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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자들 한인과 중국인에 밀려” NY타임스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11-28 (월) 13:58:36

뉴욕타임스가 퀸즈 플러싱에 있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학살) 생존자 커뮤니티가 중국인과 한국인들에 밀려 위축(萎縮)되고 있다고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5일 ‘줄어드는 생존자 커뮤니티(A Community of Survivors Dwindles)’라는 기획기사에서 “뉴욕 플러싱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위해 마련된 아파트에 이들이 소수로 전락하고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주류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이곳에서 30년을 넘게 산 소피아 골드버그 씨의 사례를 통해 세월의 변화와 함께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갖는 정신적 충격과 외로움, 후발입주민과의 미묘한 갈등의 분위기도 전했다. 다음은 뉴욕타임스 기사의 주요 내용.

소수 인종전시장 뉴욕의 커뮤니티지도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바뀌고 있다. 한때 이탈리아계가 모여 살던 곳은 세네갈 커뮤니티가 들어섰다.

소피아 골드버그 씨에게 이러한 변화는 좀더 특별하다. 만 100세를 2년 앞두고 있는 골드버그 할머니는 퀸즈 플러싱의 19층 아파트에 산다. 이 아파트는 예사 아파트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때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주어진 2개동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골드버그 할머니가 이곳에 온 것은 1978년. 당시 이 아파트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이주한 유태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골드버그 할머니는 “우리는 아주 숫자가 많아서 함께 카드게임도 하고 로샤하나(설축제)와 욤키퍼(종교기념일) 등 축제를 아파트 안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러나 “지금은 모든게 바뀌었다. 이웃이 한사람도 없어”하고 덧붙였다. 지금 현재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모두 326명. 이중 유태계는 10%가 채 안되는 31명에 불과하다. 이들중 7명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유태계를 대체한 후발 이민자들은 아주 우호적이다. 그러나 골드버그 할머니는 “우리는 서로 얘기를 안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가 전부다. 그들은 독일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한다. 그들은 러시아어(구소련출신 유태계)와 중국어를 말한다. 가끔 고개를 젓기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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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버그 씨가 사는 아파트 마틴 랜드 하우스는 나치독일로부터 미국으로 탈출한 피난민(避難民)들을 위해 셀프헬프 커뮤니티 서비스가 1936년부터 짓기 시작한 6개동 아파트 중 하나이다. 이 아파트가 세워진 것은 1965년. 나치희생자서비스(NVS)의 엘리후 코버 부회장은 “당시 입주민 대부분은 유태계와 이탈리아계였다”고 회상했다.

초기 유태계중엔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이 많았지만 나중에 동구와 구 소련출신이 합류했다. 이들은 플러싱에 모여 가게들과 예배당을 세웠다. 유태계 시니어센터는 1975년 지어졌고 각종 이벤트와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 아파트 인근의 벤자민 로젠탈-프린스 스트릿 시니어센터는 이제 중국인과 한국인으로 넘쳐난다. 이에 대해 겉으로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스튜어트 캐플란 셀프헬프 대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그걸 불평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이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골드버그 할머니는 2차대전때 독일에서 가족들이 희생됐다. 8명의 친구들과 한 약속에 따라 일체 홀로코스트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할머니는 근 반세기가 지나고서야 과거사를 털어놓았다. 그녀를 구속하던 유태계 커뮤니티의 존재가 미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헌터 칼리지의 카멘 모래노 교수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희생자들의 정신적 상처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약해지고 유태인 커뮤니티 또한 위축되면서 인생의 종착역(終着驛)에 다가선 희생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심리학자인 게리 케네디 박사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정신적인 상처의 공동체에서 보통의 공동체로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설사 치매가 오더라도 당시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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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통치하던 벨로루시에서 탈출했다는 블라디미르 포즈니아코프는 이곳에 97년에 입주했다. 그는 “아파트에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언어장벽과 문화의 차이로 다른 커뮤니티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나름의 의견을 피력했다.

아파트에 다른 이민자들이 늘어나게 된 것은 행정적인 이유도 있다. 70년대 중반부터 셀프헬프가 60세이상의 저소득 주민들을 위한 공정성 차원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우선 입주권을 더 이상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 자리가 나면 추첨을 통해 입주자를 선정했고 이 지역의 인종지도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유태계 주민이 줄어든 것이다.

아파트 관리회사의 모히니 미쉬라 프로그램 디렉터는 “입주민 중 한 사람이 타계(他界)하면 새로 들어오는 것은 한국인 아니면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빌딩 1층엔 여전히 유태계 예배당이 있지만 욤키퍼 행사를 하면 한때 200명이던 참석자는 이제 70~75명으로 줄어들었다.

골드버그 할머니의 아파트 바로 아래 사는 피라 쉬와츠맨 씨는 “요즘 아파트 리노베이션이 되고 있어 마음에 든다”면서 “중국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미국정부가 이 나라에 오게 했다면 그걸로 된거 아니냐.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 어떤 사람(유태계)이 왜 중국인이 여기에 오느냐고 하면 난 ‘당신은 왜 여기에 왔냐?’고 묻는다. 그가 ‘난 피난민이다’라고 하면 ‘그들도 피난민’이라고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올해 84세인 쉬와츠맨 씨는 나치가 고향 몰도바를 침략했을 때 틴에이저였다. 어머니는 그녀와 언니를 데리고 코커서스로 피난을 갔다. 그곳마저 나치가 침공하자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 고향을 떠나는걸 마다했던 아버지는 다른 열세명의 가족과 함께 나치에 의해 살해됐다.

골드버그 씨와 달리 쉬와츠맨 씨는 고통스럽지만 전쟁중 경험을 자주 이야기한다. “지금부터 10년후엔 더 이상 생존자가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있었던 일을 가르쳐줄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다시 되풀이되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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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유태계도 독일출신 러시아출신으로 이질감

유태계도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과 구소련 출신으로 나눠지고 있다. 지금의 유태계 생존자들은 러시아어를 하는 그룹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했고 영어구사력이 떨어졌다. 셀프헬프가 관리하는 빌딩 6개동의 유태계 71명 중 독일출신은 9명, 오스트리아 출신은 3명, 나머지는 구소련 출신이다.

골드버그 할머니는 “러시아출신 사람들하고도 카드 게임을 한다 그들은 우호적이지만 독일어를 하지 않고 우리와는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느낌이 좀 다르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봄 코버 씨는 러시아출신들이 유럽의 종전기념일인 V-E데이 축하행사를 가졌을 때 독일출신들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는 욤하쇼아 행사를 가졌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중 절반인 3만8천명이 뉴욕 일원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2002년 5만5천명에서 반으로 줄어든 숫자다. 셀프헬프는 이 숫자가 2015년엔 3만명, 2025년엔 1만9천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2년 당시 이곳에 살던 나치 희생자중 절반은 러시아어를 구사했는데 이 숫자는 더 늘어나고 있다.

벳시 스미스 시니어커뮤니티 디렉터는 “이 빌딩의 인구분포가 변화하면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점점 고립(孤立)되어가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어울리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세심한 부분까지 파악해야 한다. 노란색의 식탁보나 장식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나치에 수감됐을 때 유태인의 표시로 달았던 노란색 별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터부시 된다. 마찬가지로 흰색은 중국인들에게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피된다. 그래서 푸른색이나 은색으로 꾸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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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버그 할머니 위층에 사는 로빈 후 씨(78)는 시니어센터에 단골로 나온다. 그는 주2회 하는 볼룸 댄싱을 다른 중국계와 어울려 즐긴다. 그는 “러시아 사람들은 이걸 안한다. 왜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기뻐하거나 적극적이지 않다. 아마 과거에 슬픈 기억을 갖고 있기때문인 것같다. 슬픈 과거에 대해 얘기하는건 즐거운 일이 아니므로 자세한 내용은 나도 모른다”고 말했다.

후 씨는 러시아어를 약간 하는데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조금 알지만 유태계 출신과는 민감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언어장벽(言語障壁)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가라오케 기계를 이용해 러시아노래를 즐기고 싶어 초대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후 씨는 “우리는 왜 그들이 이곳에 오지 않는지 모르고 그들은 왜 우리가 이곳에 오는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인사만 한다. 그래서 가까워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케네디 박사는 “이같은 장벽은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라 대상이 모두 노인들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가령 홀로코스트 피해주민이 5살 짜리 중국꼬마를 보면 그같은 경계(境界)가 없어진다. 귀여운 손자를 보는 것 같은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기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들은 서로를 좀더 알기 위한 기회가 많기를 바란다. 올해 패스오버 세더 행사때 아파트 관리실측은 중국어와 한국어로 안내문을 배포하며 참석을 독려했다. 올해 열린 중국설날(Chinese New Year) 행사에는 러시아어와 독일어로 안내문을 보내 모든 주민들이 참석하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소피아 브레이어 씨(82)는 빌딩내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에 참석했지만 중국 이웃에게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이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떻게 플러싱에 왔는지 전혀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 우리 그들의 생활에 대해 얘기해 줄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좀더 깊이있는 대화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후발 입주민들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과 함께 노인들은 하나 둘 타계할 것이고 새로운 이웃들은 늘어갈 것이다. 골드버그 할머니는 “옛날 사람들이 그립다(I miss the crowd)”고 쓸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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