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리나 수기아르토(34 주부)의 세 아이들이 백화점에서 놀고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말을 하는게 아니라 영어를 한다. 미국서 살다온 아이들일까. 사실은 아니다.
아이들의 유창한 영어는 미국과 호주에서 공부한 부모가 집에서 영어로 얘기하고 영어가 주 언어인 사립학교에 다니게 한 덕분이다. 하지만 정작 모국어인 인도네시아 말을 잘 못한다.
뉴욕타임스가 2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의 중상류층이 자녀들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과도한 노력으로 영어는 잘하게 됐지만 모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다뤄 눈길을 끌고 있다.
수기아르토는 “우리 아이들은 인도네시아 사람이고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데 '바하사 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 말)를 할 수 없는 건 비극이에요.”
일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영어 구사력이 사회적 수준과 연관 짓고 있다. 인도네시아 어는 2류 수준으로 밀려났고 극단적인 경우 외국인처럼 인도네시아 말을 못하는 상황이 나오고 있다.
지구촌에서 부는 영어광풍은 영어를 쓰지 않는 세계 변방의 언어들을 좀먹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정치지도자들은 다양한 종족들과 고대문화, 서로 다른 방언들을 통합하고 국가적 정체성을 위해 젊은 세대들에게 인도네시아 말을 하도록 하는데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모든 사립학교들이 2013년까지 공식언어로 인도네시아어를 가르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세부사항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교육부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맡는 수얀토 씨는 “사립학교들은 여기서 운영되지만 바하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우리가 이들은 통제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언어가 위태롭게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아버지가 인도네시안이고 어머니가 미국인인 한 여성이 미스 인도네시아로 선발됐다. 이 여성은 인도네시아 말을 못해 심사위원단의 질문을 통역을 통해 답했다.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미의 여왕에 모국어를 못하는 여성을 선정한 심사진은 미디어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1928년 민족주의자들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말레이어의 한 형태인 인도네시아어를 국어로 선택했다.
교육전문가인 아디프 라후만은 “각 언어는 사회적 계급을 갖는다. 만일 당신이 자바섬 사람 말을 한다면 낮은 계급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당신이 인도네시아어를 말하면 좀 낫다. 네덜란드어를 하면 가장 높은 계급”이라고 설명했다.
1998년까지 인도네시아를 통치한 수하르토와 같은 지도자들은 인도네시아어를 장려하고 영어 사용을 제한했다. 인도네시아 대학의 아이미 다위스 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수아르토 시대에 영어는 바하사 말보다 아래편에 있는 언어였다”면서 “국가적 정체성을 위해 사용된 바하사 인도네시아어가 지금 쇠퇴한 것은 고의적인 정부정책이 아니라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평등화는 영어를 '새로운 화란어'로 격상시켰다. 규제는 느슨해졌고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을 영어를 사용하는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허용됐다. 아주 비싼 사립학교들은 연간 수천달러가 드는 과외도 하고 영어가 모국어인 교사를 고용하고 있다.
사립학교들을 관할하는 엘리나 라초 전국플러스학교협회 부회장은 "최근 수백개의 사립학교들이 새로 문을 열면서 일부 돈없는 학교들은 원어민 교사들을 채용하지 못하는 등 질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일부 인도네시안들이 사회적 상승을 위해 인도네시아어를 희생시키고 있으며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풍토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할머니와 손주들이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립학교에서 카운슬링을 하는 심리학자 안나 수르티 아리아니는 "일부 부모들이 가정부를 구해도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구한다"고 말한다.
두명의 미취학 자녀가 있는 델라 레이메나 조반카(30)는 불안감이 큰 상태다. 네 살백이 아들 파티브가 플레이그룹에서 영어를 배웠는데 유치원에 등록후 집에서도 영어TV프로그램만 보도록 하고 있다.
그녀의 아들 역시 부모에게 영어로만 말한다. 인도네시아말이 낯선 언어가 된 것이다. 조반카는 아들은 내년에 공립학교에 보낼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친구와 친척들은 영어구사를 위해 사립학교에 보내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중 어떤 언어가 더 유창하길 바라냐는 질문에 그녀는 “솔직히 영어다. 그러나 그건 아이의 사회화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아이는 인도네시아 사람이고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야 한다. 만일 아이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다면 큰 문제가 아니겠냐?”고 대꾸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아뤼쥐 나라 또 있네..
인도네시아의 영어광풍 소식을 접하니 이명박 정권 출범을 앞두고 벌어진 모 여대 총장의 ‘아륀지 해프닝’이 생각난다.
영어가 아무리 중요하다한들 모국어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언어는 그 민족의 전통과 문화, 혼을 담고 있는 그릇과도 같다. 단지 그 언어가 쓸모 많은 글로벌 랭기지라 해서 모국어를 포기하고 그 언어에 몰입한다면 그 민족은 더 이상 살아 숨쉬는 민족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처럼 다종족이고 언어가 너무 달라서 의사소통조차 힘든 나라도 아닌데 작금의 영어 짝사랑은 보기 딱할 정도이다. 제 나라 언어와 역사를 무시하는 민족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