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弱冠)의 나이를 갓 지난 프랑스의 한 대학생이 사멸(死滅) 위기에 처한 알래스카 원주민의 언어를 되살리는데 열정을 바쳐 화제가 되고 있다.
월스트릿저널(WSJ)은 10일 A섹션 1면에 프랑스 르아브르 출신 대학생 기욤 레두이가 알래스카 원주민언어인 에야크(Eyak)어를 원주민의 후손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전했다.
모나 커리는 최근 한 동영상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돌아가신 엄마가 원주민 의식을 하면서 에야크 어로 말하는 장면이었다. 원주민어를 거의 말하지 못하는 커리는 기욤 레듀이가 “엄마는 아름답다고 얘기했어요”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야크는 한때 알래스카 중남부에서 수백명의 원주민들이 말하던 언어였지만 지난 200년간 다른 종족과 서구사람들의 침략과정에서 사라졌다.
커리의 엄마인 마리 스미스 존스는 2008년 사망했는데 역사가들은 그녀가 마지막 에야크어 구사자라고 지적한다. 그녀의 후손들과 다른 사람들은 알래스카 원주민 마을에서 영어로만 얘기하는 바람에 고유어를 능숙하게 말하지 못한다.
에야크어를 되살리는데 온 힘을 다하는 레듀이는 지난 6월 에야크 전문가인 알래스카대 언어학자 마이클 크로스(75) 교수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앨라스카에 왔다.
그는 프랑스어와 영어 독일어 중국어 조지아어에 정통하고 리투아니아어로 노래 한가지를 부를 수 있다. 왜 죽어버린 언어를 다루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레듀이는 “나도 잘 모르지만 나의 내부에서 그런 일을 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00여년 전 에야크인들은 알래스카의 내륙에서부터 연안을 따라 정착하면서 사냥과 고기잡이 생활을 했다. 알래스카엔 약 20개의 토착어가 있는데 크로스 교수는 에야크어가 능숙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사라졌다고 말한다.
에야크는 영어는 물론, 일부 알래스카 사람들이 말하는 러시아어와 유사성이 거의 없다. 단어 발음은 구강 중간에서 발음되는 유럽어와는 달리 구강 안쪽에서 발음되는게 많다. ‘n'자 다음에 나오는 에야크의 모음은 비음(鼻音)으로 발음되고 m'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레듀이는 “만일 에야크 말로 누군가를 욕하고 싶다면 ‘닉다루우’라고 부르면 된다”고 말한다. ‘큰 코(Big Nose)’라는 뜻이다. 죽인다는 말은 ‘이게쉐’다. 에야크어는 한 단어로 된 문장이 많다.
레듀이의 ‘에야크 오딧세이’는 12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향인 르아브르에서 온라인 언어사전을 통해 처음 에야크어를 접했다.
“에야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야크어에 대한 온라인 자료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레듀이는 크로스 교수의 교재 하나를 구했다. 또한 존스 할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감독한 앵커리지의 영화제작자 로라 블리스 스팬을 통해 필름과 크로스 교수의 교재들을 추가로 구했다.
2009년 4월 레듀이는 마침 프랑스를 방문한 스팬 씨에게 자신의 에야크 실력을 선보였다. 스팬은 “우리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바깥에 있었다. 기욤은 내게 문어그림같은 것을 보여주며 3가지 언어로 말했는데 문어는 에야크어로 ‘쌀릭소쿠’였다”고 회상했다.
레듀이는 지난 6월부터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하루 5시간씩 크로스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다. 또 틈틈이 에야크 원주민들이 마지막으로 거주한 코르도바를 여행했다.
낯선 이방인의 에야크어 사랑은 원주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존스 할머니의 딸 커리 씨는 “이제라도 에야크어를 배우는게 옳다고 느낀다. 어머니의 기억과 정신을 살아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마지막 에야크인 존스 할머니
마리 스미스 존스(Marie Smith Jones)는 1918년 5월 14일 태어나 2008년 1월 21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코르도바 출신인 그녀는 에야크국(Eyak Nation)의 명예 대표자이자 마지막 남은 순혈 에야크인이었다. 2005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에야크어로 "Udach' Kuqaxa'a'ch"로 "멀리서 사람을 부르는 소리"라고 말했다.
존스는 1948년 5월 5일에 어부인 윌리엄 스미스(William F. Smith)와 결혼해서 9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에야크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당시는 에야크어가 사회적으로 멸시받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앵커리지(Anchorage)로 이주한 그녀는 언어학자 마이클 크로스(Michael Krauss) 교수와 함께 에야크어의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했다. 그들은 사전을 편찬하고 문법을 정리하였다.
그녀는 토착 언어 문제와 평화 문제에 대해 국제 연합에서 두 차례 발언했다. 또한 인디언의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