축구팀들의 경기를 미국 땅에서 보다니.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양키스 구장에 도착하면서부터다. 미국인들의 오락(national pasttime)이라고 불릴만큼 사랑을 받는 스포츠인 야구.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은 그 자체가 뉴욕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물론 난 첫 방문이었다. 야구아닌 축구를 보러가는 것이지만. ^^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설의 슬러거 베이브 루스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무려 1920년 대 선수임에도 여전히 기억되는 걸 보면 미국 야구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인기 있어 왔는지 새삼 느끼게 했다. 유럽에는 축구가 그렇듯이 말이다.
3년전 옛 구장 옆 부지에 새로 지어진 경기장이라 더욱 거대하고 화려했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그 화려함은 더 크게 다가왔다. 밤이 되면 경기장을 화려하게 비추던 조명(照明)과 5만 여명 이상의 관중을 채울 정도로 컸던 응원석 그리고 그들의 함성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듯 하다.
선수들이 입장했다. 그런데 뉴욕 양키스의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등장하는게 아닌가. ?? 알고보니 경기 시작 전 선축 결정을 심판 대신 리베라가 코인을 던지는 것이었다. 리베라도 기분이 묘했을 것 같다. 자신이 뛰던 야구장에서 축구경기하는 것을 보다니.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리베라가 퇴장하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양키스구장에선 두 번 경기가 있었다. 먼저 있었던 경기는 7월 22일 첼시와 파리생제르맹 전. 사이좋게(?) 한골씩 넣으며, 무승부를 기록하고,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특별한게 없었던 조금은 심심한 경기였다. 그럼에도 야구장을 가득채웠던 축구팬들의 열렬한 응원 덕분에 덩달아 신이 났었다.
그리고 8월 8일 열린 레알마드리드와 A.C.밀란의 경기.
기다리고 기다렸던 경기다. 유럽에서도 보기 힘든 명문팀간의 대결. 미국에서 열린 특별한 이벤트(Herbal-life World Challenge)였기 때문에 승리에 대한 부담이 덜했던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았다. 무려 여섯 골이 터지는 등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볼거리로 흥분감을 주었다.
호날두가 2골을 기록하고, 카카는 후반에 교체된 후 3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역시 세계적 스타다운 이름값을 했다. 전반전만 뛰고 금방 교체될 줄 알았던 호날두는 전후반 80여분간 뛰는 등 최선을 다했다. 공이 어디서 날아오든 절대 놓치지 않고 골로 만들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 골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플레이는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관중들을 위한 보너스였을까. 호날두는 다양한 쇼맨쉽까지 보여줬다. 수비수 두 명을 앞에 두고 발재간을 부린다든지, 골 넣은 후에 기쁨의 표시로 특유의 입술을 찡긋 올리는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든지...
정말 여러가지 모습으로 관중을 사로잡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가 왜 그라운드 위에서 만큼은 사랑받는 스타플레이어인지 알 것 같았다. 전광판에 호날두가 등장할 때마다 터져나오던 함성은 훌륭한 선수가 즐비한 레알 마드리드 내에서도 압도적이었으니까 말이다.
경기는 마드리드의 5:1 대승. 호날두는 당연히 ‘오늘의 선수상’을 받았고, 멋진 경기를 보여줬던 선수들은 오만여 관중들의 열렬한 함성 속에 야구장 그라운드를 뒤로 하고 빠져나갔다.
경기장을 나오면서, (지금까지도 이때를 떠올리면 흥분이 된다.) 꿈꾸듯 멍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좋아하는 토레스(첼시), 호날두, 카카(레알 마드리드), 즐라탄(A.C.밀란) 스타플레이어들의 경기를 직접 보다니.
아쉽게도 토레스, 즐라탄은 뛰지 않았지만... 스타플레이어 못지않은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마드리드 무리뉴 감독을 바로 코앞에서 만나는 행운까지 얻었다.
이런 흔치 않은 일이 나의 뉴욕 생활 첫걸음에 일어나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뉴욕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히히...
글 구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