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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 나노열’ 뉴욕서 만난 40년전 평화봉사단원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10-20 (목) 13:19:43
 
  
 
“제 이름은 나노열입니다.”
18일 평화봉사단 사진전이 개막된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코리아. 60대 백인신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유창한 한국어로 소개를 했다.


 


주인공은 닐 랜드래빌(63 Neil Landreville) 씨. 그의 목에는 빛바랜 흑백 신분증이 하나 걸려 있었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발행한 정부종합청사 출입증이었다. 외국인의 신분에 정부 청사를 드나들 수 있는 신분증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신분증 안에는 20대의 젊은 랜드래빌 씨가 있었다. 그는 스물세살이던 70년 평화봉사단원(Peace Corps)으로 한국에 와서 76년까지 생활했다. 전북 김제와 전주, 서울 등지에서 20대 젊은 시절을 보낸 그에게 한국은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응축된다.


그의 집은 본래 매사추세츠에 있었지만 한국이 그리워서 뉴욕 퀸즈로 이사왔다. 한인들이 모여 사는 플러싱과 엘머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간호사(RN)가 직업인 그는 82년 직장을 엘머스트 병원으로 잡아 더욱 많은 한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살 수 없을바에야 뉴욕으로 가자고 마음먹었어요. 한국인들이 많이 사니까요.”


그의 존재는 한인 환자들에게 화제의 대상을 넘어 복음과도 같았다. 언어장애로 인한 불편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푸근한 마음씀씀이까지 ‘나 선생’은 한인들의 다정한 벗이었다. 며칠전에도 병원에서 한국할머니를 만나 도움을 주었다. 영어를 못해 답답했을 그 할머니가 얼마나 마음이 놓였을까.


‘나노열’이란 이름은 성(Landrevilee)과 이름(Neil)을 한국식으로 만든 것이다. 2005년 한국을 다시 찾을때까지 30년간 한국에 가지 못했지만 그는 뼛속까지 한국인인 것처럼 보일만큼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한국을 왜 좋아하냐는 우문(愚問)에 그는 “정이 많잖아요” 하고 말했다. 그랬다. 김제에서 하숙을 하고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그가 만난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보릿고개를 막 넘기긴 했지만 곤궁한 한국인들을 도우며 그또한 지구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한국인의 진한 정에 도리없이 빠져들었다.


 
 


“한국에선 정말 재미있었어요. 연탄불도 갈아보고 음식도 하고..” 까마득히 오래전 일이지만 그에겐 한국 생활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수십년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옛 친구와 이웃을 만나 회포를 풀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위해 잔치까지 열어주었다.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어리둥절한게 많았다. 너무도 많은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이 1천달러도 안되는 나라는 어느새 12대 세계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 한국의 발전이 뿌듯하기도 하지만 개발이라는 미명(美名)아래 파괴되고 한국의 정취가 사라지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단다.


 


그는 뉴욕에서 한국의 묵화(墨畵)를 배웠다. 휴대폰에 저장된 몇장의 그림은 수준급이었다. 액정 화면엔 원두막이 있는 농촌의 풍경, 형제갈비집이 있는 신촌 로타리 등 추억의 풍경들이 흑백의 수묵화로 연달아 피어났다.


  


열두폭 달력을 수묵화로 만든 것도 있단다. “한국이 그리워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곧 다시 한국을 갑니다. 정말 보고싶어요.” 그의 두 눈엔 고향을 찾아가듯 설레임이 가득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우리 오라버니 한국 사랑 대단해요” 황순희 씨


이날 나노열 씨를 기자에게 소개시켜 준 황순희 씨는 그를 ‘오라버니’라고 호칭했다. ‘미국 오라버니’와의 인연은 벌써 10년이 넘는다.


 


뉴욕밀알장애선교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황순희 씨는 엘머스트 병원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알게 됐단다. “한국말도 너무 잘하고 한국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해주는 오라버니가 정말 친오빠처럼 여겨지더라구요.”


“오라버니가 엘머스트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게 언제였죠?” “그게 1982년이지..”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은 영락없이 다정한 오누이였다.


“오라버니는 정말 한국을 좋아해요. 한국 음식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제는 인터넷을 보고 고등어조림을 만들었대요.” “우리 둘이는 (한인타운에 있는) 북창동 순두부집이 단골이에요. 거시기 감자탕도 좋아해요. 허허..”


한국인보다 한국을 좋아하는 나노열 씨야말로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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