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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보급 가장 큰 보람” 뉴욕주 아시안1호 이기동교장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08-27 (토) 10:46:31

 

“26년의 미국교직생활중 가장 큰 보람은 뉴욕에 스승의 날을 전파한 것입니다.”

뉴욕주 공립고교 최초의 아시안 교장으로 잘 알려진 이기동 전 답스페리 고교 교장이 26년간의 미국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모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기동 교장은 다음달 26일 제주 서귀포에 개교하는 영국의 사학명문 노스 런던 스쿨의 전체 교감 겸 중학교교장으로 부임(赴任)했다.

이 교장은 출국전 ‘글로벌웹진’ 뉴스로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모국에 부임하는 심경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사반세기가 넘는 미국의 교직생활중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스승의 날 행사를 정착(定着)시킨 것을 들었다.

 

이 교장은 “뉴욕 카도조고에 평교사로 있던 87년에 스승의 날 행사를 처음 열었다. 한국서 초등학교를 다녔을때 스승의 날을 했던 기억을 되살려 한인 재학생들과 함께 스승의 날 행사를 열었는데 카네이션을 받아든 미국 선생님들이 감격하는 등 엄청난 반향(反響)을 일으켰다”고 추억을 돌이켰다.

당시 학생들과 코리안클럽을 만들고 한인학부모협회도 결성하는데 힘을 보탠 이 교장은 뉴욕시 한인고등학생 연합회를 조직해 운동회 성격의 축제도 거행하고 한글 뉴스레터도 만드는 등 그야말로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특별한 한인 교사였다.

이 교장은 “나 자신 1.5세이기때문에 미국에서 자라는 한인학생들의 심경을 너무도 잘 이해했다. 아이들이 당당하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어주고 사제간의 정과 예절을 듬뿍 느낄 수 있는 한국의 좋은 행사와 관습을 미국학교에 도입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2005년 뉴욕주 공립고 최초의 아시안 교장으로 부임한 그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이듬해 답스페리고를 뉴스위크 선정 전국 랭킹 49위로 끌어올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정년이 보장됐고 앞으로 4년만 더 근무하면 은퇴후 연봉과 똑같은 100% 연금을 받게 되지만 지난 봄 한국행을 위해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더 늦기 전에 모국의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교육 행정 노하우 등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전수(傳授)하고 싶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영국계 사립명문 노스 런던이 제주에 캠퍼스를 개설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교장직에 지원, 지난 겨울 두 번이나 런던에 다녀오는 등 인터뷰를 했다.

그의 지원은 노스 런던스쿨로서 즐거운 고민이었다. 미국교육계의 보기드문 전문가를 스카우트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영국계 학교로서 자국 출신의 교장을 임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노스 런던측은 이 교장의 양해를 얻어 전체 교감 겸 중학교 교장을 제의, 대어를 낚게 됐다.

상식의 잣대로 볼 때 보장된 미래를 내던지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그이에게 모국은 어떤 존재이길래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렸을까. 이기동 교장의 속내를 들어보았다.

      

-미국서 쌓아올린 것이 솔직히 아깝지 않았나?

“왜 아니겠는가. 답스페리에서 만족와 평가도도 높고 정년도 보장됐는데 말도 안된다고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국의 학교에서 아이들과 동고동락하고 싶은 것은 오랜 꿈이었다. 이번에 놓치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나의 심경을 이해하고 뜻을 따라준 아내가 정말 고맙다.”

-미국서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게 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한인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간 거친 미국 학교의 교사들과 여러 관계자들이 많이 서운해하고 있다. 답스페리에 부임하기 전에 5년간 교감으로 있었던 워터 패나스 고교(요크타운)에서는 얼마전 깜짝 환송연을 베풀어줘 감격하는 일도 있었다. 이곳 선생님들이 미국에 다시 올 때는 꼭 우리 학교 교장으로 와달라고 하는 등 미국에선 보기 드물게 따스한 정을 보여줬다.”

 

-교사로 처음 부임한 곳이 뉴욕 카도조 고교였는데

“85년 9월에 베이사이드의 카도조 고등학교에 생물교사로 부임했다.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전교생 중 한인학생이 50명 정도 됐다. 사실 처음엔 교직이 천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3~4년 되고나니 아하 이것이 내가 평생해야 할 일이구하는 생각이 들더라.”

-한인학생들과 많은 활동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그때만 해도 한인 교사가 거의 없었다. 한인학생들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이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특별한 문화이벤트를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코리안클럽과 코리아 나이트 행사이고 한글과 영어로 뉴스레터를 만드는 일도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학생들과 그런 일을 한 것이 자랑스러웠다.”

-스승의 날 행사도 처음 시작했다고 들었다

“나의 교직인생중 가장 보람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바로 스승의 날 행사를 뉴욕시 최초로 시작한 것이다. 87년 당시 엘머스트의 뉴타운 하이스쿨이나 플러싱 하이스쿨에 한인학생들이 더 많았지만 코리안클럽같은 한인학생들의 구심체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카도조는 많이 앞서간 셈이다. 한국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 미국에 왔는데 한번은 스승의 날 행사때 선생님 집을 찾아가 카네이션도 달아드리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우리 한인학생들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니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더니 학생들이 대찬성이었다. 그때 꽃집을 하는 한 부모님이 카네이션을 250송이 도네이션 해주고 며칠동안 함께 준비를 했다. 한국과 똑같이 5월 15일 아침에 새벽부터 학교정문 앞에 나란히 줄을 서서 선생님들에게 꽃을 달아드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때 행사를 한인언론은 물론, 뉴스데이 등 주류 언론이 보도를 해서 널리 알려졌다.”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아다시피 미국의 학교에선 한국처럼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깍듯한 공경이 없지 않나? 한 선생님은 ”30년간 교직생활을 했지만 이렇게 기쁘기는 처음”이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다. 당시 한인학생회장을 맡은 상현이라는 학생이 스승의 날에 관한 에세이를 써서 선생님들께 드렸기 때문에 스승의 날을 통해 한국학생들이 선생님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스승의 날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렸고 다른 학교에도 전파된 계기가 되었다. 훗날 하버드에 들어간 상현이와는 뉴욕시에 있던 다른 한인학생들과 연계된 뉴욕시한인고등학생연합회를 만드는 일도 했다. 롱아일랜드의 브라이언트 하이스쿨과 스타이브센트 하이스쿨 등 한인학생들이 많은 학교에 모두 연락해서 가을에 농구와 배구 경기를 하고 가수 변진섭도 초청하는 청소년축제를 열었다.”

 

-그러한 활동이 교사보다는 교장과 같은 교육행정가의 길을 걷도록 한 것인가

“그런 셈이다. 카도조를 담당한 로겐 교육감이라는 분이 내가 하는 활동을 눈여겨 보고 교장으로 나가라고 격려했다. 뉴욕대에서 두 번째 석사학위를 받고 롱아일랜드 윌리엄 브라이언트 고교에 교감으로 부임하게 됐다.”

-요즘들어 한인 2세들중에 교직을 희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 교장이 롤 모델이 된것 같은데

“꼭 그런건 아니겠지만 얼마전 답스페리의 사립학교(마스터 스쿨)에 있는 한인 선생님과 식사를 한적이 있다. 이분이 나의 존재가 자신과 같은 교사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하더라. 난 해준게 하나도 없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얼마전 2세들의 한 모임에 나갔더니 교사를 희망하는 대학생들을 5명이나 만났다.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교사에 대한 자부심이 한인사회에 확산되는 것 같아 흐뭇하다.”

-이번에 부임하는 노스 런던 스쿨은 어떤 학교인가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사학의 명문이다. 노스 런던 제주스쿨은 90%가 한국학생이다. 영국식 보딩스쿨로 교사도 95%가 영국인이고 미국 교사도 일부 채용됐다. 한국역사도 가르치기 때문에 3~4 명의 한국인 교사도 선발할 계획이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한국과 영국의 학력이 인정된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잘 적응하도록 가교(家敎) 역할을 잘 하겠다.”

-교육자로서 또다른 꿈이 있는지

“직업이란 하나의 아이덴터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직은 내게 더할 수 없는 자부심과 보람을 안겨준 천직(天職)이다. 나의 마지막 꿈은 교사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어느 작은 섬의 분교에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꿈을 늘 꾸고 있다. 그래서 먼 훗날 묘비명에 ‘Teacher Proud Keith Yi’라는 말을 꼭 쓰고 싶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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