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의 익숙한 공간을 2차원과 3차원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재구성합니다. 실제 도시 풍경은 제 손과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 움직여 아주 개인적인 공간으로 바뀝니다."
8일 뉴욕 롱아일랜드 시티에 새로 오픈한 예이스 갤러리(Yace Gallery)에서 만난 작가 조희정씨의 작품은 마치 건축설계사의 도면에서 갓 태어난 건축조형물들을 보는 것같다.
<무형의 그리드 Intangible Grid>라는 제목으로 오픈한 개관전에는 조희정과 조엘 카레이로 두명의 한미작가가 독특한 감성의 작품들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거리의 상점과 건물 등 도시풍경을 나무로 만든 조희정의 크고 작은 릴리프, 그리고 조엘 카레이로의 열로 전사된 타일모양 이미지의 나무패널 작업들이 선보여진다. 그리드가 연상되는 이 두 작가의 작품 속에서, 현대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감성적 지도(조희정)와 고전 명화를 재구성한 조형언어도(조엘 카레이로)를 발견 할 수 있다.
큐레이터 리즈 권씨가 심혈을 기울인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가 사는 동네를, 이웃을 작품으로 '재건설'하는 조희정씨의 작품은 3차원의 건축물을 보기좋게 평면화시키고, 그 평면에 다시 양각(陽角)을 재현하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나무를 만지는 것이 즐겁고, 나무란 제게 아주 익숙한 재료입니다. 손에 익숙한 나무로 내가 사는 마을을 작품으로 옮기는 거죠."
서울대 조소과와 럿거스 뉴저지주립대학원을 졸업한 조희정씨의 작품은 거대한 정원이 분재에 옮겨지듯, 우주가 그의 캔버스로 압축되지만, 그 캔버스에는 그 우주가 되살아난다.
나무를 자르고 조합한 조희정의 화면 안에는 늘상 지나치게 되는 상점, 커피샵, 세탁소, 전철 등 거리의 모습이 있다. 이들 일상적인 풍경은 다소 과장된 시점-아주 평면적이거나 원근을 극대화한-으로 표현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익숙함과 낯설음을 오가게 한다.
조희정씨의 건축조형물을 설계도에 풀어 놓은 듯, 갤러리 다른 공간엔 조엘 카레이로씨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고전을 콜라쥬 기법으로 재해석한 카레이로씨의 작품세계는 우리 눈에 익숙한 작품들의 조각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맞물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로 완성된다.
"내 작업실의 테이블 위에는 이미 기존의 고전들의 작품들을 솔아 놓은 조각들이 널려 있습니다. 누구나 그 조각을 퍼즐처럼 캔버스에 갖다 붙이며, 본인 스스로 가장 편안한 순간에 멈추면 작품이 됩니다."
카레이로씨의 작품은 언뜻 보면 탱화(幀畵)의 색감들을 연상시킨다. 회화의 역사 가운데 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들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나, 중세 채색 필사본, 또는 페르시안 미니어쳐 등에서 이미지를 취하여 나무 패널에 전사시키는 작업을 한다.
코넬대학교와 헌터칼리지에서 미술을 전공한 카레이로씨는 1998년이래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해오고 있는 베테랑작가로 현재 헌터칼리지 교수로 재직중이다.
예이스 갤러리 대표 방주리 씨는 “예이스는 작가만이 아니라 시각적인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경영인과 소장가를 발굴하고자 한다. 작가와 작가의 유대를 위한, 안목이 있는 소장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작지만 특별한 갤러리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한동신특파원 opwo@newsroh.com
<꼬리뉴스>
예이스 갤러리. 예술과 에이스 합성어
Yace Gallery(yacegallery.com) 의 뜻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 할 때 ‘예(藝)’에다 ‘ace it’ 이라는 영어의 표현을 합성해서 최고의 예술이란 뜻이 있다.
갤러리 대표 방주리씨와 화가 겸 목사 방연직씨 부부를 호스트로 한 8일 열린 오프닝 리셉션에는 관람객들로 발디딜틈 없을만큼 성황(盛況)을 이뤘다.
그레이스 맹 뉴욕주하원의원 사무실을 비롯,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화분과 꽃들이 자리한 가운데 뉴욕 화단의 전문가들은 작품들의 독창적인 기법과 완성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리즈 권 큐레이터는 “조희정 씨 작품은 일상적인 풍경을 통해 친근미와 생경미를 제공한다. 주변환경 내에 어떠한 불편함이란 새로운 ‘터’를 잡아 가고 있는 이민 작가에게 불가피한 주제가 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또 카레이로씨에 대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나, 중세 채색 필사본, 또는 페르시안 미니어쳐 등에서 이미지를 취하여 나무 패널에 전사시키는 작업은 고전의 종교화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미국 모더니즘에서 미적 순수성을 위하여 중성적이고 형식적 구조로 사용되어온 그리드가 그의 작업에서만큼은 고전(古典)이라는 개념을 동시에 드러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개관전은 오는 28일까지 계속되며 예이스 갤러리(44-02 23rd St. #109, Long Island City)는 MoMA PS1에서 가깝고 맨하탄에서 지하철로 10분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