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동료 군인을 살려낸 한인 전쟁영웅의 무용담(武勇談)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뉴욕한인회(회장 하용화)는 7일 제51주년 미주한인의 날 행사에 아프간전쟁 영웅인 한인군의관 존 오(John Oh 40) 중령을 초청, ‘Honorary Service Award’ 상을 시상한다고 밝혔다.
▲사진=케이아메리칸 포스트 제공
존 오 중령은 2006년 아프카니스탄 미 육군 야전 병원 책임자로 활약하던 중 왼쪽 엉덩이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박힌 채 후송된 모스 일병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전쟁영웅이다.
존 오 중령의 영웅적인 스토리는 밀리터리 타임스가 처음 보도했으나 한인사회는 지난 10월 19일 미주한인사이트인 케이아메리칸 포스트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오 중령이 아프간의 미육군 야전병원에서 피투성이로 실려온 차닝 모스(Channing Moss) 일병을 본 것은 2006년 3월 16일이었다.
모스 일병은 당시 탱크를 공격할 때 쓰이는 로켓추진수류탄이 엉덩이에 박힌 채 실려왔었다. 당시 육군 수칙은 폭탄이 몸에 박힌 군인은 추가적인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병실에서 멀리 떨어진 벙커에 방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 중령은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규정을 어기고 폭탄제거 수술에 참여할 지원자를 모으고 손수 집도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오 중령의 목숨을 건 행위로 모스 일병은 생명을 구했고, 아내와 두 딸과 감격적인 재회를 할 수 있었다.
▲모스 일병이 딸을 안고 있다. 이하 사진 www.militarytimes.com 캡처
오 중령은 “비록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병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바라보며 2시간에 걸친 수술을 무사히 끝낸 순간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엇보다 수술실 문으로 다시 걸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고 회상했다.
미 육군은 오 중령의 공로를 인정하여 2007년 1월 비교전(非交戰)상태에서 동료군인의 생명을 구한 영웅적인 행동을 한 미군에게 수여하는 ‘Soldier’s Medal‘을 수여했다.
뉴욕한인회 하용화 회장은 “오 중령의 희생정신을 높이 기리고 한인들뿐만 아니라 미국사회에도 큰 귀감을 삼기 위해 제51주년 뉴욕한인의 밤 및 미주한인의 날 연례만찬에서 Honorary Service Award 상을 수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독일에서 복무 중인 오 중령은 뉴욕한인회의 초청과 수상소식을 접하고 “기쁘고 영광스럽다”며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오 중령은 케이아메리칸 포스트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목숨을 건 수술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손을 든 동료 군인들의 희생정신이 오히려 놀라운 것이라며 겸손해 했다.
그는 긴박했던 수술을 마치고 지금 그의 아내가 된 연인에게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 로켓이 박힌 환자가 와서 수술해서 빼냈어요. 모든게 괜찮아요”(Doing well. I had patient with rocket and took it out. Everything is fine)”하고 담담하게 보냈다. 그는 “아내가 나중에 자세한 내용을 알고 난후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고 웃음지었다.
오 중령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3살 때 미국 메릴랜드로 이민왔다. 그는 1993년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육군장학금으로 1998년 뉴욕 메디컬 스쿨을 마쳤다. 2005년 11월 아프가니스탄으로 배치된 지 4개월만에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험한 것이었다.
그에게 미국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는 이북출신입니다. 한국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늘 말씀하셨죠. 미국으로 이민와서는 항상 미국시민인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해오셨습니다. 저는 미국인이 된 것이 매우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지역생활여건 개선 등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또 미국은 전쟁 중이다. 야전병원에 있으면 미군 사상자들을 매일 본다. 그것을 한인사회가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모스 일병 구하기..한인군의관의 영웅적 결단
케이아메리칸 포스트는 당시 모스 일병이 실려올 때만 해도 그의 몸에 박힌 것이 폭탄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 소령(당시 직급)은 그의 부상부위를 확인하자마자 병실의 의료진에게 “Everybody get out! (모두 나가!)”고 소리쳤다.
폭탄이 터지지 않고 몸 안에 박혀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을 대피하게 한 것이었다. 그것이 터질 경우 의료진이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원자를 구해 목숨을 건 수술을 단행했다.
다음은 KAmerican 포스트가 전하는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이다.
“Everybody get out! (모두 나가!)”
2006년 3월 16일 아프가니스탄 미육군 야전병원에 실려온 창 모스(Channing Moss) 일병의 피범벅이 된 군복과 붕대를 자르고 부상입은 곳을 보자마자 군의관인 존 오(John Oh) 당시 소령이 외친 말이다.
모스 일병의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 밖으로 추진날개가 붙어있는 파이프가 삐죽 나와있었다. “그가 헬리콥터에 실려왔는데 폭탄이 몸에 박혀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오 소령은 폭탄제거팀에 연락했고 도착한 폭탄제거팀은 모스 일병 몸안에 박혀있는 폭탄이 탱크를 공격하는데 사용되는 로켓추진수류탄(RPG)이라고 알려줬다. X-레이 검사결과 병실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력의 탄두는 없었지만 모스 일병과 수술팀을 죽일 수 있는 폭탄 뇌관과 기폭장치가 몸 안에 박혀있었다.
미육군 제10산악사단 알파중대 소속 모스 일병은 이날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역을 정찰하다 매복해 있던 탈레반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미군차량인 험비(humvee) 지붕에 장착되어있는 총을 쏘는 사격수로 상반신을 내놓고 선채로 있었는데 탈레반이 발사한 로케추진수류탄이 험비 앞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서있던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박힌 것이다.
오 소령은 모스 일병 몸 안에 폭파하지 않은 로케추진수류탄이 박혀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육군 규정이 떠올랐다. 규정은 폭탄이 몸에 박힌 군인은 더 큰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병실에서 멀리 떨어진 벙커 등에 두고 사실상 죽게 내버려두도록 밝히고 있다.
“그 때는 규정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나를 보고 말하고 있고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벙커에 두면 이미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살아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죽게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야전병원 책임자인 오 소령은 다른 군의관과 의무병들을 모아놓고 폭탄제거 수술에 참여할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규정을 어기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수술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람을 찾은 것이다. 1명의 다른 군의관과 2명의 의무병이 손을 들었다. 오 소령은 이들에게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수술실에 들어오도록 했다.
수술은 오 소령의 인도하에 의무병들과 폭탄제거팀의 댄 브라운 중사가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수술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의무병들은 수술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여 수술 중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오 소령은 수술이 시작되면서 수류탄을 빼내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라운 중사가 톱으로 튀어나온 로케추진수류탄 꼬리 부분을 잘라내자 오 소령은 메스로 부상 부위를 절개했고 본격적인 폭탄제거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로켓추진수류탄을 몸에 들어왔던 방향 반대로 빼내는 것이었다.
로케추진수류탄은 모스 일병의 왼쪽 골반을 부서뜨리고 장기를 심하게 손상시킨 채 박혀있었다. 수술팀과 브라운 중사의 긴밀한 협조로 골반 뼈에 끼어있던 로케추진수류탄 몸체는 수술이 시작된 후 2시간만에 브라운 중사의 손 안으로 빠져나왔다.
브라운 중사는 모스 일병의 몸에서 빼낸 로케추진수류탄 뇌관과 기폭장치를 들고 안전 벙커로 가져가 폭파시켰다.
브라운 중사는 “로케추진수류탄를 폭파시킨 후 다리에 힘이 풀리며 풀썩 주저 않았습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마침내 해냈구나, 우리가 생명을 구했다는 생각에 감격했습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오 소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술을 마치고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무엇보다 수술실 문으로 다시 걸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 기뻤습니다.”
모스 일병은 그 뒤 미국으로 후송되어 후속수술을 통해 회복되었고 아내와 두 딸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박힌 나를 살리기 위해 병원까지 후송한 파일럿, 수술해준 오 소령 등 많은 사람이 생명의 은인이라며 일평생 그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날이 없을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오 소령은 이 공로로 2007년 1월 비교전상태에서 동료군인의 생명을 구하는 영웅적 행동을 한 미군에게 수여하는 ‘Soldier’s Medal’을 받았다.
2009년 11월 중령으로 승진하고 현재 독일에서 복무 중인 오 중령은 모스 일병을 수술한 것은 영웅적인 것이 아니라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제가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똑같이 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