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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한국 문화: 미국문화의 침투와 한국문화의 종속성

글쓴이 : 이재봉 날짜 : 2015-04-19 (일) 17:49:38

 

1960년 4월혁명은 부정선거에 대한 반대와 항의에서 일어났지만, 그 영향으로 민족주의를 불러왔고, 이는 반외세 자주운동으로 이어졌다. 4월혁명 1주년에 맞춰 나온 <4.19 시국선언>이 지적했듯, “반혁명적 보수 야당”이 “외세와 결탁하여” 4월 혁명을 중도에서 정지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력으로 이승만이 물러나는 바람에 1960년 4월엔 주한미국대사를 포함한 미국인들이 환영 받았지만, 7개월 후인 11월엔 “달러가 가져오는 노예근성(奴隸根性)”부터 막아야 한다는 다짐이 나오고, 1년이 흐른 1961년 4월엔 “외세는 물러가라”는 구호까지 거침없이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2015년,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민족자주를 이루자던 4월혁명이 일어난 지 55년이 지났지만 미국에 대한 의존은 더 강해지고 자주는 그만큼 멀어져간다. 분단이 굳어지며 남북 사이엔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커지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추종하는 가운데 민족이나 자주라는 말만 꺼내도 ‘종북’으로 매도당하기 쉬운 현실이다. 이 가운데서도 남북 사이에 이질성을 키우며 가장 자발적으로 미국을 닮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분야가 바로 문화 아닐까.

 

4월혁명에 따른 민족문화 되찾기 운동

 

4월혁명의 영향으로 1960년대부터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미국의 문화 침투를 거부했다. 미군들이 가져온 이른바 ‘GI 문화’나 ‘PX 문화’가 한국에 유행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식민적 미국주의’에 맞서 전통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배금주의와 물질주의, 극단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폭력성과 잔인성, 문란한 섹스와 쾌락주의, 인종차별주의와 자기민족 중심주의 등에 의해 한국의 전통적 사회윤리와 관습이 파괴된다고 분노했다.

 

예를 들어, 국악인들은 미국 음악을 비롯한 서양 음악에 압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학교 음악교육 커리큘럼을 개선해 한국의 전통 민요를 포함한 국악 교육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부 미술학도들은 외국의 미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서구적 미학 개념을 벗어나 우리 미술에서 민족미학의 근원을 찾자고 주장했다. 젊은 연극인들은 한국 연극계에서 유행하던 번역극 공연을 거부하고 한국 작가들이 쓴 창작극을 공연할 것을 주창했다. 대학생들은 1960년대부터 탈춤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1970년대엔 탈춤이나 민속극 전성시대를 열었다.


 

4_19_혁명.jpg

www.ko.wikipedia.org


   

이와 관련하여, 1970년대 중반 한 대학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물질적이고 퇴폐적인 문화에 의해 한국의 전통문화가 파괴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엔 중반엔 진보적 작가, 예술인, 교수, 언론인, 출판인들이 결성한 <민중문화협의회>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문화적 식민지화의 압도적 중압에 눌려 정상적 자기 발현을 억제당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의 문화가 아니라 신식민주의의 문화이며, 민중의 절절한 자기표현으로서의 문화가 아니라 내외의 지배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관제문화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노예화의 문화, 신식민주의 문화, 관제문화, 분단고착의 문화는 결단코 종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은 1980년대 말 이른바 ‘생활문화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상생활에서부터 미국문화에서 벗어나 한국의 전통문화를 발전시키자고 했다. 영어 사용을 될수록 자제하거나 거부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팝송을 부르지 말자고 주장했다. 코카콜라를 마시지 말고, 커피 대신 숭늉을 마시자고 호소했다. 미국 담배 불매운동(不買運動)을 전개하며 청바지를 입지 말자는 주장도 폈다.

 

1960년 4월혁명부터 약 20-30년 동안 전개되었던 민족문화 되찾기 운동의 모습을 대충 그려보았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다시 20-30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우리 문화의 모습은 어떠할까.

 

나는 우리의 전통과 민족문화만 고집하며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문화를 배척하는 이른바 ‘국수주의’는 반대한다. ‘국제화’나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 국경이 낮아지며 ‘지구촌’이라는 말이 귀에 익은 터에 그것은 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외국문화를 분별없이 선호하며 특히 잘못 받아들이는 것은 해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북 사이의 민족 동질성을 바탕으로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두 가지만 얘기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개인주의와 병적인 이기주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너무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흐른다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남을 의식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풍조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해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비슷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 둘은 크게 다르다. 개인주의는 말 그대로 ‘개인’을 중시하는 것이고 이기주의는 ‘이기’ 즉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다. ‘개인’은 집단이나 단체와 반대되는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요, ‘자기’는 다른 사람과 반대되는 ‘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집단이나 단체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을 중시하거나 앞세우는 것으로, 이에 반대되는 말은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다. 그리고 이기주의는 남이야 어떻든 나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태도나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에 반대되는 말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생각이나 행위를 의미하는 이타주의(利他主義)다.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 또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혼동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주의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향이 크지만, 개인주의엔 매우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앞에서 개인주의를 ‘개인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을 중시하거나 앞세우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개인은 ‘나’뿐만 아니라 ‘너’와 ‘그’도 포함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점이다. 즉 나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을 먼저 추구하더라도, 남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러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되 남을 배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에 대한 배려와 관련하여 다수결제도의 논리도 비슷하다. 다수결제도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칙 또는 필수요인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에 대한 철학은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고 잘 지켜지고 있지도 않다. 건전한 다수결의 철학은 ‘다수의 통치 (majority rule)’와 ‘소수의 권리 (minority right)’가 공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수가 통치하되 소수의 권리를 배려한다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이 다수의 횡포만 보일 뿐이다. 특히 국회에서 그렇다.

 

우리는 서양 특히 미국의 개인주의와 다수결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이나 소수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만을 내세우는 이기주의만 키워오고 다수의 횡포만 부려온 셈이다. 세계화를 지향하며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탕이나 알맹이를 모른 채 껍데기만을 따라하는 짓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주의를 모욕하지 말아야 하고, 다수결제도를 남용(濫用)하거나 오용(誤用)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개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미국을 들 수 있다. 개인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미국에서는 건물을 출입할 때 저만큼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일행이나 아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가 올 때까지 출입문을 잡고 서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차를 몰고 가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을 발견하면,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도 차를 멈추고 보행자가 먼저 가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사회에서는 바로 뒤에 사람이 따라와도 그를 위해 출입문을 잡아주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뒷사람이 다치기 쉬운데도. 횡단보도에서조차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보이면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기는커녕 자신이 먼저 지나가겠다며 저 뒤에서부터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번쩍거리기 일쑤다. 보행자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이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지정된 주차공간이 많이 있는데도, 몇 분을 걷기 싫어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건물입구에 차를 세워놓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주차 금지’라는 표지판이 서있는데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주위 사람들이 책을 보든 잠을 자든 큰소리로 통화하거나 떠드는 게 승객으로서의 자유와 권리일까. 이렇게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남에게 손해나 불편을 끼치는 행위는 개인주의가 전혀 아니다. 무례요 병적인 이기주의일 뿐이다. 공공영역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개인주의인 것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강한 집단주의 특성을 지닌 우리 사회가 근대화를 이루면서 점차 개인주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경제적으로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사회문화적으로 개인주의 특성이 매우 강한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니 당연한 변화다. 또한 가족규모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고 주거형태가 방이 많은 아파트로 변하면서, 아이들도 방 한 칸씩 독차지하며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됨으로써 개인주의가 발달한 측면도 있다.

 

참고로,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집단주의 특성이 가장 잘 남아있는 분야가 언어일 것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우리’보다 ‘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예를 들어, ‘나의 가족’, ‘나의 집’, ‘나의 선생님’, ‘나의 학교’라고 부른다. 심지어 ‘나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는 ‘나’보다 ‘우리’라는 말을 훨씬 즐겨 쓴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도 ‘우리 집’이라고 말하고, 소속이 다른 사람에게도 ‘우리 학교’라고 부른다. 사람을 가리킬 때는 더욱 심하다. 형제가 없는 사람조차 남에게 ‘우리 부모’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씨가 다르거나 배가 다른 형제가 되지만 이를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보다 심한 경우도 있다. ‘우리 남편’이나 ‘우리 마누라’라는 말이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도 함께 관계를 가져서는 안되는 배우자에게조차 ‘우리’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다. 내가 다른 여자에게 말만 걸어도 못마땅해 하는 ‘내 아내’도 남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우리 남편’이라고 말하니 얼마나 큰 모순인가. 냉정하게 따져보면 일부일처제 (一夫一妻制) 사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고 도저히 쓸 수 없는 말이지만,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문화가 얼마나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집단주의가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하는 과정에서, 앞에서 얘기했듯 병적인 이기주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가치의 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남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개인주의를 확산시켜온 반면, 북한에서는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사회의 획일성을 강조하고 집단주의를 강화해왔다.

 

북한에서는 집단주의를 유별나게 강조한다. 집단주의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채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전체주의에 가까울 정도의 강한 집단주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로동당규약 및 헌법에 집단주의를 명시하고 있을 정도다.

 

조선로동당 규약을 보면, “당원은 고상한 공산주의적 도덕성을 소유하고 조직과 집단을 사랑하며 조직과 집단의 리익을 위하여 개인의 리익을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고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한다는 집단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당규약에 못박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자신보다 먼저 사회와 집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것을 고상한 도덕과 참된 사랑으로” 여긴다.

 

헌법에는 집단주의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명시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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