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불량한 개벽이냐” 한탄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3.1 만세운동에 놀란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로 정책 기조를 바꾸며 조선인에 의한 신문 및 잡지 발행을 허가했다. 이때 창간된 잡지가 ‘개벽(開闢)’이다. 박달성(朴達成)이 이름지은 개벽은 창간호부터 검열에 걸려서 제대로 발간 되지 못했다. 임시호를 찍은 것도 발매 금지가 됐고 결국 김기전의 시 등 총독부가 문제삼은 부분을 삭제한 후에야 호외로 간신히 간행되었다. 창간호의 호랑이 그림 표지는 1주년 기념호(13호)에 다시 사용되어 독자들이 볼 수 있었다.
개벽은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해 일제로부터 늘 감시의 대상이었는데 총 72호를 발행하는 동안 발매금지 34회, 정간 1회, 벌금 1회라는 기록을 세웠고 1926년에는 결국 폐간되었다.
지면의 30%를 문학 작품에 할애, 현진건, 염상섭, 방정환, 김동인, 김명순, 김기진, 박종화, 김소월, 이상화, 이광수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1924년 3월 13일 동아일보는 개벽이 또다시 압수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우리는 이제 한없는 침통(沈痛)의 속에서 개벽 3월호 호외를 별간(別刊)하였다”고 짧지만 비감한 기사를 실었다. 당시 원문과 번역본을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제공으로 소개한다.
☯ 개벽(開闢) 호외(號外) (1924.03.13.) 동아일보

개벽 3월호가 또 압수되었다. 온 언론계가 태평성대(太平聖代)인데 개벽의 일이 홀로 이 모양. 과연 얼마나 불량한 개벽이냐. 아아! 재내(在內) 재외(在外)의 동무들아, 우리의 일이 물환성이(物換星移) - 이제 몇 봄을 지녔는고. 감고상금(感古傷今)에 어찌 영회(靈懷)의 척척(慼慼)함이 없을까. 우리는 이제 한없는 침통(沈痛)의 속에서 개벽 3월호 호외를 별간(別刊)하였다. 이 책(사상혁명 중심)의 운명이 또 역시 풍(風)일까, 우(비)일까. 이것은 우리가 모른다. 다 못 믿는 바의 한 가지는 이 책의 다행히 여러 동무의 손에 들기만 든다면.......
정가 50전, 우세(郵稅) 2전, 3개월 선금 1원 45전. 진체 경성 8106번
경성 개벽사 발행
다음달 호는 세계 풍운호(風雲號)
☯ 구직자 격증하는 3월 (1924.03.13.) 동아일보
2월 달보다 4배가 증가
경성 인사상담소의 상황

시내 명치정에 있는 경성부 인사상담소에 직업을 구하려 몰리는 조선 사람이 작년 1년 동안에 7천여 명이나 되는 중에서 1천 명 가량은 그럭저럭 소개를 얻고 나머지 6천여 명은 금년으로 밀리게 되었다 함은 일찍이 보도한 바어니와, 설혹 금년 1월부터 직업을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 하더라도 위의 6천여 명이 다 취직을 하려면 전례에 의지하여 적어도 5~6년을 지내야 할 터인데, 새해가 된 후로 벌써 1월 중에도 300명 가량의 구직자가 있었고 지난 2월에도 여자 31명까지 합하여 430명 중에서 간신히 취직한 자는 68명 밖에 되지 아니하여 작년부터 밀려 온 6천여 명의 구직자 외에 벌써 700명이나 넘쳤는데, 각 관공서, 은행, 회사의 연도말이며 따라서 각 학교의 졸업기이므로 보통으로 보아도 가장 구직자가 많은 이달 3월에는 또 얼마나 초과될는지 한 달 동안에 400여 명의 구직자가 있던 지난 2월 상순과 이달 상순을 비교해 보면 ▲3월 1일은 25명으로 2월 1일에 비교하여 7명이 더 하고 ▲3월 3일(2일은 일요일)은 60명으로 2월 2일(3일은 일요일)의 6배 ▲3월 4일은 33명으로 5배 ▲5일은 17명으로 17배 ▲6일은 34명으로 17배 ▲7일도 34명으로 17배 ▲8일은 28명으로 2배. 이같이 2월에 비교하여 3월은 날마다 5~6배 내지 10여 배씩 구직자가 늘어가서 8일동안에 평균으로도 4배 이상이나 되는 터인 즉, 결국 이달은 지난다릐 4배 즉 1,600여 명이 초과될 터이며 줄잡아 1천여 명으로 본다 하더라도 3월 말의 현재는 실로 위의 6천여 명 이외에 새로 1,700여 명의 구직자가 길거리에 방황할 모양인 즉, 달마다 이같은 현상으로 나간다 하면 그 결과는 어찌나 될 것인지 자못 주목할 만한 일이라더라.
☯ 시간을 사기한 순사 (1924.03.13.) 동아일보

지난 5~6일 양일간에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그곳 청년회와 우애청년회 후원으로 그곳 경포면에 가서 『소인(素人) 연극』을 열었었는데, 그 극장을 취체하러 왔던 순사 등환일격 이란 자는 허락을 얻은 시간 밤 11시 반이 되기도 전에 “시간이 다 되었으니 연극을 중지시키라”고 야단을 쳤다 한다. 그래서 주최한 청년회에서는 몇 사람의 시계를 맞쳐 보아도 예정 시간이 도지 못 하였으므로 잠시 언쟁까지 생기고 필경 그곳 각 관공서의 시계를 전화로 물어 보아도 모두 순사가 주장하는 시간이 되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순사들은 기어코 자기가 주장하는 때문에 관중은 경관의 횡포를 부르짖고 소년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순사라고 반듯이 내 버리는 시계만 주워 가지고 다니라는 법은 없고 또 시계가 바를 것이면 순사로서 시간 사기를 한 것이나 아닌가.
☯ 대학 예과의 조선인 차별 실태(失態) (1924.03.14.) 동아일보
조선인 지원자를 조사하는 기괴사(奇怪事)

◊ 오는 4월부터 개학할 조선 대학 예과에 지원서를 제출한 학생에게 형사 순사가 찾아 다니면서 신분 조사를 엄밀히 한다는 기괴한 사건에 대하여는, 어제 그 사실을 자세히 소개한 바어니와 이 사건에 대한 당국자의 태도가 더욱 기괴하다.
◊ 첫째 학무국장의 말을 들으면 자기는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실이나 종래 각 전문학교의 전례에 의하여 조사하는 것이라고 어물어물하며 직접 대학 예과의 당국자인 소전성오(小田省吾)씨는 말하되, “일본 내지의 고등학교에서는 이러한 전례가 없는 모양이나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므로 시킨 것이요. 학교의 교육 방침이 자유롭고 자유롭지 아니 한 것은 학교 당국자의 의견 여하에 있는 것인 즉, 그 점에 대하여 의논할 여지가 없소.” 하며 지극히 냉담하게 대답하였다 한다.
◊ 물론 『학교 당국의 의견 여하』에 있어서는 조선 대학에 조선인 학생을 받지 아니 해도 관계치 아니할 것이다. 전과(前科)의 유무 등을 조사하여 조선인 학생을 떨어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조선인 학생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정직한 수작이 아닐까.
◊ 대개 최고학부라는 곳에서는 연구부터 자유로 하여야 될 것인데 학생부터 가려서 받고 가르치기도 편벽된 어떠한 방침으로 한다 하면, 이는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이 아니라 노예를 제조하는 공장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당국자의 입으로 『당국자의 의사대로』한다 하면 우리는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하여 여러 말을 할 필요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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