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가족만나기
외할아버지(리종만) 묘 방문:
안내원이 외삼촌과 그의 막내딸을 ‘가족 만남의 장소’에 차로 모시고 왔다. 우리는 함께 ‘애국렬사 묘지’로 가서 외할아버지(리종만) 묘를 참배했다. 1986년에 애국렬사묘가 생겼고, 그 때 이곳으로 할아버지묘를 이장(移葬)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묘 앞에는 ‘조국 통일 민주주의 전신 의장’이라고 써있다. 안내원은 조선대백과사전에 외할아버지에 대한 글이 나온다며, 자신의 스마트 폰에서 인터넷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찾아 보여주었다. 김일성전집 9권 안에 리종만과의 대화 (194.6.25일) 가 있다고도 말해주었다. 토론토에 살고있던 내 어머니가 1975년에 북조선에서 돌리던 신문에서 우연히 할아버지 사진을 처음 보고, 북조선으로 찾아가서 할아버지를 27 년만에 만날 수 있었고 할아버지는 2년 후1977년에 돌아가셨다. 그 후 북조선 정부에서 가족들이 할아버지 묘를 밤문하고 싶으면, 환영한다는 소식을 어머니를 통해 전달 받았다. 나는 남편과 함께 북조선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때가 1979년 말이니 내가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몇달전이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사회 인류학자로서 북조선 사회가 궁금했다. 우리가 도착하여 무엇을 알고싶고, 보고싶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거침없이 주체사상에 대해서 알고싶다고 했다. 사회인류학자들의 하나의 큰 호기심은, 많은 다른 사회들이 어떤식으로 그 사회의 전반적 사고방식을 구축하는가이다. 한달동안 주체사상 연구소에서 한 교수가 우리가 묵고있는 호텔에 와서 강의를 해주었다.
외삼촌과 막내딸
가족 만나기 장소에서 외삼촌과 그의 막내딸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삼촌은 올해 84세, 정부에서 일을 하다 은퇴하고 지금은 열심히 운동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한다고 했다. 외삼촌은 내가 40년 전에 왓을때도 뵈었는데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어도 별로 낯설지가 않았다. 막내딸은 처음 만났는데, 나이가 40이 넘었지만, 건강 문제로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조카가 나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수 있는지 물어왔다. 아마도 장래가 걱정이 되나보다. 내 어머니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큰 돈을 주셨다던데 나는 별로 여유가 없어서 적은 액수만 쥐어주었다. 북조선에서 가족만나기는 어떻게 보면, ‘가족도움’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금이 귀한 북조선 경제에서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미화는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한 목사님이 자신의 여동생을 위해서 식당을 열어 지금은 조카가 운영하고 있는것을 보앗다. (아래사진) 가족만나기 장소는 나에게는 좀 불편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해야하고, 내야하는 돈이 미화이며, 그 액수는 국내 가격보다 훨씬 컸다.
4월 19일
아침: 사외과학원 민속학연구소 소장과의 담화 (해동산 호탤 면담실에서)- 민사속학에 대해서
오후: 주체사상 강연 - 사회과학원 김일성-김종일 주의 연구소 실장
북한의 민속학:
1952년에 사회과학원을 창설, 1962년에 사회과학원 연구소 (철학,경제, 민속 등등..)가 생겼다. 민속학연구소가 독자적으로 생긴 때는 1980말-1990경이다.
북조선의 민속학이란 일본의 식민지 영향으로 고유한 민족성이 없어졌기때문에 다시 민족성을 일으키는 것이 민속학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일재 잔재 청산으로 조선의 고유한 식생활, 옷차림 (70년대 말 남자들도 바지 저고리를 입었다), 민속 음악, 놀이 등이 새로 복원되었다. 1980-95 사이에 조선 민속전통 7권이이 출간되었고, 50권의 조선 민속학 총서, 조선 민속학 개론도 출간되었다. 4월에는 매년 인민축전 (또는 예술축전) 이 열린다. 1956 년에는 민속박물관을 건립했고 최근에는 낙랑 박물관, 고구려 박물관을 설립중이다. 박물관은 인식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일본의 박해(迫害)와 만행(蠻行)을 알리기 위해 정신대 위안부 문제, 미국의 착취 등을 전시해 인식시키는 교육의 장소이다. 다시 말하면, 서양의 민속학과 달리, 북한의 민속학은 일본식민지 시기에 짓밟혔던 조선인의 전통적인 문화, 정체성을 다시 살리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이 관점은 ‘조선의 사계절민속’ 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있다.
‘각 민족에게는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양되는 고유한 정신과 기질, 생활관습과 기풍 등으로 표현되는 민족성이 있다. 이러한 민족성을 옳게 살려나가는 것은 민족이 생존하고 발전하며 자기의 존업과 영예를 고수하기 위한 근본조건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의 민족말살행위가 극도에 이르고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로 제기되고있다.’
북한의 주체사상:
사회과학원에 있는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소실장이 간단한 강의를 해주었다. 이분은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요약해보면,
“주체사상의 두가지 출발점: 혁명의 주인은 인민 대중이다. 자주적 신념 을 가지고, 자기를 믿고, 당이 있고 인민이 있다는 믿음이다. 주체사상은 60년 말까지 정립되어있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김일성주의라고 할수 없었고 70년부터 독자적인 사상이라는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막스, 레닌, 스탈린 주의와는 다르다.
1974년에 주체사상이 선포되었다. 구성체계와 내용은 신화 발전, 심화 발전, 철학화, 구체화라고 할수있다. 철학적 기초가 주체사상이다. 70년대에 “수상장군주의” 라고 불러야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사회 주의를 지키는 문제는 경제 건설, 국방건설이다. 이 관점을 ‘병진 로선’이라 고 부르는 데, 이것은 인민을 위한 길이다. 인민 대중 중심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저녁식사:
초대소에서 해외동포 위원회 국장과 캐나다 대표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를 돌보아준 국장과의 마지막 이별 인사 자리인 것같다. 4월 21일 아침 이른 새벽에 우리는 떠나기로 되어있어 정식으로 차리고 양도 많았다. 음식은 맛있고 정성스러운 손님대접이었으나 이렇게까지 모든 손님을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4월20일
소년 어린이 궁전 방문
이번에 북조선을 방문한 해외동포들이 전부 어린이 궁전을 방문하는 것같다. 캐나다 대표들이 도착하자, 한 여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자기가 안내를 한다고 소개하며, 환영한다는 인사를 했다. 이 안내 학생 자신도 오후 3시반에 학교가 끝난 후 이 궁전으로 와서 공부를 하는데, 웅변연습을 한다고 했다. 이 건물은 참으로 긍전이라 부를만큼 규모가 컸다. 여러개의 교실에서 어린학생들이 무용, 노래, 악기 연습을 하는것을 본 후에, 대극장으로 가서 공연을 보았다. 그들의 수준이 거의 직업인이라고 할 정도로 높았다. 이 어린이 궁전에서 느낀 것은, 나라가 얼마나 어린이 교육을 중요시 하는가를 알 수 있었고, 이런 교육을 개인의 부모가 부담하는것이 아니라, 나라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나라의 국민이 될 아이들의 교육은 나라가 책임지며, 그 하나하나의 국민이 여러면으로 (지적, 예술적, 신체적) 균형있게 잘 발달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 하나의 좋은 예가, 내가 묵고 있던 초대소에서 일하는 여성동지들이다. 그들은 단순한 식당 종업원들이 아니고,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 연주도 교육 받은 나라의 일꾼들이었다.
사진 : 소년 어린이 궁전 앞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학생과 함께
떠나기 전날 점심 식사
초대소에서 해동 부국장과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이 식사도 우리를 돌보아준 부국장과의 마지막 이별인사인 셈이다. 정식식사였고, 대단히 맛있었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이 보였다.
에필로그
이 여행을 끝내는 기분은 마치 내가 Wonderland에 갔다온 Alice 같은 느낌이다. 너무도 다른 세상,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모든 것이 내가 사는 캐나다 몬트리얼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너무나 상대방에 대하여 예의 바르고, 무엇이 자신들에게 중요한지 정확하게 알며, 그것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는 나라였다. 이런 점들은 우리가 평양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을 나온 사람들의 태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초대소에서 먹어본 음식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상대방을 배려한 정성이 가득 담겨있다고 할까.
내가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20년 동안 일을 하면서 제일 싫었던 것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커피 마시려고 가는 나를 세워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눈을 끄는 것이다. 내가 안중에 없다면 왜 나를 불러세웠을까? 언제나 나를 혼동하게 만들었고, 기분이 나빴었다.
북조선방문에서 내가 받은 메시지는 이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조국과 수령님이다. 수령님이 없으면 조국이 없고, 조국이 없으면, 국민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 학생들이 노래에 나타나는데, 노래 제목이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우리도) 없습니다’ 이 노래 제목은 북조선을 방문한 미국 해외동포 김숙희 기자가 6개월동안 엘리트 학교에서 19살난 남자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리키며 얻은 경험을 쓴 책 제목이기도하다. 그의 의견은 ‘북조선 사회자체는 그 아이 들을 아무것도 할수 없게 통제하고, 모든 것을 모르게 가두어 두는 사회제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학생들이 그러한 노래를 부를까? 이러한 관점, 조국과 수령님과 나를 한 몸으로 보는 관점은 북조선사람들의 매일 매일 생활에서 보인다. 예를 들면, 가라오케에서 부르는 노래, 학교에서 부르는 노래, 이 사람들이 쓰는 소설책, 시, 들이 전부 수령님이 인민을 위해서 이루신 것에 대한 칭송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이것은 수령님이 인민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것에서도 똑같이 보인다. 서로의 사랑인 것 같다. 이런 수령님에 대한 사랑과 수령님의 사랑이 ‘봄안개 흐른다’ 라는 시에 나온다.
눈보라!
눈보라!
채찍같은
칼날같은
눈보라, 눈보라…
땅이, 수림이
얼음같이 쩡쩡 터갈라지는 밀영의 밤
그 비명소리를, 그 신음소리를
가슴저미는 아픔으로 들으시며
눈발속에 서계시는 김일성 장군님!
눈우에 찍으신 무수한 자욱
그 깊은 자욱 자욱우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실으셨는가
빼앗긴땅, 짓밟히는 땅
얼음같이 쩡쩡 터갈라지는
그 땅 그 수림들…
그 비명소리ㅡ 그 신음소리
구원을 바라는 부르짖음!
소생을 바라는 부르짖음!
이러한 ‘사랑의 언어’를 쓰는 제도를 얼마전에 한번 경험한 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제주에 있는 에미서리 공동체에서 살면서, 거기에서 하는 세미나에 참석할 때 한 경험이다. 그곳에서 알게 된 것은 ‘사랑의 언어’, 사람중심의 세상관이었다. 에미서리의 초점은 : 지구에 사는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이다.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어도, 우리의 천사본성을 기억하고, 사랑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가야한다는 것이 에미서리의 철학이라고 이해했다. 미국에 사는 해외 동포 김대실의 북조선을 그린 다큐영화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북조선에서는 ‘사람이 천국이다’. 새로운 세상의 모델이 나에게 나타난 것 같았다. 이것이 나의 대답인가? 나는 올해 74살이다. 나는 사회 인류학자로 여러 사회를 공부하면서 좀더 공평한 세상, 좀더 정직한 새로운 세상의 모델을 한평생 찾고 있었다.
내가 이글을 쓰면서, 한가지 의문이 떠오르는것은, 왜 북조선의 세상이 나에게는 ‘사랑의 세상’이라고 보여지는데,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통제의 세계’, ‘사람이 안보이는 세계’로 보이는가 이다. 왜 수령에 대한 사랑을 ‘우상 숭배’ 라고 보는 지. 나에게는 사랑으로 보이는데…. 주체사상에 대해서 나에게 간단한 강의를 해주신 김일성대학 한 교수의 말에 의하면, 숭배는 인간의 고상한 감정이며 자기 운명과 뗄 수 없을 때 숭배의 감정이 생긴다고 한다.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우리가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지고 있어서 그런가? 아직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위에서 말한 북조선의 포용성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조선에 보낸 공개 서한에서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힌후 북조선의 응답은 ‘우리는 아무때나 어떤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다시금 밝힌다’ 라고 했다. 이 응답은 북조선의 포용성 뿐 아니라, 무엇이 자신들에게 중요한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 사진 박옥경 몬트리올대 객원연구원
* 저자 프로필
박옥경 교수는 현재(2018) 몬트리얼대학 동아시아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이다. 퀘벡시에있는 라발대학에서 사회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8). 논문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있는 모계 사회의 특이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를 다루었다. 논문외에 여러개의 글을 아카데믹 저널에 발표했다.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20년동안 사회 개발 문제 (특히 여성의 사회적 위치) 고문으로 일을 했으며, 2010년 은퇴후에 제주도 해녀에대한 연구를 시작해, 제주대학에서 여름학기 강의를 하며 스위스에 있는 재단에서 연구비를 얻어 현지답사를 했다 (2016). 그결과로 2018년 10월에 이연구 재단에서 (Fondation Barbiere-Mueller) 책이 출판됐다. 책제목은 <이중 신화, 신유고사상과 제주의 해녀> (Dual Mythology, Neo-Confucianism and Women Divers of Jeju, Korea). 이 책은 제주의 해녀 사회와 수마트라섬의 모계사회에서 비슷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