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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TV쇼 미켈란젤로 살인사건 추적’ WSJ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0-05-30 (일) 02:48:10


과연 미켈란젤로를 누가 살해했나?


이탈리아에서 미켈란젤로의 죽음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눈길을 끌고 있다고 월스트릿저널(WSJ)이 3월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여기서 말하는 미켈란젤로는 ‘카라바지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16세기 화가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다비드상으로 유명한 15세기 화가겸 조각가 미켈란젤로(부오나로티 시모니)와는 동명이인이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지오는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예술가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 시모니보다 유명도에서는 뒤지지만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표현으로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준 거장이다.


그의 삶은 불가사의하고 죽음 또한 베일에 가려 있다. 1610년 포르토 에콜fp에서 39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꼭 400년만에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주체는 경찰이 아니라 실바노 빈세티라는 이름의 TV 쇼 진행자이다.


실바노 빈세티 씨는 미켈란젤로의 죽음을 파헤치는 단서에 거의 접근했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수개월간 그는 미켈란젤로의 유해로 추정되는 유골을 검시하는 조사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수십구의 유골을 발굴하면서 그는 아주 오랫동안 매장된 시신의 일부를 발견했다. 그는 탄소측정연대 기술을 이용해 유해의 DNA를 미켈란젤로 후손의 DNA와 비교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60세인 빈세티 씨는 역사의 그늘속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파헤치는 경력을 갖고 있다. 중세시대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유해를 발굴해 디지털로 그의 얼굴을 복원하는 일도 해냈다.


피렌체의 바실리카의 석관을 열고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두개골을 측정하는 조사도 했다. 14세기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유해도 무덤에서 꺼내 머리가 어린 소녀의 것으로 바뀌어진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빈세티 씨는 최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해도 발굴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목적은 모나리자가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논란을 파헤치고 채식주의자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빈센티 씨의 작업은 이탈리아내에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는 과학자도 아니고 전문적인 역사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스칸디아노 출신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이곳은 르네상스시대의 음유시인 마테오 마리아 보이아로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곳이다. 보이아르도는 이 지역의 성주이기도 했다.


빈세티 씨의 집념은 TV쇼의 진행자가 되면서 꽃을 피우게 됐다. 피렌체 대학의 중세학과 프랑코 카르디니 교수는 “매스미디어가 빈세티의 탐정같은 스타일을 이용해 역사의 진지한 의문을 흥미거리로 만드는 부도덕한 짓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빈세티 씨의 역사추적은 10년전 자신의 고향에 있는 보이아르도에 관한 다큐물을 촬영하면서 시작됐다. 이 지역 역사가를 통해 보이아르도의 유해가 교회 밑에 매장됐다는 사실을 접한 그는 역사가와 과학자, 지역경찰 등 묘지 발굴단을 모집했다.


레이더를 활용해 교회 부지 지층을 측정해 수세기간 밀봉됐던 납골함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치아 한 과에서 DNA를 추출, 마침내 이 유해가 보이아르도의 것임을 입증 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보이아르도의 유해를 찾지 못할거라고 말했다. 유해를 확인했을 때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고 회상했다. 일부 역사가들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빈세티 씨의 추적은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게 사실이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유해를 발견한 이후 진행된 조사에서 그의 사인이 독살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미란돌라의 뼈와 세포조직, 손톱에 비소 성분이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카르디니 교수는 빈센티 씨의 검시는 이미 역사가들이 거의 기정사실로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빈센티 씨의 동료들은 그의 과학적 전문성의 결여를 정치적 직감과 결단력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옹호한다.


역사적 인물들의 유해는 오래된 교회나 이탈리아 문화부장관, 로마카톨릭의 지방교구가 관리하는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볼로냐대학의 인류학자 조지오 그루피오니 교수는 “빈센티 씨는 과학자들을 숨막히게 하는 관료주의의 벽을 넘기위해 짧으면 여러 달, 길게는 몇 년을 싸워가며 조사를 한다. 그는 제대로 방향을 짚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켈란젤로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빈센티 씨는 토스카니 해변의 포르토 에콜레의 공무원들을 설득해서 미켈란젤로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에서 유해를 발굴했다. 이어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이탈리아 북부 마을 카라바지오에 과학자들과 함께 가서 후손들을 찾아 DNA를 채취했다.


이러한 연구가 진행되는 중앙본부는 로마에 있는 빈센티 씨의 지하사무실이다. 최근 어느날 오후 검정색 터틀넥과 골덴 바지차림의 빈센티 씨는 미켈란젤로의 말년에 관한 문서기록을 정밀 조사하고 있었다.


나폴리의 페데리코 2세대학의 예술역사가 빈센초 파셀리 교수가 기록한 자료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바티칸의 묵시적 승인아래 ‘몰타 기사단’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요한기사단’으로도 불리는 몰타기사단은 11세기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종교기사단이다.


그러나 바티칸의 페데리코 롬바르디 대변인은 파셀리의 가설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고 몰타기사단의 에우제니오 아오롤디 대변인은 “과학적 허구”라고 공박했다.


정작 빈센티 씨는 미켈란젤로의 죽음이 질병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귀족들 사이에 유행병이 돌았는데 미켈란젤로가 포르토 에콜레 근처의 페니글리아 해변에서 이 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포르토 에콜레의 산 세바스티아노 지역교구에서 발견된 오래된 양피지 문서기록은 좀더 상세한 사실을 말해준다. 한 수도사가 풍문으로 전해들은 사실을 기록한 이 문서에는 미켈란젤로가 지방 병원에서 죽었고 산 세바스티아노의 공동묘지에 묻힌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1956년 산 세바스티아노 묘지가 정비되면서 상당수 유해가 인근 시립 묘지의 유골창고로 옮겨졌다. 지난 일년간 빈센티 씨와 동료들은 적잖은 유골들과 치아들을 조사해 성별과 신장, 나이를 측정해 미켈란젤로의 유해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총 아홉구의 유해가 유력한 대상으로 좁혀졌다. 이것들을 그루피오니 교수팀이 탄소측정연대의 정밀검사를 할 수 있는 라벤나 대학으로 옮겼다. 이들 유해에서 말라리아나 티푸스균, 혹은 중금속 성분 등 당시 시대와 관련된 흔적이 남아있는 지를 찾고 있다.


이와 함께 빈센티 씨는 야심찬 계획인 다빈치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다빈치의 무덤은 프랑스의 한 성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르와르 포도주로 유명한 당부아즈 성의 관리인 장 루이 슈리어 씨는 빈센트 씨와 이미 접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더 이상의 코멘트는 거절했다.


그러나 빈센트 씨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젖먹던 힘까지 다해 그를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robin@newsroh.com



<꼬리뉴스>


미국인들이 미켈란젤로를 마이컬랜절로우라고 하는걸 미국에 와서 알았다. 하긴 '록펠러'가 뉴욕에 오니 롹펠러'도 아니고 '롸커펠러'라고 발음해 황당한 느낌도 들었다..아닌게 아니라 스펠링이 Rockefeller인데 대체 어떤 인간이 한국에서 록펠러로 소개했을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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