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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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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회향학적 원리(17)

자투와 회향
글쓴이 : 현승효 날짜 : 2023-07-17 (월) 16:47:03

자투와 회향

 

 

인간의 존재 자체는 선험적 존재와 현존재 양자의 토대다. 동시에 그것은 자기실현이라는 전체 과정의 행위 주체다. 그것은 자기 동일적이고 불사적이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적 존재이다. 철저한 단독자인 개별 자아야말로 철저한 현존재적 관계의 보존자이지만, 역설적으로 현존재적 관계에서 탈피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태이기도 하다. 개별 자아가 인격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성 자체가 존엄한 이유는 인간이 현존재로서 자신의 내부에 회향의 싹인 인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누구로부터도 수단으로서만 이용될 수 없고, 언제나 목적으로서 대접 받을 권리를 지닌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인간 자신이 목적으로 하는 자기 완전성의 싹,즉 결코 수단으로 할 수 없는 동질적인 것을 자기 내부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실천 이성의 주체인 인간은 투쟁적 존재로서 자기를 발견한다.

 

실천 이성적 존재의 목적은 자기 완전성, 즉 범아다. 회향의 주체는 실천이성적 존재다. 실천이성적 존재는 투쟁적 존재다. 투쟁은 자연의 간섭에서 독립해 스스로 결단하는 자유에 의해 가능하다. 실천 이성적 존재는 자유로운 자기 강제에 의해 자기의 목적을 스스로 결정한다. 동시에 의무이기도 한 목적을 나 자신에게 정하는 것이 다름 아닌 자유다. 실천 이성적 존재는 바로 자유이고 이 실천 이성적 존재의 목적인 회향은 그가 의도하는 자유의 완성이자, 주체의 자기완성이다. 실천 이성적 존재는 바로 이 목적의 싹으로서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다. 이 궁극 목적을 위한 회향적 투쟁을 통해 실천 이성적 존재는 존엄성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자기 완전성인 자유와 범아의 관계는 무엇인가? 범아란 바로 자유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그것은 가능한 것이자 인간적인 것이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것이다. 이때 자기 완전성이란 오직 자유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자유라는 관점에서만 현존재적 이성적 존재도 회향의 싹이 된다. 그러면 자기 완전성인 자유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형식적 완전성과 실질적 완전성이 일치하는 상태다. 이때에만 완전성은 완벽한 통일을 이루며 자기 완전성이 된다. 완전성의 이 구체적인 모습이 범아다.

 

인간은 자연의 체계 내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자이며 다른 동물과 공통된 가치를 가질 뿐이다. 그러나 인격으로서의 인간, 즉 도덕적 실천적 이성의 주체인 인간은 절대적 내적 가치를 지닌 존재자라는 점에서, 자연의 체계에서 이탈하고 회향을 지향 하게 된다. 실천적 이성의 주체인 인간, 즉 투쟁적 인간을 타인의 목적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적에 대해서도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서 대하려는 것은, 회향의 싹인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 인격을 지닌 인간만이 회향적 투쟁 의 궁극적 결과로서 범아를 이룰 수 있다.

 

운동의 최고형태

 

운동은 불일치이고 이 운동 속에서만 존재는 인간에게 대상화 된다. 운동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인간과 대립하는 대상을 인식 하지 못한다. 존재의 토대는 불일치운동이다. 이것이야말로 존재 파악을 가능케 하는 토대다. 이 불일치는 언제나 나 자신과의 불일치이기도 하다. 불일치를 자기 것으로 하는 자, 불일치에 있는 자만이 회향을 위한 힘을 발휘한다. 관계가 질곡불일치일 때만 우리는 관계의 존재를 안다. 하나의 관계가 자아와의 일치 관계일 때는 이 관계를 알지 못한다.

 

이것은 불일치 상태에서만 힘이 발휘되며 일치 상태에서는 힘이 발휘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힘은 일치를 향한 반동력이다. 사유 활동은 불일치에서만 시작되며, 회향을 위한 힘도 불일치에서만 나온다. 그런데 운동하는 존재는 A 이면서 동시에 B 이므로 이에 대한 파악은 언제나 부분적이다. 따라서 진정한 실재는 이 운동을 떠난 상태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무는 그것이 유이면서 무, 즉 존재이면서 비존재라는 의미이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판단은 언제나 존재에 관한 것에 국한되기 때문에 죽음 위에 떠 있는 인간 현존재가 인간의 존재 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오류로 귀결된다. 관계적 존재를 아는 것은 불일치와 운동 속에서만 가능하므로 물자체를 아는 것은 관계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존재가 관계에서 파악되고 인식이 존재에 관계하는 한, 그것은 언제나 부분적이다. 인식에서 문제가 되는 관계는 언제나 불일치 관계다. 운동은 복수관계의 불일치 상황에서만 존재하므로, 인간이 운동의 계속적 자기경신을 통해 일치를 추구하는 경로는 탈상황의 경로다.

 

이는 곧 회향의 경로이기도 하다. 인식의 선험적 조건인 시간과 공간은 유한한 한계 속에 있다.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공간, 즉 무제약적 시간공간이라는 것은 적어도 비상황탈상황적 진아에게만 가능한 가상적인 것이다. 인간의 운동인 투쟁이 상황적 제약을 파괴할 때, 운동의 영원한 계속은 없다. 투쟁은 단지 불일치가 존재하는 한에서 만 계속된다.

 

가상적 무한성은 사상 속의 무한성에 지나지 않을 뿐, 인간에게 직관되는 무한성이 아니다. 인식의 대상은 범주 내에서 제약된 유한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따라서 운동에 대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불일치의 소멸까지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동하는 존재이자 무한량의 운동이다. 어떤 하나의 물체인간의 심장도 마찬가지다가 정지했다고 해서 이것을 운동의 정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지 자체는 운동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정지라는 것은 사실상 없다. 정지는 인간 관념의 한 표상, 인간 인식상의 습관인 고정적 표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정지도 운동의 지속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을 정지시키려 할 때 비로소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하게 된다. 운동의 본질이 불일치이므로, 운동의 정지는 불일치에 대한 불일치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모든 인간적 자유의지가 이러한 것을 향해 움직이고 있지만 이 자유의지가 정당히 쓰이지 않는 한, 인간에겐 오직 영원한 운동, 투쟁만 존재하게 된다.

 

운동은 무한량이다. 우리가 우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무한량은 오직 운동밖에 없다. 인간이 인식에 의해 이 무한의 운동량을 제약한다면, 이는 부분적 타당성만을 인정하는 데에 만족하는 것이다. 영원한 정지의 노력은 회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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