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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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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女神 노야에게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45)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2-01-04 (화) 15:15:57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45)

 

 

----그리운 노야에게

당신의 글을 받는 날은 머리가 맑아지오. 나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건강하고 보람있게 보내고 있소. 당신도 반복되는 일을 지겹게 여기지 마오. 반복이란 숙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니 말이오. 영보 군이 거창에 자주 온다 하니 나도 한결 마음이 놓이오. 전축도 하나 사서 집에 보냈다니 어머님이 효녀를 하나 두셨더구먼. 나도 흐뭇하오.

 

요즈음에 와서 느끼는 일이나 사람들이 모두 즐거움으로 모든 행위의 규정 근거로 삼는 것을 발견했다오. 노얀 그러지 말기 바라오. 내가 가질 즐거움에 오히려 반하는 것일지라도 단호한 결의로 자신의 의지를 결정하는 것만이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의무 속에서 살아가는 내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 되는 거라오.

 

그것이 바로 자기 의지를 이성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고 곧 도덕적 삶의 모습이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이오. 그러니 귀찮고 힘들더라도 운동도 하고 밥도 먹고 의욕적으로 지내시기 바라오. 알았어요?

이만 안녕, .

 


 

****사랑하는 내 님께

어제는 비가 무섭게 내렸습니다. 밤새도록 따루는 비소리에 몇 차례나 깼습니다.

오늘 아침 말갛게 갠 하늘을 보고 당신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어요. “고통이나 환희는 순간적이오

 

어제 무섭게 퍼붓는 비와 시커먼 하늘은 그때는 영원히 그럴 줄 알았지요. 먼 날을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은 언제나 그때가 다인 줄 알고 안절부절 하지요. 당신의 지혜로운 음성은 깊은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저를 깨우쳐 줍니다. 당신은 자신과의 투쟁으로 저는 당신을 향한 기도로 우리의 삶은 참될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선생은 당신이 이미 저에게 영광을 주고 있노라고 하더군요. 당신이 몹시 그립지만 참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도 충실하게 하고요. 평화만이 가득해요. 제 방은 언제나 정돈되어 있고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러나 안달은 하지 않아요.

 

당신이 싸리비를 꼰아들고 마당을 쓸고 있을 때 저는 거름을 비우고 밥을 짓습니다. 철학자 내 님 쫄병을 빨리 만나게 해달라고 빌겠어요.

197651, 노야.

 

 

***나의 님께

당신께 편지가 늦어져서 미안해요. 성적처리도 마치고 통지표 작업도 이제 다 마쳤어요. 이번 달에는 우리 반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아이들도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라 해요. 아침자습을 열심히 하고 오후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도록 했어요. 이제 조금 자유롭게 해줄 생각이예요.

 

당신의 작업은 잘 되어 가나요? 세상에! 너무 굉장해서 뭐라고 말로 할 수가 없어요. 하루에도 수십번 생각하는 데 생각할 때마다 좋아 죽겠어요.

 

16일 인식 씨 결혼식을 위해 15일 여기서 1시경에 김천으로 가서 상경할려고 해요. 늦어도 7시에는 도착할거예요. 오빠 집으로 갈거예요. 거기서 당신의 연락을 기다릴께요. 저는 명랑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1976510일 노야.

 

 

----사랑하는 노야에게

귀대는 잘 하였고 이제 제법 햇살도 따갑고 초하의 냄새가 물씬하는구려.


당신 곁을 떠나 돌아오니 나무에 잎이 훨씬 더 무성해져 있구려. 자연의 변화는 정말 빠르구려. 또 금새 만남의 기쁨을 가질 수 있으리다. 대구에는 되도록이면 나가지 말도록 하시오. 피곤만 하니 거기서 유유자적 하시오.

 

나도 며칠 푹 쉬었으니 내일부터 서서히 작업을 해 볼 생각이오. 다시 운동도 시작하고 하루하루를 싸워 이겨 나가겠소. 거듭 생각해도 나의 생각은 무척 잘 된 거고 조금만 더 연구를 진행하면 그런대로 쓸만한 게 되리라 믿고 있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빛을 보게 될 터이니 선생님들께 잘 상의 드리고 동생들에게도 전하오. 내내 편안히 있기를 바라고 영보 군과 이선생님에게도 안부 전하고

 

힘든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이제는 별 거 아닌 것이 되어 버렸소. 그럼 또 소식 전하리다. 안녕, 승효.

 

 

***사랑하는 당신께

꿈같은 당신과의 만남은 가고 우린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 갔어요. 당신에게서 반가운 편지가 오고 저는 즐겁게 답장 쓰고

어제 영보 씨가 오셔서 제가 지은 자녁을 먹고 산보하고 탁구 좀 치고 다시 이선생네 가서 맥주 마셨어요. 영보 씨는 당신이 댕겨가니 제가 많이 명랑해지고 기운도 펄펄하다 그러는군요

이번에는 당신이 떠나가고 나서도 기운 빠져 하지 않았어요. 단지 밥을 더 잘 해멕이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공짜 차를 타고 편안히 가셨다니 저도 기분 좋았어요.

 

요새는 딸기철이라 <희망농원>에 여선생들이 와 몰려서 잘 가요. 바로 학교 뒤에 있어요. 작년 가을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길을 밤에 당신이 저를 업고 걸은 적이 있었지요

바로 그 길을 조금 더 가서 있어요. 나무가 울창한 무슨 별장 같은 곳인데 해질 무렵에 앉아 있으면 아주 로맨틱해요.

 

그 길을 따라 죽 걸으면 사방이 탁 터진 광야가 나와요. 주왕산 갔을 때 감자 사러 갔던 그 마을 같은 곳이예요. 이리로 이사와서 살았으면 해요. 감탄 잘하는 당신이 보면 분명히 아, 좋다! 할 거예에요.

 

문고판으로 된 명작소설을 많이 사두었어요. 지금 보는 것은 레마르크의 <개선문>, 그거 읽느라 요새는 당신 생각도 많이 하지 않아요. 그러면 당신도 제 생각을 하지 않고 하시는 일에 몰두할 수 있으리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당신이 하는 일에 제가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제 심술도 못 부릴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구요.

 

책 쓰는 일이 잘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어요. 원고에 <나의 영원한 女神 노야에게>라고 써 놓은 걸 봤어요. 책을 낼 때에도 그렇게 붙이실 건가요? 놀라서 가슴이 쿵쿵거리고 또 부끄러워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어요. 몸 상하면 안돼요. 빨리 시간이 흘러 당신께로 포르르 날아 가고 싶어요.

1976530일 노야.

 

 

----사랑하는 노야에게

모든 것은 쾌적하고 최상의 상태요. 오히려 노야가 고생이 많아 미안하오. 나는 정말 복이 많아서 번갯불처럼 섬광이 우연히도 다가오고 가만히 되씹으면 이상할 정도로 잘 맞아 들어가오. 아마 이것도 곧 고갈되리라고 생각은 하지마는 참 상쾌한 일이오.

 

나의 일은 매우 진전이 잘 되어가고 있소. 그 이상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소그저 딴 일은 부탁할 것이 없고 넓은 마음과 오늘의 고통을 기다림의 즐거움과 만남의 환희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기르도록 부탁하오.

 

독서도 적당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강인한 몸과 마음의 소유자가 되도록 하기 바라오. 줄넘기를 하나 사서 아침 먹기 전에 100번 자기 전에 150번을 꼭 하기 바라오. 이건 명령이오.

 

귀찮고 괴로움을 이겨서 완수하는 데에 진정한 희열이 있는 것이고, 오늘도 이겼다 하는 기분으로 말이오. 귀찮은 것을 해나가는 그 순간이 사실은 제일 행복한 순간이 아니겠소.

 

나약하고 빌빌하는 사람에겐 가치와 사랑을 인정치 않기로 나는 작정하고 있소. 맑은 눈, 타는 정열을 간직한 고운 색시가 되오. 그럼 또 쓰리다. 승효.

 

 

****사랑하는 나의 님

돌아 와 가방만 방에 던져 놓고 논두렁길을 하염없이 걸었어요. 당신이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산 위에 올라가 바라보며 황홀해 하실 저 붉게 타는 저녁 놀, 신비에 싸인 거므스레한 산, 보라색 하늘을 훨훨 나르는 이름 모를 새, 그리고 논에 물을 대는 순박한 농부를 한참 보고 있었어요,

 

사람 사는 동네를 떠나 좀 더 깊은 곳으로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와서 살고 싶어 살 만한 집을 두리번 찾아 다녔어요. 저어기 버스가 한대 지나가는군요. 문득 당신이 논산 계실 때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버스를 쳐다보며 눈물지었던 일이 생각 나 미칠 것 같았어요. 바보, 다 지나간 일인데! 당신이 옆에서 그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에 휩쓸려 떠내려 갈 것만 같았어요.

 

아름다운 저녁이예요. 극치가 오기 전의 덜 아름다울 때가 좋죠. 너무 아름다우면 곧 소멸해 버리잖아요. 사람도 그리울 때가 가장 좋을 거라고. 우리도 매일 함께 산다면 권태로워 질까요?

 

17일 날 제가 당신 보러 간다면 말리시겠지요. 참는 게 분별있는 행동인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게 인지 모르겠어요.

 

왜 책 얘기는 하지 않아요? 당신의 명석한 머리 속에 들은 것도 알고 싶고 그래서 희열도 함께 느끼고 싶어요. 사랑해요.

197675일 노야.

 

 

***사랑하는 당신에게

종일 안절부절 편지지를 앞에 두고 지금에야 씁니다. 당신도 안절부절 하고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편지 못해 애타게 만든 것 미안해요.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 아세아신경외과에 갔더니 척추신경통이라 하면서 3주일 정도 꼼짝말고 누워 있으라 해서 학교에 말은 못하겠고 얼마나 고민이 되는지 죽을 뻔 했어요. 약 먹고 안정하면 좋아지는 일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이대로 다리를 못 쓰게 되는 줄 알고 엄청나게 걱정했어요.

 

좀 좋아지는 날을 기다려 편지한다고 차일피일 미룬 거예요. 소식을 기다리다 너무 답답하여 자신을 확 찢어버리고 싶다고 하는 당신의 심정 충분히 알아요. 이런 병은 교사들이나 서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병이라네요.

 

처음 아픈 것을 느낄 때 병원에 가야 하는 건데 직장생활을 하니 쉽지 않고 또 이렇게 심하게 아프게 될 줄 몰랐지요. 묶여 있는 당신에게 말하면 안 될 것 같고 아파 죽겠는데 괜찮다 소리는 안 나오고. 그러다 보니 소식을 많이 기다리게 해서 너무 미안!

 

당신을 쳐다보고 아프다고 엄살 부리고 달달 못 볶아 먹어서 더 서러웠어요.

추석인데 집에도 못 가고 있으니 엄마가 추석 음식을 해서 사촌오빠를 보냈어요. 비까지 와서 쓸쓸하다가 많이 위로가 되는군요. 저는 아픈 건 조금도 못참아

하고 동네방네 떠들어야 하니 미련하게 참다가 중병에 걸리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추석 날 송편이나 하나 얻어 잡수셨는지. 많이 좋아졌으니 걱정 그만 마시고. 새언니네서 밥 얻어 먹고 편히 잘 있어요.

197698일 노야.

 

 

***사랑하는 당신

순겸이 편지에 당신은 한 보름 유격훈련 떠나셨다 하는군요. 찬 습기가 배어 오는 땅바닥에서 자고 일어나면 온몸은 뻣뻣하겠지요.

 

모든 것을 참지 못하고 다 말해 버리고 저는 묶여있는 당신의 아픔과 안타까움을 너무 모르는 것 같지요

사실은 모르는 게 아니고 당신은 제게는 뭐든지 해낼 수 있고 무엇이든 문제없이 이겨내는 불사신같은 남자라서 그래요.

 

친구들이나 여선생들은 자기 애인이 무얼 할 때는 그저 실수할 것 같고 불안하다는데 저는 혼자 앉아 있을 때는 당신이 걱정되어도 당신을 보고 있을 때는 모든 불안이 싹 다 없어지고 산같이 든든해요.

 

당신은 제게 영광과 명예를 주시다고 하셨지요. 당신의 빛나는 눈, 볼 때마다 변모하고 엄청난 것을 이루어 가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 그 어느 여자도 맛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쁨 그게 바로 왕관보다 더 한 영광이며 명예가 아니겠어요.

 

제가 단지 염려되는 건 나중에 당신이 너무 유명인이 되어 바쁘거나 무엇엔가 심취하여 저와 연애감정이 줄어들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 뿐이예요.

교직생활이 적성에 맞고 잘 지내고 있으니 날 고생시킨다는 생각은 말아요.

1976910일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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