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꼬리뉴스
·꼬리뉴스 (13092)
·뉴스로 창(窓) (274)
·뉴스로TV (127)
꼬리뉴스
육하원칙(六何原則)?역(逆)피라미드 형식의 스트레이트 뉴스? 정형화, 제도화된 뉴스만 뉴스가 아니다. 뉴스뒤의 뉴스, 뉴스속의 뉴스를 읽자. 뉴스로에선 "꼬리뉴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선에서 취재한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뒷 이야기, 기감 없는 에피소드, 촌철살인의 한마디까지, 뉴스로 독자들은 정규뉴스 바로 뒤에 물리는 꼬리뉴스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틀에 박힌 뉴스는 거부합니다. 오직 뉴스로만이 가능한 꼬리뉴스에서 뉴스의 새로운 멋과 맛을 느끼십시오.

총 게시물 13,092건, 최근 3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사라지는 뉴욕의 이민역사 한인청과상 <NY타임스>

글쓴이 : 민병옥 날짜 : 2011-06-19 (일) 05:29:04

뉴욕한인사회의 상징이자 뉴욕이민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한인 청과상(靑果商)이 사라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지난 수십년간 옐로캡과 프리첼 노점상과 함께 뉴욕이민자들의 전형(典型)이었던 한인청과상들이 환경적인 요인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와 제리 사인펠드는 한인청과상들에게서 초창기 영감(靈感)을 얻었다. 시민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그들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였고 루디 줄리아니 전 시장은 시장선거 때 캠페인의 일환으로 그들을 활용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www.nytimes.com

뉴욕타임스는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에서 청과가게 한스 패밀리 마켓 오너 한 주 씨(42)와의 사례에서 한인청과상들이 처한 어려움을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한 씨는 이민 1.5세로 부모가 시작한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쉴 새없이 일을 하고 있지만 그는 요즘 렌트비를 내기에도 벅차다. 그는 가게를 정리할 생각이다. 근처 두군데 한인 청과상도 가게 매각 계획을 갖고 있다. 이미 수백명의 한인 청과상들이 가게를 팔아버렸다.


물론 한인청과상들은 뉴욕시 청과상의 70%를 차지할만큼 아직 이 업종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치솟는 렌트비와 온라인 판매를 포함한 극심한 경쟁 환경, 뉴욕시의 관리감독 강화에 따른 벌금에 치여 허덕이고 있다.

한 씨는 청과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두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는 “아내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면 야채가게에서 평생 일할거냐?고 야단친다”고 말했다.

퀸즈칼리지 민병갑 교수에 따르면 95년만 해도 한인청과상의 숫자는 약 2500개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05년 2000개로 줄었고 계속 하향세다. 민 교수는 “네일살롱과 세탁소같은 서비스업이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되고 있지만 영세한 청과상은 더 이상 생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뉴욕한인청과협회 이종식 회장도 “영세한 청과상들이 문을 닫거나 수퍼마켓으로 흡수됐다”면서 “10년안에 한인이 하는 영세점포들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루클린 플랫부시에 있던 한인 청과가게는 페루인이 운영하는 정육점 가게로 바뀌었다. 브롱스 웹스터 애버뉴의 오래된 청과상도 어떤 업종이든지 상관없다며 매물로 나왔다. 이 가게 주인 맹은숙 씨(52)는 “많은 사람들이 문을 다고 있다. 모두가 떠나려 한다”고 전했다.


한인들은 이탈리아계와 유태계들이 여러 세대전 그랬던 것처럼 부모들의 비즈니스를 물려받지 않고 계산대와 먼 종류의 일을 찾으려 하고 있다. 변호사나 병원 등 부모들이 원하는 직업들이다.

이종식 회장은 “한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더 높은 사회적 위치에 오르길 원한다”고 말했다. 대학서 철학을 공부했던 이 회장은 말했다 청과상을 운영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그는 현재 플러싱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한다.

오랫동안 새벽마다 브롱스 헌츠 포인트 도매상을 다녔다는 그는 “아이들이 나와 똑같은 일을 하도록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딸 리나는 보스턴 법대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리나는 “이제 과거와 떨어질 시간이 됐다. 청과상은 부모세대의 직업”이라고 말했다.

한인들의 미국이민은 계속 줄고 있다. 88년 3만1600명이었지만 지난해는 4600명에 그쳤다. 민병갑 교수는 “이제 한인들은 서비스업과 전문직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한인들이 떠나는 청과업은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특히 중동이민자들이 새롭게 메우고 있지만 아직 주도적인 그룹은 없다. 이들 신규 이민자들은 한인이 그랬던 것처럼 능숙한 영어와 전문경험이 불필요한 이들 업종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인청과업의 역사는 70년대 시작됐다. 필리핀 이민자들이 간호사에 몰리고 아프간이민자들이 프라이드 치킨을 전문화한 것처럼 한인 이민자들은 신선한 과일야채상이라는 틈새시장을 찾아냈다.

한인들의 청과업은 일자리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새로운 이민자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 이들 가게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 새로운 청과물 가게를 여는 일이 오랫동안 되풀이됐다.

한인들은 종종 수퍼마켓이 적은 동네에 진출해서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종종 인종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90년대 브루클린 처치 애버뉴의 ‘패밀리 레드 애플’에 대한 불매운동을 둘러싼 한흑갈등이 그것이다.

당시 시장선거에서 데이빗 딘킨스 시장과 맞선 줄리아니 후보는 불매운동이 뉴욕시 경제가 무너지는 증거라고 몰아붙여 재미를 보기도 했다.

뉴욕=민병옥특파원 bomin@newsroh.com

<꼬리뉴스>

과일노점상과 가격전쟁 벌이기도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한 주 씨는 지난 달 뉴욕의 로컬라디오 1010WINS가 노점상과 가격전쟁하는 한인 청과상이라고 보도해 화제를 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한 씨는 가게 앞에서 영업하는 과일 노점상들이 좌판대를 뉴욕시가 허용한 10피트 이상으로 늘리는가 하면, 우유 등의 유제품까지 판매하는 등 명백한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방송은 “한 씨가 월 렌트비 1만 6천달러를 내고 있는데 반해, 과일 노점상은 뉴욕시에 단지 100달러의 설치비용만 지불하고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인 소상인들의 어려움을 소개한 바 있다.

한 씨는 브로드웨이와 93가에 위치한 이 가게에서 일하며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이 가게를 70년대 후반 개업했다. 가게는 집안의 직업소개소와도 같은 구실을 했다. 한 씨는 “이모부 중 네 분이 청과일을 했다”고 전했다.

오늘날 그 친구들과 친척들은 은퇴했거나 더 쉬운 직업을 찾았다. 한 씨와 아내 제니 씨는 여전히 가게 앞에 있는 노점상들이 불편하다.


대학시절 전공이 비주얼아트였던 한 씨는 어머니의 병으로 가게를 맡게 됐다. 그는 요즘 노점상만이 아니라 홀푸드와 프레쉬 디렉트, 파머시 체인들로 인해 손실이 가중되고 있다.

“1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당장 가게를 팔아버릴 것”이라고 말하는 그이지만 이 가게는 진한 향수(鄕愁)의 대상이다. 그는 “이 가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해줬다. 우리가 원하고 희망하는 모든 것을 해줬다. 그러나, 이젠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쓸쓸히 말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盧昌賢 l편집인 : 盧昌賢
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l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등록일 : 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 전화 : 1-914-374-9793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607-204 / 전화 : 010-2041-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