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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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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게 비교할수 없는 명예입니다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46)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2-01-09 (일) 17:39:45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46)

 

-----사랑하는 노야에게

답답하게 소식 기다리다 한 10일 간 출장을 다녀 왔더니 당신의 편지가 2통이 기다리고 있어서 무척 반가왔소. 나는 더욱 건강헤졌고 온몸에 힘이 넘치오.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 추석이라 조금은 鄕愁를 느끼고 왔소. 옥겸이네에서 송편도 얻어 먹었소.

 

그건 그렇고 몹시 고생을 했다니 내 마음도 무겁소. 역시 부처님 말씀대로 애착과 사랑이 모든 아픔과 고뇌의 원인임이 틀림없구려. 당신 덕에 난생 처음 사람 일로 마음을 태우는구려. 초조 그리고 물거품같은 헛생각 등등이 너무나 자주 실감으로 느껴지니 말이오. 그렇게도 건강을 챙기라고 노래를 하고 애원을 했건만 당신의 마음이 모질지 못함과 내 말을 흘려 듣는 나쁜 버릇으로 기인된 일이니 이를 악물고 이겨내기 바라오.

 

생각하면 내가 노야를 너무 맹목적으로 좋아한 소이로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결국은 우리 둘을 아프게 만든 화근이 되었다 생각하고 자책을 하고 있소. 너무도 값비싼 댓가를 치루었으니 그것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노야의 피를 마르게 한 것이 아니었소.

 

추후 다시 한번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나도 울며 노야를 떠날 생각이오. 모든게 너무도 덧없이 느껴지니 말이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사려 먹고 몸을 하고 건강을 회복하기 바라오. 그리고 세월을 기다리면 세상의 영광과 명예는 노야 당신 것이 될 수 있소.

 

며칠 책 일은 엄두도 못 내었으나 내일 부터는 다시 修道로 들어가오. 그리고 한 가지, 나보다 앞서 간 哲人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너무나 유사한 점을 수없이 발견하게 되오. 기쁘기도 하고 한편은 아쉽기도 하오. 그럼 만나는 날까지 건강 회복하기 바라오. 이곳 일은 추호도 걱정할 일이 없소. 승효.

 

 

***당신에게

추석날 돌아와서 송편까지 얻어 잡수셨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몸도 더 탄탄해 지셨다니 허벅지를 만져 봐야겠어요.

 

허리와 다리는 많이 나았어요. 병원약 말고 어떤 할매가 만드는 환약으로 된 약을 엄마가 지어주셨는데 이걸 먹으면 토하고 설사하고 밤새도록 배가 비트는 듯이 아파서 비명을 질러 대었어요. 아부지가 보시고 아이 잡겠다고 엄마한테 화를 내시고. 배가 아플수록 효과가 좋다나?

 

지금 막 엄마가 전화해서 그 약 먹고 나았다면서 또 먹으라기에 미쳤어 또 먹게 하고 소리를 꽥 질렀어요.

 

당신 편지는 아무리 읽어 보아도 보고싶단 말은 없고 책임감 없고 야무지지 못하고 나쁜 버릇만 있고 제멋대로이고 온통 나쁘게만, !

 

사랑도 허무하니 도나 닦겠다? 위대한 철학자가 되든 땡땡이 중이 되든 눈물 머금을 것 없이 떠나려거든 빨리 가버려요. 떠날 사람이 추후 어쩌니 뜸 들일 것 뭐 있어요? 편지도 않고 쫒아 가지도 않을테니까 염려 놓으시죠, 이 쫄병아.

1976914일 노야.

 

 

-----사랑하는 심통에게

도대체 사랑에 푹 저려진 내 말을 안 들으면 누구 말을 듣겠오. 나의 사랑을 하찮은 市井人들과 같은 부류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코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소.

 

나는 나의 반려자로서 나의 분신으로 당신을 사랑한거요. 당신이 그런 사랑을 거부한다면 나는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겠소. 뭔가 뿌리깊게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오. 적어도 나의 평생의 아픔과 고뇌와 기쁨을 함께 할 사람으로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고 항상 생명력이 넘치는 그런 사람을 원하오.

 

건강은 우리 두 사람의 의무요 책임인 것이오. 내가 그토록 당부하고 애원하지 않았소. 하도 말을 듣지 않으니 이제는 폭력이라도 쓸까 하오. 당신이 아프면 내겐 그건 너무도 큰 상처가 되고 도무지 안정이 안 되오. 건강한 당신이 내 고향이 되어주어야 하오.

 

나는 콧물 감기가 조금 들었을 뿐 건강은 매우 좋소. 오늘 무덤가에 앉았다가 갑자기 頓悟했소. 돈오란 급작스러운 깨달음을 말하는 佛家의 말이오. 어제와 오늘 한 가지씩 깨달았는데 萬法一如란 것이 정말 진리이듯이 모든 생각이 정당한 귀결이 지워졌소.

 

나 자신도 신비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오. 내일부터는 실존철학에서 나의 생각을 비교 검토해 보려고 하고 있소. 지금까지 認識論과 유물론 그리고 기독교 불교에서 흐르는 주류는 모두 나의 생각 속에 포함되는 것이었다오.

 

이제 예술적 진행과 실존주의만 포섭되면 끝이 나는 것이오, 시간 봐서 동양철학도 검토할 생각이오.

이제 책이 되는 것은 오직 시간 문제일 뿐이오.

모든 것이 심통 군의 돌봄인 듯 하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오직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종교가 되게 하기 위해 정말 나의 모든 능력과 투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오.

 

그리고 109일날 온다는 것은 생각도 마오. 당신도 피곤하지만 나의 일에도 방해가 될 뿐이오. 무엇 하나 탄생되려면 여러 사람의 합심된 一念이 중요한 것이니 그리고 건강 유의하라는 내 소원 좀 들어주고. 승효.

 

 

***폭군 네로에게

폭력을 쓰시겠다? 그래요. 한 번 써 보시지요, !

 

날씨가 차고 해가 잘 나지않아 논을 지날 때마다 흉년 들까봐 마음이 졸여지더니 오늘은 가을 볕이 따갑게 내리 쬐는군요. 당신은 오늘도 무덤가에 도사처럼 앉아 계시는지요. 찬 땅에서 습기가 올라 올텐데 하루종일 앉아 있다 골병 들겠어요. 걱정되어요. 뭘 좀 깔고 앉아요.

 

유기춘 문교장관이 뇌수술 받고 경과 좋아서 퇴원했다더니 또 무슨 수술받으러 입원했다는 뉴스가 있었다길래 좀 들을까하고 도서관에 왔더니 다 끝나버렸군요. 장관이 바뀌면 당신 복학이 좀 수월하게 될려는지 기대를 좀 했어요.

 

요새는 송선생 장선생은 애인 의사국시가 언제니 졸업카니발을 했다니 그런 얘기를 하고 주물로 만든 의대 졸업패를 보여주고 해서 약간 언짢았어요. 그럴 때는 속으로 얼른 세월만 가거라 그때는 모든 게 판가름 난다하곤 해요.

 

며칠 심통 부린 일에 반성하고 있어요. 좀 약해져 있었지만 당신이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듯한 투쟁을 생각하면 제가 약해질 수 없지요. 저는 믿고 있어요. 우리에게 돌아 올 영광을, 그러니 찬 땅에 몇 시간씩 미련스레 앉아 있는 일은 제발 말아 주세요.

1976922일 노야.

 


 

***사랑하는 당신

집 앞 논은 벼베기를 끝내고 볏단이 죽 누워있어 장관이예요. 당신이 보시면 그러겠죠. 모가 조금 자란 걸 보고 갔는데 벌써 추수가 끝나다니 세월 한번 빨리 간다. 아직도 산기슭 무덤가에 앉아 책을 읽다 한 순간씩 절 괘씸해 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하는지요.

 

당신의 편지는 수없이 읽었어요. 무어가 뿌리깊게 잘못된 게 아니라 당신이 미치도록 그리워 발작이 나서 속을 뒤집고 놓고 싶었을 뿐이예요. 나보고 심통 군이라 했잖아요.

 

체육대회 가을소풍 등 행사를 다 끝냈어요. 연일 쌓인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직무에 충실하라는 당신의 말씀 때문에 조금도 짜증을 내지 않았어요. 집에 돌아오면 따뜻이 맞아 주는 건 침대 위에 일부러 죽 늘어놓은 당신의 편지입니다. 마치 당신이 거기에 들어 누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우리를 묶는 제한들은 삶을 알차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귀한 단련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밀어 닥치는 시련이 당신을 더 한층 자유롭게 만들고 고통없이 사는 자의 삶보다 몇배의 진한 삶을 만들어 주듯이

 

당신이 제 남자라는 것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명예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부터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표본이 되리라 결심했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체험을 찾는 끊일 줄 모르는 투지가 우리의 사랑을 표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리도 행복한 여자가 될 줄이야!

 

방을 치운다고 마루 문을 활짝 여니 차가운 초승달이 낮게 떠 있습니다. 당신도 저 초승달을 보고 있으리라. 밤이 길어져 고즈넉한 시간은 많아 좋지만 당신은 찬 기운으로 썰렁해서 더 괴롭겠지요. 빨리 이 나라가 부자가 되어 군인 간 애인 걱정 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19761017일 노야.

 

 

___사랑하는 노야

나는 만고강산으로 잘 있고.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소. 지금 쯤 노야는 또 다시 눈만 말똥말똥 바람같이 왔다 간 못난 졸병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이곳은 금년 수해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창 추수에 바쁘고 들은 흥분과 사람들로 덮여 있소. 농사는 그런대로 잘 된 것 같고

 

나에게는 오직 노야 뿐, 같이 있으면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일순간의 春夢 같기만 하오. 강짜도 심하고 욕심도 많은 여자지만 역시 노야는 이리 봐도 내 사랑 저리 봐도 내 사랑이오.

 

가벼운 기분을 가지고 지내며 가벼운 운동으로 건강하기 바라오. 편지는 자주 할 생각 말고 간간이 소식이나 주오. 승효.

 

 

***보고싶은 당신께

도대체 이 나라 교사는 청소감독원인가, 왜 그렇게 높은 양반들이 자주 오는지 수업하다가도 몇 번 씩이나 후닥닥 청소해야 하는지 짜증이 나서 미치겠어요.

 

웃사람이 짜내는 쓸데없는 일과 미주알고주알 잔소리가 스트레스를 주지만 착착 해내고 돈도 벌어 아무에게도 걱정 안 끼치고 살아갈 수 있다는게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되고 거대한 사회 한 모퉁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즐겁습니다. 일에 대한 존엄성도 느껴지고요. 한 인간으로서 의무와 책임감도 몸으로 실천한다는 게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이선생네 갔다가 이 얘기 저 얘기 귀에 안 들어 오더니 당신한테서 편지 왔느냐 물어 안 왔다 하니까 웬일이죠 어디 또 훈련 가셨나 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려고 해 간신히 참았어요.

 

집에 오면서 내내 밤하늘을 쳐다보며 걸어 왔어요. 찬비가 내린 후라 별들이 더 선명히 빛나고 은하수도 아슴프레 깔려 있어요. 괴로운 훈련을 또 떠났다니 어느 하늘 아래에서 당신도 나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는지..

 

제가 당신을 그리워 하면 당신은 저보다 열배나 더 나를 그리워하고 제가 힘들어 할 때는 당신은 나보다 백배나 더 힘들어 하고 있으리라. 하늘을 우러러 보며 멀리 있는 당신을 수 십번 부르면 당신은 나를 수 백번 부르며 서 있으리라.

 

산기슭 찬 땅에서 부서질 듯한 몸을 누이고 있겠지요. 서러워 마세요. 당신을 만나는 그날 따뜻하게 어루만져 드릴테니까요. 불현듯 노야 하며 들이 닥칠 것 같아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19761115일 노야.

 

 

***노야 보오

소식 반가이 받았소. 이곳도 며칠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소. 이제 大寒도 지났으니 올 겨울은 넘긴가 보오. 나는 건강하고 매일 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소.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어떤 때는 망연하여 어쩔 줄을 모를 때가 계속되지만 모든 진리가 一體임은 파악하게 되었소. 어제 오늘은 큰 수확이 있었고 나의 출발이 정당했음을 확인하게 되었소. 드디어 대망의 변증론과 3段論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다오.

 

그러나 하루하루 쌓여가는 것이 적지 않으나 앞으로도 쉬임없이 가야 할 것이요 끝이 없음이 여기로구나 하는 생각은 언제나 머리에서 떠나지 않소. 오늘은 변증과 3의 통일을 발견했소.

 

각설하고 3에 들다 보면 당신을 잊고 지낼 때도 많지만 어둠이 깔리고 고요가 밀리면 그리움이 밀어닥침은 또한 어쩔 수 없는 병인가 보오. 그저 남은 바램이 있다면 포동포동 보기싫을 정도로 살찐 그대를 보는 일이요. 많이 먹고 넓은 마음으로 지내기 바라오.

 

그리고 2월 말에 가도록 노력해 보겠소. 그저 하루 하루가 아깝고 광음이 빠름이 안타까울 뿐이오. 남산동 어머님께도 안부 전해 주시오.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게 나의 금년 예감이오. 살 많이 찌오.

1977. 1.20. 승효.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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