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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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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27)

나는 하늘을 우러러 보고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이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04-11 (일) 09:25:57

나는 하늘을 우러러 보고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이다

 

 

1012,,1975

군종병이 데리러 와 정말 오랜만에 교회를 갔다. 그리고 예나 같이 책을 봤다. 황량해진 가을들판을 내려다 본다. 멀리 남한강의 모습도 무척 창백하다. 나는 인간의 편에 서서 인간을 사랑하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그리고 지성에 있어 창조적이고 를 위해 사는 예술인들과 벗하고 싶다. 이제 또 하루가 당겨졌다. 노얄 만날 날짜를 하루하루 닥아온다. 가슴이 뛴다. 그리고 내 피는 끓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전번에 내가 때려준 환자와 오랫동안 얘기를 했다. 항상 놀라는 일이지만 오늘날의 젊은애들의 성도덕과 윤리에 아연실색해 진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고전적 순결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만나는 날부터 살을 섞는다. 그리고 쉽게 bye-bye 하고 또 딴 상대를 찾아 서로 즐기곤 하는가보다. 그 연령층이 10대까지 내려간다는 점에선 아연해

진다.

낮엔 배굴하고 축구를 한다. 그리고 동료들은 TV에 나오는 텔런트들의 몸과 행동을 배워 그것을 재연한다. 끔찍한 일이다. 여론의 생산수단이 주는 공해란 알맹이 없는 껍질을 덮어 씌운다. 나는 나의 멋진 폼을 머리속에 상상해 본다. 나는 저런 스타일이 되고 싶다하고 말이다. 얼굴을 깨끗이 면도하고 머리는 기름을 발라 까맣게 뒤로 빗어 넘긴다. 눈은 찌르는 듯 하면서 부드럽게 뜨고 몸에는 까만 양복을 걸친다.

 

그리고 콧날이 선 까만 반짝이는 구두를 신는다. 하얀 와이샤쓰에 까만 넥타이를 맨다. 그리고 손에는 연기나는 줄어들지 않는 긴 담배를 쥐고 있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코 밑에는 결이 고운 카이젤을 기루고

말이다. 우서운 생각이다. 하하. 아마 그렇게 하고 거울을 보면 십중팔구는 여잘 후리는 난봉꾼이거나 아니면 뽀이 같을거다. 하하하. TV의 공해가 너무 심한 것 같다.

밤엔 B.O.Q로 중대장님께 불려갔다. 우리 중대 위생병들은 사역병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높아 치료실에서 1주일씩 돌아가며 치료하는 훈련을 하기로 내규되었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항상 치료에 대한 강의노트를 준비하라고 한다. 책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요즈음 동료들은 대민지원이다 싸리를 하러간다 해서 중대가 많이 비었다. 그래서 지내기가 한결 좋다. 밤에 노야를 생각하며 추운 곳을 모포에 싸고 잠이 들다. 그러면 어느덧 내 품속엔 노야가 쌔근거리며 잠이 들어 있고 나는 그 숨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1013일 월, 1975

추운 아침이다. 예나 같이 후닥닥 일어나서 담요를 개고 점호를 받는다. 노래를 하며 구보를 하고 뛰어 오면 추운기가 한결 덜하다. 낮이 되면 정말 정결하고 한없이 정이 가는 따스한 햇살이 볼을 어루만져 준다. 하늘엔 구름 한점 없다. 심호흡을 한다. 새소리 살랑되고 풀잎 부딪치는 소리 가을은 본격적이다. 노얀 더욱 아름다워지고 풍성해져 가리라. 내 사랑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보배, 생명, 그것이 나의 노야다. 이런 날이면 노야와 거닐던 아름드리 가로수가 늘어선 서울의 길들을 유추한다.

그땐 진정 풋사과들이었고 아름다웠었다. 수유리로 경복궁으로 그날들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오늘은 신나는 날이다. 누구의 눈총도 받지않고 미음껏 책을 읽는다. 노트는 3,4시간이면 족했다. 나머진 나의 시간이다. 까뮈를 읽고 헤겔을 음미한다. 노야를 그리며 삶의 가치를 인식한다.

까뮈는 나에게 위대하고 장엄하며 동시에 절대적이고 신격화된 역사가 아니라 그 속에서 가을 하늘처럼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고 용감하고 결코 살아온 뒤안길을 회오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생의 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작은 개인이면서도 창조자이고 역사를 부정하면서 오히려 역사를 전진시키는 스스로 가슴속에서 만족해 하고 후회하지 않는 개인의 길을 보여 주었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싫증을 주지않고 장대하지는 않으나 성실하며 진리 속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결코 니힐리즘의 괴뢰가 되지않는 확고한 정신을 까뮈는 설파한다.

진실한 인간의 모습 그것은 한계 지어진 세계 속에서 사는 인간을 말한다. 한계란 결코 되풀이 되지 않는 세계를 의미한다. 여기에 예술이 있다. 가 있다. 모든 아름다운 창조가 있다. 가만히 노얄 입속에서 불러 본다. 그러면 안개처럼 가슴에 퍼지는 뜨거운 노얄 감득한다.

밤엔 중대장께 노트를 갖다주고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고 왔다. 그리고 10시엔 명화극장을 봤다. 오드리 헵번과 케리 쿠퍼가 나오는 <하오의 연정>. 코믹하면서도 즐거운 영화였다. 한 바람둥이가 수많은 여성을 편력하다 한 애띠고 청순한 소녀에게 사랑을 느껴 결혼한다는 얘기다. 배경인 빠리의 상황설정이 재미있다. 빠리에는 호텔객실이 22만개 있다. 그리고 그 중 4만개는 매일 총기사건이 난다 한다. 이유인즉 남의 아내와 연애를 하는 난봉꾼과 남편의 싸움이라 한다.

그러나 남편은 부정한 아내를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 물론 쫓아 내지도 않는다 한다. 그리고 난봉군과 남편은 곧 친해진다고 한다. 웃기는 나라이다. 이 영화를 보느라 보초는 서는둥 마는둥 해버렸다. 노야와 같이 큰 화면에서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이제 생활을 만족해 하며 지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어쨌든 사람이란 적응되어지고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동동 걸음치며 노야가 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10141975

날씨 쾌청. 오전은 춥다. 드디어 까뮈의 책을 <正午思想> chapter를 끝으로 다 읽어 버렸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그 책에다 오랫동안 키스를 하였다. 그들의 문화적 전통과 여건과 역사적 배경이 한없이 부럽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기에 더욱 애닳고 그리운 것이다.

 

낮엔 난생 처음으로 이발을 해봤다. 생각보다는 잘 된다. 면도도 해주고 오후엔 싸리비를 맨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누더기 옷을 주렁주렁 입고 다녀 인사계님이 핀잔을 준다. 뜨시면 제일이지 추워죽겠는데 별수 있나. 언제나 변함없는 짬밥을 3그릇 먹고 배가 고파 살짝 라면을 하나 삶아 먹었다.

밤엔 고구마도 먹었다. 배가 든든하나 소화가 잘 안된다.

 

아침엔 몹시 떨릴 땐 소련의 하바로스크에서 고생한 선열들을 생각한다. 식이 비위에 안 맞을 땐 큰형님을 생각한다. 내 몸에 가해지는 부자유를 느낄땐 옥중에 있는 여러 사람을 생각한다. 그리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사람이 미워지고 살맛이 안날 때는 나의 노야를 생각한다. 그러면 나의 가슴의 불은 다시 피기 시작하고 가슴은 충일로 넘실된다. 힘이 빠질 때는 엄마를 생각한다. 이제 모레면 노야가 온다. 멋장이 노야 너를 힘 주어 안을거다.

밤엔 지원중대 병력이 훈련을 나갔기에 그들 대신에 탄약고를 지키러 갔다.

새벽 2-3시까지다. 옷을 산타크로스같이 입고 달이 휘영청한 산마루에 올랐다. 남한강이 무척 가깝다. 초소막의 창 틈으로 내려다 보면 강을 종으로 가로질러 오솔길을 만든 달빛의 반사를 본다. 마치 머리속에서 보는 영창에 비치는 달빛의 세레나데다.

 

그리고 달 아래 흔들리는 하얀 갈대, 그 갈대의 한길 사이로 보이는 月下강과 月光, 그대로 한폭의 . 취한 듯이 바라보고 있자니 환영처럼 안개처럼 달은 산 뒤로 숨는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정밀과 고요와 신비가 땅을 덮는다. 노야에게 보여주고 싶은 광경이다. 입속으로 노얄 부른다. 노야의 고요한 숨소리 가만히 내 속에서 피어 오른다. 아름다운 밤이다.


1015일 수, 1975

그냥 고요히 지낸 하루. 날씨 쾌청, 햇볕 속에 반사되는 강 건너 이포의 정경이 무척 한가롭다. 차가운 아침도 떠오르는 태양엔 무력하다. 오전에는 매일 하는 시시껍절한 일을 하고 10시경엔 민방공 훈련이다. 2시간 후 휴식시간을 좀 가졌다. 산마루에 앉아 멀리 달리고 있는 길을 내려다 본다. 한길에 부서지는 햇빛이 무척이나 포근하고 정이 간다.

길 옆으로 열병하는 가로수 그 길을 내려다 보며 문득 엄마의 언제나 포근하고 편안하던 무릎을 느낀다. 이젠 내 몸이 너무 커버려 엄마의 몸이 작아졌지만 내 어린 몸 작은 뼈가 그 속에서 칭얼대고 기대고 부빌 땐 이 세상 무엇보다 안온하고 평화스러운 곳이었다. 나는 저렇게 햇볕이 부서지는 길을 내려다 보며 신화처럼 잊혀져 있던 엄마의 무릎을 문득 느끼고 있다.

 

엄마의 냄새, 체취는 특이하다. 밀냄새 같기도 하고 마른 풀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엄마 무릎 구덩이에서 작고 귀여운 내 어린 몸이 이렇게 성장하니 그 품을 떠난다. 엄마는 커서 떠나고 또 한 가정을 꾸미는 자식들에게서 무엇을 느낄까? 보고픈 엄마 그 잊혀진 고향이 몹시도 그립다.

그렇게 앉아 있으니 민방공 해제도 모르다 인사계에게 찜빠를 먹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오후엔 동료 하나가 몹씨 다쳤고 친우 인식 군에게서 전보가 왔다. 19일날 오후에 올 예정이니 외출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땐 노야와 셋이서 만날 수 잇겠지. 그리고 노야를 서울까지 잘 모셔 가겠지. 노야를 덜 쓸쓸하게 떠나 보내겠지 생각하니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한참 동안이나 망연히 서 있었다. 노야가 달려온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움은 더욱 타오른다. 내 마음은 항상 노야에게만 오른다. 지금 보초를 서면서 노야를 환상한다. 내일이면 나의 노야가 오는 16일이다. 이 밤아 빨리 빨리 새어라.


1016일 목, 1975

종일 초조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린다. 노얄 맞기 위해 오전에 차운 물로 목욕했다. 온몸을 정결히 씻는다. 가슴도 머리도 청결하다. 그리고 새끼틀에 짚을 집어넣고 새끼를 꼰다. 땀이 흐른다. 몸이 후끈후끈해진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며 기다린다. 마음은 노상 길로 가 있다. 그러나 3시가 지나도 소식이 없다.

 

늦게야 노야와 시복이의 편지를 받다. 노야는 20일이 넘어서 온다는 이야기와 학교 체육대회 소식을 재미있게 적어 보내왔다. 시복이의 용감하고 꿋꿋한 글도 읽어 반가왔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악몽같은 하루가 되었다. 나는 이날을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거다. 나는 지금 하늘을 꽉 메운 구름 속에서 거의 보름달이 된 달이 하얗게 온누리를 비추고 있는 것을 보고 太古를 생각한다. 어느 날 예루살렘을 비추던 달도 저러 했으리라.

찬란하고 모두가 약동에 가슴 저미어 하던 그리스의 신전을 비추던 달도 그리고 깊숙이 눌러쓴 수사들의 머리 위에서 글들의 고행을 말없이 비추던 중세의 달도 저러 했으리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도 없는 애끓는 아픔이 그리고 반짝이던 사랑의 얘기들도 저 달은 묵묵히 바라다보며 오늘에 왔으리라. 순례자 타박타박 황토길을 걸어가던 영혼을 찾아 수많은 승려들의 머리 위에서 그것은 태고를 비추며 오늘을 왔을거다. 지금 나의 머리위에 그리고 멀리 노야의 머리 위에 그리고 막 죽어간 이름없는 병사의

싸늘한 시신 위에 저 잔인토록 밝은 달은 태고의 비밀을 지닌 채 비추고 있다.

보초를 서고 와서 12시쯤 막 잠이 들려 하는데 누가 흔들어 깨웠다. 응급환자가 들어왔다 한다. 졸린 눈으로 귀찮아 하며 내의만 입은 채 갔더니 웬걸하얗게 얼굴색에 핏기가 가신 사병 하나가 눈을 반 쯤 뜬 채 힘들게 숨을 쉬며 입으로 코로 마구 각혈을 하고 있었다.

무지한 군의관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혈압도 잡을 수 없다. 호흡은 부정확하다. 피는 계속 쏟는다. 그리고 싸늘한 형광등 불빛 밑에 누워있는 병사의 얼굴은 짜증스럽도록 창백하다. 반 쯤 뜬 눈은 촛점이 흐리다. 나는 집게로 그의 혀를 밖으로 꺼낸다. 그리고 계속 솜으로 피를 훑어 낸다. 호흡은 짧고 급하다.

폐렴이 아닌가 생각되나 선홍색 각혈을 너무 많이 했다. 그를 차에 싣는다.

나는 옷을 입는둥 마는둥 차에 탄다. 작은 찝차다. 몇장의 종이 서류 때문에 후송은 지연된다. 차안에서 가늘게 비추는 후라쉬 불빛 속에 그의 입에서는

빨간 피가 계속 쏟아진다. 내 손은 진득거린다. 지금 한 젊은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 오 주여, 그를 잡아 주소서!

그의 호흡을 도와주기 위해 나는 집게로 혀를 계속 당기고 있고 그의 동료 한사람은 가슴을 맛사지한다. 차는 까만 밤길을 달린다. 후라쉬를 그의 눈에 비춘다. 기름이 물에 흔들리 듯 아른된다. 문득 그의 혀가 밑으로 처져 버린다.

그는 그렇게 사단 의무대로 가는 도중에 한많은 이승을 떠나 버렸다. 나의 이 무력하고 쓸모없는 손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을 느꼈다. 처음으로 생명이 끊어지는 찰라를 경황없는 순간에 나는 느꼈다. 그는 한마디 신음도 없이 비명도 없이 他界해 버렸다.

차는 사단 의무대에 도착했다. 응급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도 그의 식어버린 손만큼이나 차갑고 비정하다. 군의관이 나중에 와서 간단히 체크하고 그의 얼굴엔 모포가 덮어진다. 새벽 3시를 알린다. 병명은 폐병으로 밝혀졌다.

그는 공주사대를 나온 인테리였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식어버린 그의 입과 코 귀 등을 솜으로 막고 몸을 깨끗이 한 후 흰 보자기를 씌우고 나니 5시경이 되었다. 그를 싣고 다시 병참부로 향했다. 군인은 죽으면 그 몸도 나라 것이므로 6종으로 국가에 반납된다. 병참부의 써늘한 관속에 그를 잠재우고 돌아서니 동이 터오르고 있었다.

병참부 창고는 산마루에 있었다. 나는 태극기 아래 누워있는 그에게 경례를 하며 그를 사랑했을 사람들을 가슴속으로 그려본다. 그의 부모님과 그를 사랑했을 사람들의 애통한 울부짖음이 귀에 들려 오는 듯 했다. 만약 사회에 있었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거다.

물론 폐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도 그 중의 한 사람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폐병인 그를 시도때도 없이 비상이 걸려 정신이 없는 곳,

하루종일 사역에서 사역으로 끝나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3끼의 짬밥만이 있는 곳, 똥물에 옷을 빨아입는 이곳에 저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둔 인간들의 비정함에 분노가 솟아나 미칠 것 같다

그의 젊음, 저런 의미없는 죽음에 기분이 우울해진다. 그리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을 생각해 보다. 결코 아름다울 수만 없고 오히려 형극의 길인 인생의 길을 생각해 본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와 삶의 의의, 생의 가치와 희열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소 돼지처럼 살다 죽는 사람들. 그들은 그저 슬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고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일상의 즐거움만 쫒아 다니다 늙어 버린다.

나와 노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다. 가슴에 이글되는 반항을 느낀다. 나는 소가 아니다. 돼지가 아니다. 졸병을 개 소 돼지 취급하는 군대. 나는 하늘을 우러러 보고 진리를 향하고 사는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이다. 돌아오며 그의 명복을 빌며 그의 영혼을 생각하며 기도했다.


 


***그리운 내님

많이 기다리셨지요. 미안해요. 당신의 편지는 두 번 다 받았어요. 당신의 편지가 제 무료를 빠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나요? 당신은 애인이 편지를 갈증난 사람이 생명수를 찾듯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을 모르시나요?

 

오랜만에 아주 안락한 시간을 가집니다. 개교25주년 기념행사로 매일 녹초가 되어 밥 먹고는 쓰러져 잤어요. 진짜로 파김치가 됐어요. 어제는 기념식 후에 바로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참 볼만 했어요. 성화가 제법 그럴 듯하게 들어오고 손님들도 미국에서 대만에서도 오고 유명한 사람도 오고 난리났어요.

 

비가 와서 대회는 연기되었지만 비 속에서 아이들은 한달을 넘게 연습한 마스게임을 훌륭하게 해냈어요. 하는 도중에 비가 너무 퍼부어 중지! 했더니 계속하자며 와! 소리지르고 진흙탕 속에서 눕고 구불고 얼마나 멋지게 하는지 우리들과 학부형들은 찡해지며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

어요.

 

병아리 선생인 저도 그런 모습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딴 곳에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귀한 순간을 맛보았어요. 화요일날 못다 한 대회를 계속한대요. 차전놀이랑 준비한 것이 너무 아까워서요. 오늘은 오랜만에 늦잠도 자고 빨래도 하고.

 

지난 번 이별하면서 너무 떼를 써서 당신이 가슴 좀 아팠지요? 안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잘 안되네요. 가정실습은 20일 후로 연기된다 합니다. 확정되는대로 연락할께요. 제가 있을 깨끗한 방을 하나 알아 보세요.

19751012일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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