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짐승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자!
“양심수송환으로 남북관계 뚫어야”
지난 12월 7일 비전향 장기수 오기태 선생이 끝내 가족이 있는 북녘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흔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전남 신안이 고향인 그는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참가해 북으로 갔다가 1969년 남파 후 체포돼 21년을 복역(服役)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돌아갈 때 그는 ‘전향’했다는 이유로 송환에서 배제됐다. “강압에 의한 전향은 무효”라며 전향 철회를 선언했지만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0년 당시 ‘강제 전향’을 이유로 전향 철회를 선언하고 송환을 신청한 사람은 33명. 여기에 송환 관련소식을 전해 받지 못한 비전향 장기수 13명이 2차 송환을 신청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34명은 이미 고인이 됐고 이제 남은 사람은 12명이다.
그중에 대장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88살의 박종린 선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는 34년의 수감 생활 중 지옥 같았던 전향 공작을 견뎌냈지만, 교회에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전향자’로 분류돼 1차 송환 대상에서 배제됐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짐승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아닌가! 같은 핏줄을 나눈 형제들끼리 총을 겨누고 싸운 전쟁이 끝난 지도 어언 70년이 되어 간다. 남쪽으로 내려온 사연과 시기야 어떻든 북녘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적게는 20년, 많게는 30년 이상 혹독한 감옥살이를 했다.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포로가 된 사람들은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으로 돌아갔어야 했지만 강제로 억류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을 억류해서 어떤 이득이 있는가? 인도주의라 해도 좋고 사람의 도리라 해도 좋다.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 아닌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돌려보내자.
남북관계가 안갯속이다. 사람의 도리가 우선이지만 꽉 막힌 남북관계를 열기 위해서라도 비전향 장기수들을 돌려보내자. 북이 안 받을 이유가 없다. 그 과정에 대화가 이루어지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다 보면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 장기수들에 대한 북의 입장은 일관된다. “살아만 있어라. 반드시 데려오겠다”는 것이다.
2000년 북으로 돌아간 어느 비전향 장기수의 수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60년대 초대소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기 전날 새벽에 갑자기 옷차림을 정리하고 대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무슨 일이지?’ 생각하는 순간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로 김일성 수상이었던 것이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에
게 김일성 수상은 “고향은 어딘가, 가족은 누가 있는가, 지금까지는 무얼 하고 살았는가?” 등을 물은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동무에게 부탁이 하나 있소.”
그는 당연히 남쪽에 내려가서도 신념을 잃지 말고 잘 싸워달라는 부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내려가면 붙잡힐 가능성이 높은데, 버티지 말고 전향을 강요하면 전향하시오. 우리는 동무를 믿소. 그러니 살아만 있으시오. 반드시 데리고 올 테니.”
김정일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비전향 장기수 송환에 대한 북측의 입장은 “전향 여부와 상관없이 송환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전원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고 다르겠는가.
지금 우리 당국에서 설탕과 술을 바꾸자, 개별관광을 해보자는 등의 제안을 하고 있는데 진정으로 북과의 대화를 원한다면 그리고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고 싶다면 비전향 장기수들부터 돌려보내자.
1993년 이인모 송환을 기억하라!
정부 당국의 입장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2000년에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전향했고, 전향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북으로 돌려보낼 ‘법적’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1차 송환에서 빠진 사람들 중에는 전향을 하지 않았지만 송환 사실을 몰라 신청하지 못한 경우도 많고, 인민군으로 내려왔다가 제네바협정(국제법!)에 따라 포로교환 때 송환되어야 했으나 못 돌아간 경우도 있으며, 고문에 의해 강제전향 당했다며 ‘전향 취소’를 선언한 경우도 많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간첩’으로 몰려 수십년 동안 고통받고 사회에서 배제됐던 사람들도 재심을 받고 무죄 선고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당국이 의지만 있다면 2차 송환 신청자들을 재조사해서 비전향장기수들과 인민군 포로는 말할 것도 없고 공안당국의 살인적인 전향공작으로 강제된 ‘불법 전향’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옛 격언에 “일이 하기 싫으면 핑계가 백 가지가 생긴다”고 했다. 지금 우리 당국의 입장이 딱 그렇다. 문제는 현실을 돌파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는 법이다. 북측은 ‘정면돌파’를 주창하고 있는데, 우리는 ‘일점돌파’라도 해보자. 비전향 장기수 송환이 그 방안이다.
백번 양보해서 송환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모두 돌려 보내기 어렵다면 우선 박종린 선생부터 돌려보내자.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의 그는 전향을 한 것도 아니고, 북녘에 외동딸 옥희를 두고 있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를 구급차에 실어서 북으로 돌려보냈다. 분단 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잡혔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초로 평양을 방문하고 6·15공동선언을 공표했다. 이후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으로 돌려보냈다. ‘촛불시민들이 만든 정부’가 아닌가. 못 할 이유가 없고, 망설일 시간도 없다.
피를 나눈 형제를 증오하고 소멸시켜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은 짐승의 논리다. 아니, 짐승들도 자신의 생존과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의 법칙에 충실할 뿐 동족을 잡아먹지는 않는다. 제발 지금이라도 짐승의 시대에서 사람의 시간으로 돌아가자! 이제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향으로 가고 싶은 자, 그곳으로 돌려보내자.
글 | 정용일 (사)평화의길 대외협력위원장
글쓴이는 남과 북, 해외가 함께 만드는 통일 정론지 <민족21>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2018년부터 (사)평화철도에서 경원선 복원을 위한 캠페인과 침목 기증 운동 등을 벌이고 있고, (사)평화의길에서 내 마음의 평화, 내 이웃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글은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기관지 <민족화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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