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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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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회향학적 원리(37)

유물론과 관념론의 통일
글쓴이 : 현승효 날짜 : 2024-03-23 (토) 19:04:33

유물론과 관념론의 통일

 

 

유물론자에게 정립은, 정신이 있기 이전에 물질이 먼저 있다는 것이다. 반정립은 다음과 같다. 정신 이전에 물질이 있다는 주장은 추론에 의한 것인데, 정신 이전에 물질이 있다는 이 추론은 정신적인 것이며, 그렇게 추론할 수 있음도 역시 정신적인 것이라면 정립 명제에 선행하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다.

 

관념론자에게 정립은, 대상은 인식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정신적 인식이 가능할 때 비로소 그것은 객관적 실재성을 얻는다는 것, 따라서 정신적 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정립은, 인식 대상이 되지 않아도 우리는 사물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망원경을 발명함으로써 예전엔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천체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현미경을 발명함으로써 알 수 없던 무수한 미생물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인식 이전에 사물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정립반정립에서 본 바와 같이 제일의성을 물질에 두느냐, 정신에 두느냐가 몇 천 년 동안 철학의 주제였고 철학의 역사는 이 논쟁의 전개과정 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두 철학 체계는 예외 없이 순수 사변 영역에서 전개된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엄연한 상황은 자아나 비아의 상관관계 속의 자아일 수밖에 없다. 양 논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인식의 문제에서도 자아에 비아가 대응함으로써 자투가 이루어진 것이었고 여기서 인식이 가능해졌으므로, 비아가 대응함으로써 인식이 가능했으니 일의성은 비아라고 주장하 는 유물론자나, 비아가 대응하기 이전에 자아에게 인식의 가능성으로서의 선험적 실체가 존립했으니 제일의성은 자아에 있다고 주장하는 관념론자는 공히 부분에 머물러 전체적 진리의 획득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원인의 제일의 성은 자아와 비아의 상관관계에 있다. 이 상관관계에서만 자투가 이루어져 인식이 가능하다. 인식 이전의 자아나 비아는 물 자체의 영역이다. 우리는 이 물 자체의 실존을 추론 과정에 의해 확신한다. 단지 자아의 경우에 그것은 완전한 자유, 가능성의 통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비아의 경우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만 고찰될 수 있을 뿐이다. 회향이라는 목표를 위해 우리는 자아의 측면에 서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우리의 목표에서만 자아의 대립물인 비아는 자아와의 동일물로 전환될 수 있다. 이 변증법적 논리전개야말로 우리의 철학에서만 완전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논리의 제일의성을 자아와 비아의 상관관계에서 보기 때문이다. 회향을 목표로 하는 인간학적 고찰 만이 무익하고 유해한, 영혼을 떠난 지성의 산물인 살인적 이데올로기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

 

자투의 의의에 근거해 인식을 재해석하는 우리에게는 상관관계 속에서 자유로 돌아감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창조적 투쟁만이 문제다. 이 인간학적 입장에서만 부분적 진리인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은 해소되고 통일될 수 있다.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이 첨예화된 사변철학은 자아와 비아의 대응에서 야기된 자투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동시에 현실적 지반을 망각하여 독단의 길을 밟지 않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양자는 융합될 수 없는 논리로 발전해 버린 것이다.

 

제일의성을 물질에 두는 것이나 관념에 두는 것이나 모두 순수한 형이상학적 비실재적 영역의 문제다. 그것은 단지 실재적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만 의의를 지닐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을 실재 전반이 달려 있는 원인으로 해석하여, 그것에 절대적 신뢰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을 전도하고 순서를 왜곡하는 오류에 불과하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자명한 사실, 실재적 현실 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제 형이상학적 해석과 기도는 다양한 가능성 속의 모색으로서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의를 지닐 수 있다. 물론 이때 우리는 실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영역과, 있어야 할 것을 다루는 실천적 형이상학의 영역을 구별하여 고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방향이 정해진 이상,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가장 오래되고 상충적인 사변적 논쟁은 한가하고 비생산적인 철인에게나 넘겨주자. 자유의 사자(使者)인 자투에서는 오직 회향을 위한 불굴의 창조적 투쟁만이 문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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