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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블로호 동해-서해 이동경로 첫 공개’ 나포43주년 北매체 보도

글쓴이 : 임지환 날짜 : 2012-01-24 (화) 12:04:41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Pueblo)호가 1월 23일로 나포(拿捕) 43주년을 맞은 가운데 북한의 매체가 그간 미스테리였던 원산에서 남포의 이동경로를 처음 밝혀 눈길이 쏠리고 있다.

 

www.en.wikipedia.org

북한관영매체 ‘조선의 소리’는 23일 웹사이트에 ‘미제 무장간첩선《푸에블로》’라는 제목과 사진을 달고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 공해상에서 나포된 푸에블로호가 대동강변에 전시된 사연을 처음 공개했다.

‘조선의 소리’는 “푸에블로 호가 조선 영해에 깊숙이 침범하여 간첩행위를 하다가 용감무쌍한 조선인민군해군에 의해 나포됐다”면서 “조선인민앞에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한 미제의 몰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어느해 김정일동지께서 《푸에블로》호를 1860년대에 조선에 기여들었던 미제침략선 《셔먼》호가 수장된 대동강에 끌어다 놓아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여 조선동해에서 조선서해를 거쳐 대동강으로 끌려오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 사진='조선의 소리' 홈페이지

푸에블로 호 피랍(被拉)사건 당시 존슨행정부는 제5공군에 비상출격 대기명령을 내리고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원산 앞바다에 근접해 무력시위를 벌였고 북한도 전군비상령을 내리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조성됐다.

결국 11개월간의 줄다리기 협상을 벌인 끝에 미국은 북한에 영해 침입 사실을 시인 사과했고 12월 23일 푸에블로호 승선원 82명을 시신 1구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넘겨받았다. 그러나 푸에블로 호는 미국의 반환요구에도 돌려주지 않았다.

원산 북한군항에 있던 푸에블로 호는 95년부터 98년까지 원산항에 전시돼 반미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다가 99년 10월 노동신문이 “원산 앞바다에 있던 푸에블로호가 현재 대동강 ‘충성의 다리’ 근처로 옮겨졌다”며, “이는 김정일 총비서가 1998년 12월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보도함으로써 대동강변으로 옮겨진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그러나 동해에 있던 푸에블로 호가 어떻게 평양 대동강변까지 옮겨졌는지에 대해선 그간 베일에 가려 있었다. 일각에서는 푸에블로호가 원산항에서 서해쪽으로 가기 위해 공해상으로 나오면 나포하려고 인공위성으로 감시했지만 해로를 통해서는 옮기지 않았다는 설이 있었고 북한이 육로로 이동하기 위해 해체후 조립했다는 설도 제기됐지만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었다.

‘조선의 소리’ 보도가 사실이라면 비록 위장이 되었다해도 공해상으로 나온 푸에블로 호를 첨단의 위성을 보유한 미 정보당국이 왜 감지하지 못했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그러나 온라인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미국은 푸에블로호가 옮겨진다는 것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는 푸에블로 호가 옮겨진 시점은 99년 1월로 공해상에서 이를 다시 확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미국이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은 배경으로는 당시 제임스 켈리 대통령 특사가 평양 방문을 앞두는 등 북미간 대화가 모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화해의 제스처로 푸에블로 호를 돌려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무리해서 공해상에서 재탈취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바로 이 점을 노려 푸에블로 호를 상징성이 큰 대동강변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옮긴 셈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푸에블로 호와 관련한 두 번의 대결에서 승리한 셈이다.

현재 푸에블로 호는 1866년 미국의 제너럴셔먼 호 격침비가 서 있는 대동강변 제방 바로 옆에 정박돼 있다. 북한은 구한말 개방을 강요하러 온 미국 무장 상선을 격침시킨 지점에 푸에블로호를 전시함으로써 북한은 반미투쟁의 효과적인 교육선전물로 삼고 있다.

뉴욕=임지환특파원 jhlim@newsroh.com

 

▲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 <사진='조선의 소리' 홈페이지>

<꼬리뉴스>

푸에블로 호 나포사건 미해군 역사상 세 번째 수모

막강한 미 해군 함정이 나포된 것은 미 해군 역사상 세 번째이고 공해상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미 해군의 최신예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승무원 83명(장교 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을 태우고 북한 해안 40Km거리의 동해 공해상(동경 127도 54.3, 북위 39도 25)에서 업무수행 중 북한의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납치 되었다. 이 때 북한측의 위협사격으로 미국 군인 1명이 사망하고 수 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에블로호 나포 이틀 전(1.21)에는 김신조 등 북한 무장 비정규군이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 있었다. 한반도에 전운이 감도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도발적인 북한의 나포사건에 대해 미국에선 강경한 보복조치를 취하라는 여론이 비등했고 세계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정부는 북한의 무모한 도발행위를 비난하고 푸에블로 호 및 승무원의 즉각 송환(送還)을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전쟁도 불사한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 핵 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제7함대의 구축함 2척을 출동시켰다

한편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원회 소집을 요구 북한에 대해 푸에블로호 나포의 부당성을 항의했다 그리고 외교적 노력의 일환으로 소련정부에 대해 나포 함정의 송환을 알선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 후 북한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학대, 고문하여 그들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하였음을 시인 사과하도록 강요했고 이 사건을 미국이 불법적으로 침략적인 도발행위를 감행하고 있는 것처럼 대내외적인 선전을 펼쳐 최대한으로 이용하였다.

사건발생 후 11개월이 지난 1968년 12월 23일 북한은 판문점을 통해 승무원 82명과 유해 1구를 송환하고 푸에블로호 함정과 거기에 설치된 비밀전자장치는 몰수했다. 미국은 송환을 위해 북한정부에 대해 푸에블로호의 북한 영해침범을 시인, 사과하는 요지의 승무원 석방문서에 서명하였는데 이는 후일 미국의회에서 정치문제가 되기도 했다.


다음은 ‘조선의 소리’ 보도 전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의 대동강기슭에는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전시되여 있습니다.《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령해에 깊숙이 침범하여 간첩행위를 하다가 용감무쌍한 조선인민군해군에 의해 나포된 배입니다.《푸에블로》호는 참관자들에게 조선인민앞에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한 미제의 몰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분대장으로 나포전투에 참가하였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 김중국은 말합니다.《1968년 1월 23일 미제의 무장간첩선<푸에블로>는 교활하게도 <해양전자연구함선>으로 가장하고 우리 나라 령해에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하다가 영웅적조선인민군해군에 나포되였습니다.》

무장간첩선<푸에블로>호가 조선동해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히자 미제국주의자들은 발광적인 전쟁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도적이 매를 드는격으로 미제는 방대한 륙해공군 무력을 조선동해에 집결시키고 그 무슨 <강력한 군사적대응>을 운운하면서 감히 우리 조선을 위협공갈해나섰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있던 그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는 단호한 립장을 선포하시였습니다. 그리하여 미제는 하는수 없이 저들의 범죄를 인정하고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어느해 김정일동지께서는 《푸에블로》호를 1860년대에 조선에 기여들었던 미제침략선 《셔먼》호가 수장된 대동강에 끌어다 놓아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는 조선동해에서 조선서해를 거쳐 대동강으로 끌려오게 되였습니다.

오늘 대동강에 끌려온 《푸에블로》호는 조선인민들에게 높은 계급의식을 심어주는 반미사상교양의 거점으로, 반미대결전에서 조선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안겨주는 승리의 전시장으로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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