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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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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회향학적 원리(39)

인간의 회향학적 원리(39)
글쓴이 : 현승효 날짜 : 2024-04-11 (목) 19:10:11

통합적 사유

 

대립물을 통일 속에서 보는 변증법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이제까지 상충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온 개념을 결합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회향적 투쟁, 즉 일치를 향한 투쟁과도 부합된다. 예컨대 이론과 실천은 대립 관계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론은 실천의 한 양태다. 왜냐하면 관계의 해소에 관한 한 하나의 이론은 교설로서 안내를 위한 지침으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천적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도 하나의 주장으로서 관계 속에 유입될 때에는 실천의 양태로 정립되는 것이다. 실천과 분리된 이론이란 상호관계의 새로운 도약이 제외된 곳, 즉 창조가 제거된 곳에만 있을 뿐이다. 자연과학 그 자체의 실천과 이론,

 

예컨대 이미 인간과의 상호연관이 배제된 순수물리학에서는 이러한 분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향의 교설은 오직 창조라는 실천영역의 토대 위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론과 실천은 하나다. 유명론과 실재론 사이의 오랜 대립도 통일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존재에서 존재 자체로 향하는 경로는 유명론적 입장, 즉 실재는 개체이며 보편은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때의 존재 자체는 추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험주의적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존재에서 존재 자체로 향하는 경로에서 존재 자체는 안내의 성격을 띠며 현존재의 개체에 앞서는 보편으로 존재한다. 이는 실재론적이다. 이때 보편은 시간상으로나 위계상으로나 근원적이며 실재하는 것이며, 개별 사물 이전에 하나의 목적 속에 존재한다. 이것이 신으로 대체되면 보편은 신의 목적 속에 존재하는 참다운 실재로 간주되는데, 이것은 교회의 교리와 일치하는 사상이다.

 

일원론과 다원론의 대립은 어떠한가. 일원론은 수미일관된 강력한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그 단점은 새로운 사항이 대두 되었을 때 그것을 이미 형성된 체계 속에 수용하여 레테르를 붙여 그 다양성과 특수성을 질식시켜 버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원론적 세계관이 구체적 명료성을 띠고 성립되면 될수록 그에 정비례하여 인간 자체는 이 독단적 지식에서 언제나 실종되기 마련이다. 여기서는 교조적 지식을 객관적으로 정당화하고 책임을 전가함으로 현존재가 가지는 다양성의 분화는 무시된다. 다원론의 장점은 언제나 가변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과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단점도 있다. 다원론은 하나의 목표 속에서 인간이 전진하는 것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것은 역사적 현실의 무한한 착각 속에서 인과관계를 규정하는 인자의 양은 결코 헤아릴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하면 어떤 전체성은 하나의 대상적 직관에서 하나의 장면이 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인식은 일회적 성격을 지니는 인간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다양성의 분열 속으로 침몰하고 만다.

 

일원론과 다원론의 불일치의 해소는, 일회성으로 인간존재를 파악하면서도 결코 현존재적 일회성으로 전락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즉 전체적 전망을 잃지 않으면서 현존재적 다양성을 수용 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양성의 분열 속에서도 행위의 목표가 생활 안에 깃들어 있고 모든

다양성의 전개에서 하나의 최대공약수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즉 운동성이 모든 존재의 분절임을 앎으로써 운동성의 소멸인 완전성의 전망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주어진 불일치 상태를 토대로 하여 완전성인 일치를 이루어가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도 생산의 토대 위에 그 분배가 문제되며, 그 모두가 완전성을 형성한다. 생산은 그 다음 단계인 분배에 대하여 불일치로서 대립한다. 이때 생산은 분배에 의하여 다시 변혁되며 재구성된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는 일치의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 단계의 개념이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는 각각 탈관계적 존재와 현존재에 해당된다.

 

인간은 인간학적 시간으로 기계론이나 결정론을 타파함으로써 오늘에도 회향을 이룰 수 있다. 운동의 포착은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운동 자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다. 관계는 운동을 순간적 정지로서 포착하는 것이다. 즉 관계 속에서 우리는 운동을 불일치로 정의한다.

 

() 그 자체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운동 자체이기 때문이다. 무가 사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생각하는 주체와의 통합적 사유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운동이 관계에서만 포착된다고 할 때, 관계는 운동의 비운동화이며 관계 그 자체는 허위이다.

 

따라서 존재 자체의 회복, 그 진정한 상태의 회복은 관계의 파괴, 탈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제 관계는 허상이다. 우리가 파악하는 대상의 진정한 상태는 관계를 떠난 곳에 있다. 이 점을 유한한 인식에서 망각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 진정한 상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은 관계를 불일치로 정립하고 그 불일치에 대한 불일치로서 일치를 획득하는 데 있다. 자체로서 운동인 현상 일체를 불일치로 간주하는 것이 진리에 도달하는 출발이며, 그 불일치에서 일치를 획득하는 것이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다.

 

운동 자체를 알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사유활동의 지속 결과로서만 항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개념과 인식은 사유활동의 결과다. 운동에 관한 진리야말로 물자체로서의 운동을 관계로서가 아니라 운동 그 자체로서 정립하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을 정지 상태로 인식하며 이는 실제 운동과 대비해 오류다.

 

그러나 불일치인 운동이 그 궁극 목적에 도달해 일치를 이루면, 정지 상태로 귀결된다. 따라서 운동에 관한 논리인 변증법의 궁극적인 모습은 일치에 관한 것, 정지에 관한 논리로 귀결된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의 전도(顚倒)를 의미하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상에서 볼 때 서구철학의 이원론적 분리는 언제나 존재에 국한된 상태로 출발하는 데에 기인한다. 존재는 언제나 이원론적 분리 속에만 있기 때문이다. 이 존재를 초월할 때 인간을 이처럼 이원론적으로 상충하는 전체적 존재로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우주의 모습이며 이런 견지에서 무양극팔괘(八卦)라는 동양 철학은 좀 더 광범한 영역을 포괄한다. 우리 철학의 근원과 종결은 유이자 무인 멸공에 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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