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팰리세이즈 팍(이하 팰팍)이 미국에서 가장 한인인구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16일(현지시간) A섹션 32면에 뉴저지의 팰팍이 미국에서 한인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소개하며 팰팍의 한인타운을 대서특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한국인들이 타운을 새로 만들다(As Koreans Pour In, a Town Is Remade)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불과 20년만에 미국의 대표적인 한인타운이 된 팰팍의 어제와 오늘을 상세히 소개했다.
다음은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
20년전 팰팍 경찰은 제이슨 김을 이따금 이른 시각에도 찾았다. 그가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체포되는 일이 있으면 ‘미란다 원칙(피의자의 권리)’을 통역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장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제이슨 김은 시의원의 신분이고 이 지역의 거리는 대부분 한국어로 쓰인 간판에 업주와 손님은 한국어와 영어로 얘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팰팍의 한인들은 급속히 증가했고 한인경찰도 3명이나 있다.
1980년대 이후 버겐카운티 동부일대인 에지워터와 잉글우드클립스, 레오니아, 포트리 등은 아시안 이민자들이 크게 늘었다. 그 중심은 한인들이었다. 그러나 팰리세이즈팍만큼 한인들이 많은 곳은 없다. 현재 이곳의 54%가 아시안이고 44%가 한인이다.
한인들이 이곳에 진출한 역사는 짧지만 그 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200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이 지역 한인들의 비중은 31%였다. 44%도 2005~2009년 자료이기 때문에 2010 인구센서스 결과가 나오면 이보다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제이슨 김 시의원(54)은 “내가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은 단 두 곳이었다”고 말했다, 브롱스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가르치고 SAT 학원도 운영하는 그는 “이렇게 많이 변할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퀸즈칼리지 사회학과 민병갑 교수는 “전체 한인인구는 퀸즈와 로스앤젤레스가 더 많지만 인구비율로 보면 2만명이 사는 팰팍의 한인비율이 전국 최고”라고 말한다. 팰팍 주민 66%가 외국의 이민자들로 과테말라 등 여러 나라 출신들이 산다.
한인등 소수계가 들어오면서 갈등(葛藤)도 없지 않았다. 1989년 브로드애버뉴에서 그랜드가구점을 오픈한 앤디 남 사장(70)은 “가끔 문제아들이 돌을 던져 창문을 깨뜨리면서 ”김치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인식당과 술집들은 영업시간을 늘리기 위해 시당국과 싸워야 했고 백인 거주민들은 가게들 간판이 한국어로 돼 있다고 불평했다. 새로 입점하는 상인들은 그래서 한글과 함께 영어표기를 자발적으로 했다.
이민1세대들은 언어 장벽이 아주 컸다. 오랫동안 남 사장같은 영어를 하는 1세대나 미국에 와서 교육받은 1.5세대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80년대까지 이 지역은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독일 그리스 등에서 이민온 블루컬러 백인들이 많이 살았다. 집값도 쌌고 빈 점포도 많았다.
이 무렵 아시아 이민자들이 뉴욕에서 이곳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교육환경이 좋으면서 조지워싱턴 브리지만 건너면 맨해튼에 진입할 수 있는 버겐카운티를 선호했다.
뉴욕=민지영특파원 jymin@newsroh.com
<꼬리뉴스>
한인들 포트리에서 팰팍으로 이동
제이슨 김 시의원은 “처음엔 포트리에 사람들이 왔다. 하지만 포트리에 사람이 넘쳐나면서 다른 곳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올 때 브롱스에 정착했다가 86년 팰팍으로 왔다. “그때 부동산중개인이 사람들에게 팰팍을 권했다.”
한인들의 유입이 커지면서 이 지역 빌딩들이 리노베이션되고 부동산 가격도 상승했다. 현재 인구의 39%가 백인이지만 상가를 소유한 백인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35년간 신발수선가게를 운영하는 조지 매소드 씨는 “한국인들이 초기엔 외국 상점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점포들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난 한국어 간판을 창문에 걸고 항상 미소지으며 한국인 고객들을 맞았다. 한국인들은 어디가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 잘 찾는다”고 나름의 생존 전략(生存戰略)을 털어놓았다.
은행에서 나온 두명의 백인 여성은 팰팍에서 살았지만 다른 곳에서 쇼핑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 가게는 대부분 한국인들을 위한 것만 갖다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숫자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이 적다. 한인유권자는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김 시의원은 95년 교육위원에 한인으로는 처음 당선됐다. 세 번째 도전만의 일이었다. 2004년엔 시의원으로 당선됐고 지난해 2호 시의원으로 이종철 씨가 가세했다. 현재 한인 교육위원은 2명이 일하고 있다.
김 시의원은 “난 처음부터 한인유권자의 힘만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모두와 함께 일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