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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만의 어떤 만남, 시인 마종기와 뉴욕의 환경운동가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11-16 (수) 01:57:52

영현은 초등학교 4학년. 큰형(백충현)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한국전쟁의 상흔(傷痕)이 거칠게 남아있던 1955년 여름, 서울서 학교를 다니던 형이 친구 마종기를 대동하고 대구 율하마을 집에 왔다. 또다른 단짝 황동규를 포함한 형들은 서울중 문예반의 죽마고우였다.

큰형은 훗날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동경대와 하버드대에서 수학후 서울법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한 국제법 전문가로 우리 문화재 환수에 큰 기여를 했다. 친구형들은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글재주가 남달랐던 종기 형은 영현을 위해 공책에 ‘개구리’와 ‘시냇물’ 두편의 자작 시를 써주었다. 떠나기전 선물한 운동화를 그가 애지중지하며 머리맡에 올려두자 “야, 영현아. 신발은 머리위에 두는게 아니라 발로 신는거야”하며 웃더란다.

 

어린 시절 아스라한 추억이었다. 뉴욕에서 환경운동가로, 한인사회의 권익신장을 위한 풀뿌리운동가로 정력적인 활동을 하는 백영현(67) 그린클럽 회장이 마종기(71) 시인과 56년만의 감격적인 해후(邂逅)를 했다. 지난달 28일 한국과 미국작가 5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작가를 만나다’ 행사가 열린 뉴욕한국문화원에서였다.

 

백영현 씨에게 마종기 시인은 3년 전 타계한 형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비록 56년전 여름날의 짧은 추억이었지만 까까머리 중학생 종기형에 대한 기억은 강렬했다.

“그때 형이 직접 써준 두편의 시가 적힌 공책을 꽤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어요. ‘개구리’라는 시는 보호색을 빗대 방금 없어진듯, 그러나 늘 그 자리에 있는 ‘개구리’를 우리 인간이 못본다는 것을 풍자한 시였어요. 그걸 잃어버린게 너무 아깝네요.”

“맞어맞어, 내가 시를 써줬지. 근데 난 다 잊어버렸는데 아직도 기억해?”

“요즘 리필(refill)이 되는 세상이니까 형이 그 시를 리필좀 해줘..”

두 사람은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며 옛 추억을 돌이켰다.

“그때 자네 형하고 둘이서 경주에 무전여행을 갔잖아. 첨성대도 보고 다보탑, 석가탑도 보고, 그때 이 탑들을 올라타고 그러지 않았겠어? 허허.”

이들 중학생 콤비는 신라말기 술잔을 띄우며 왕족이 풍류(風流)를 즐겼다는 안압지를 보기위해 한참을 걸어갔단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너무 작고 볼품없는 모습에 화가 나서 망을 보며 몰래 오줌을 지렸단다.

“겨우 이걸 보려고 우리가 고생하며 여기까지 걸어왔냐 한거야. 철없는 나이였지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더라구. 아마 자네 형이 반평생을 해외에 불법 반출된 문화재 환수에 헌신한 것도 그래서 그랬을거야...”

 

마종기 시인은 저명한 아동문학가 고 마해송 선생의 장남이다. 서울고와 연대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미,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딴후 의사와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필활동을 쉬지 않았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의사의 체험과 이민생활이 녹아있는 시어와 인간에 대한 통찰력으로 한국문학작가상(1976년) 이산문학상(1997년) 동서문학상(2003년) 등을 수상하였다.

 

백영현 씨는 최근 수년간 정력적인 환경운동과 통일운동으로 한인사회는 물론, 미 주류사회에도 알려진 주인공이다. 뉴저지 페어론에서 원예업을 하는 그는 환경운동단체인 1492그린 클럽을 창설, 타운전체를 라일락의 물결로 뒤덮는 ‘라일락 프로젝트’로 주목을 받았고 지난 2년간 한인신문에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제언을 양면광고로 무려 20차례 이상 게재해 화제를 뿌렸다.

마종기 시인이 미국에서 의사 겸 시인으로 활동하던 70년대 이후 백영현 회장은 엔지니어로 중동에 진출,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며 사업을 했고 80년대 후반 미국에 와서 자리잡았다. 20년 넘게 같은 미국땅에 있었지만 오하이오와 뉴욕에 떨어져 있었고 두 사람의 연결고리인 백충현 박사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풍문(風聞)으로 소식을 접할뿐이었다.

 

백영현 회장은 “큰 형이 돌아가신뒤로 종기형을 꼭 한번 보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알 수 없었어요. 그저 언젠가 한번은 보겠지 보겠지 한거지요”하고 말했다. 그러던 지난 여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종기 형’의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의 필진인 한동신 오픈워크 대표가 ‘겨울꽃자리 시인 마종기의 추억’이라는 칼럼을 올린 것을 알게 된 백영현 회장이 한동신 대표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백영현 회장은 “56년만에 종기 형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형이 10월에 뉴욕문화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온다고 하기에 꼭 만나기로 했지요”하고 말했다. 고희(古稀) 언저리의 노시인과 환경운동가였지만 어느새 중학생과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듯 했다.

공지영 천운영 등 후배문인들과 한국계 미국작가 수잔 최 등 미국 문인들과 함께 한 행사에서 근작시들을 낭송한 마종기 시인은 왕성한 시작활동으로 지난달 22일엔 박두진 문학상을 수상하는 낭보도 있었다.

백 회장은 “저는 큰 형을 잃었고 종기형도 동생을 잃었다고 해요. 종기형을 보니 큰형이 돌아온듯 반갑고 저도 종기형의 친아우처럼 살고 싶네요”하며 두손을 굳게 잡았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반백년의 세월을 건너서, 만난 반가운 동생’ 마종기 시인의 소회

반세기가 훌쩍 넘은 세월을 뒤로 하고 가장 친한 벗의 동생과 반갑게 포옹한 마종기 시인은 백영현 회장에게 세권의 책을 선물했다.

 

마해송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아버지 마해송>과 지난해 출간한 시집 <하늘의 맨살>, 조창환시인과 함께 펴낸 묵상시집 <나를 사랑하시는 분의 손길>이었다. 이 세권의 책에 시인은 특별한 인연의 아우를 반세기도 더 지난 만난 소회(所懷)를 각각 표현을 달리하여 적어주는 애틋함을 보였다.

‘내 친구 충현이를 기억하며, 너무 반갑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옛 동생께’ ‘반백년의 세월을 건너서, 만난 반가운 친구’...2011 가을 뉴욕에서 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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