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큰스님이 미국의 불자들에게 한줄기 빛이었다면 법안큰스님은 미주한인불자들에게 청정한 감로수였습니다.”
숭산큰스님과 함께 미주한국불교의 양대산맥이었던 태허당 법안대종사의 5주기 추모법회가 26일 뉴욕 원각사 큰법당에서 奉行(봉행)됐다.
주지 지광스님과 무량스님, 신도 등 사부대중 1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열린 추모법회는 제를 올리기에 앞서 생전 큰스님의 발자취를 영상과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법안 큰스님은 해외 한국포교의 1세대로 큰 足跡(족적)을 남겼다.
지광스님은 “큰스님께서는 유학과 한학을 아우르는 학문의 깊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대단한 서예가이기도 하셨다. 특히 88년 뉴욕대의 박사학위논문인 ‘원효의 화쟁사상’ 연구는 불교사적 가치가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동국대 부총장을 역임하고 74년 하버드로 유학 온 스님은 경유지인 뉴욕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운명처럼 불자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미주한국불교가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때까지 미동부에는 한국사찰이 전혀 없어서 신도들은 가정법회를 드리며 불법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법안큰스님과 신도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한국사찰을 세워야한다는 뜻이 모아졌고 숭산큰스님의 원력으로 원각사가 마침내 創建(창건)됐다.
법안큰스님은 하버드 수학을 마치고 76년 원각사 주지로 취임, 본격적인 발전의 초석을 다지게 됐다. 맨해튼 법당에서 잭슨하이츠 법당을 거쳐 87년 뉴욕주 샐리스배리밀즈의 30만평 부지로 이전한 것도 바로 법안큰스님의 대작불사에 기초하고 있다.
지광스님은 이날 큰스님과의 몇가지 일화들을 신도들에게 들려주어 눈길을 끌었다.
“한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도올 김용옥 선생이 자신의 저서에서 법안큰스님을 극찬해서 한번은 여쭤봤습니다. ‘김용옥 선생은 성철큰스님도 비판한 분인데 스님을 그렇게 칭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묻자 ‘하버드 유학시절 내게 아주 어려운 한문글귀를 내놓길래 그 자리에서 풀어줬지. 그랬더니 놀라서 삼배를 하더군’ 하셨습니다.”
“제가 있던 보스턴 문수사를 가끔 방문하시고 공양을 하실 때면 수저를 들기도 전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봅니다. 이것을 먹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이 될뻔 했습니다.’ 하시곤 했어요. ‘아니 스님 드시지도 않고 어떻게 맛있다고 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걸 꼭 먹어봐야 아나? 보면 아는거지’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供養偈頌(공양게송)이었지요.”
지광 스님은 “큰스님께서는 대해처럼 열려있는 마음으로 수용하는 기개가 대단했다”고 추억하면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따뜻한 법당에서 부처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것도 큰스님의 원력과 염원의 기운이 계속 비쳐지는 덕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샐리스베리밀즈(뉴욕주)=민병옥특파원 bymin@newsroh.com
<꼬리뉴스>
해외한국불교 포교1세대 큰스님
30 년간 뉴욕 원각사 주지를 맡으며, 해외 한국불교를 일군 미주포교 1세대인 법안 큰스님은 1956년 직지사에서 관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60년 조계사에서 동사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큰 스님은 후학들의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1972년에는 동국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뉴욕 원각사 주지로 있던 1988년에는 뉴욕대에서 ‘원효의 화쟁사상’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1989년에는 미주현대불교신문사를 창간하고 미디어 매체를 통한, 한국불교의 미국 전법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2004년부터 뉴욕 원각사 祖室(조실)로 주석한 큰스님은 지난 2007년 3월 27일 法臘(법랍) 51세, 세수 76세로 涅槃(열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