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승효는 1950 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1 부터 경북대 의대를 다녔다. 박정희의 유신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에 적극 나서다 제명되고 1975년 2월 21일 징집을 당했다.
제대를 4개월 앞둔 1977년 6월 29일 폭염에 구보훈련 중 오후 4시에 쓰러져 30일 새벽 1시에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28 살의 나이였지만, 불멸의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삶을 불멸로 만든 것은 그가 뜨겁게 간직한 사랑의 주인공 노천희이다. ‘우리의 님으로 남은 한 인간’, 그 인간의 ‘불멸의 영혼’은 이제 노천희의 것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고난 속에 살아 간 사람들의 것이며, 다음 시대를 만들어 갈 뜨거운 심장을 가진 모든 이의 것이다.
현승효! 그는 75년에서 77년 사이 군대에서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고, 자기 사상을 정리하였다. 인혁당 사건 사형이 알려지고, 긴급조치의 압제와 억압으로 의문사가 횡행(橫行)하던 음산한 시절, 강제 징집과 같은 군 생활이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시기에 군대에서 사상을 정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신념, 그리고 끝없는 열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표다.
사상사를 돌이켜 보건데,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20 대 초반의 젊은 시절에 초기 생각을 평생 동안에 닦고 갈아서 자기 사상을 만들어 가는 것일진데, 그는 젊은 시절에 관점을 만들고 정리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디
그는 일기에서 표현하듯이 1976 년 4 월 하순경에 사상의 줄거리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해 4월에는 책의 전체의 틀을 잡았으며,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28 세 나이에 수고본을 남긴 그의 글은 매우 소중하 것이다. 죽음이 길을 막지 않았다면 동지와 후배들에게 졿은 귀감이 되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구 경북지역에 변혁운동사상을 이어받거나 사상활동을 하는 이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당국의 조치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유의 창조의 희열과 억압에서 오는 드려움을 함께 지닌 그는 투쟁의 방법에 대해 매우 고민하고 새롭게 사상을 정립해 보려는 노력의 결과물로 보인다.
운동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려는 그의 작업은 또 다른 한 측면이라 생각된다. 현승효의 실제 행동 반경과 남은 자들의 기억에 의존하는 평가들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시대의 변혁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인혁의 사법살인을 발표하는 날 알고 있었고, 직접적으로 여정남 선배를 만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증언과 다른 기록이 필요할 것이다.
변혁운동에서 큰 지향점이 사회주의적 평등, 민족주의적 자존심과 주체,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려는 노력 등을 함께 아우르려는 그의 중심 사유는 인간해방과 자유라고 생각하고 그 나름으로 최고의 지향점으로 인간성 회복이라는 회향으로 귀결을 심은 것으로 보인다
“회향(廻鄕)의 인간학적 원리: 자유와 투쟁”. 유고집 회향의 인간학적 원리 는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고 미래 인간의 삶을 열어보려는 치열한 시도다.
그에게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글 류종렬 |철학아카데미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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