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한번도 남편 단(Don)이 죽는다는 것을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가 없는 인생을 한번도 상상해본적이 없다. 나를 포함해 이 세상 모든 생명이 죽을 수 있지만 나의 단만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대실 김 깁슨의 ‘단을 그리며’에서>
‘4.29’, ‘침묵의 소리(Silence Broken)’ 등 국제적 反響(반향)을 일으킨 다큐영화로 잘 알려진 대실 김 깁슨(74 한국명 김대실) 감독이 5일 특별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뉴저지 팰리세이즈팍 공립도서관 2층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김대실 감독이 최근 펴낸 <단을 그리며(Looking for Don)>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 책은 김대실 감독이 3년전 겨울 死別(사별)한 남편(Don Gibson)을 그리는 추억의 명상집이다. “남편이 제 곁을 떠난 후 그이가 생각날 때마다 썼던 일기와 시, 그리고 틈틈이 그린 그림들을 모아보니 한권의 책이 됐네요.”
고희를 넘긴 원로이지만 김대실 감독의 남편에 대한 사랑과 애끓는 그리움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이 책의 주요 부분을 낭송하는 시간 대부분을 김대실 감독은 울먹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만큼 그녀에게 남편의 존재는 크기만 했다. 1938년생 범띠인 두사람은 연방정부 공무원의 신분으로 처음 만나 1979년 華燭(화촉)을 맺었다. 마흔한살의 나이였다. 부부이자 이상을 같이 하는 영적인 동지로 30년 세월을 함께 했다.

본래 남편과는 공동의 回顧錄(회고록)을 낼 계획이었다. 아이오와 시골출신의 남편과 황해도 옹진출신의 아내가 각자 걸어온 인생과 함께 한 30년을 담은 방대한 분량이지만 2009년 1월 남편이 지병으로 숨지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단과 함께 낼 책의 제목까지 정해놨어요. 어깨동무(Shoulder Friends)’라는. 남편이 숨을 거두기전에 ‘어깨동무를 완성해 세상에 내놓겠다는 약속을 했지요.”
‘어깨동무’를 위한 출판사를 찾으면서, 남편과 대화하듯 써내려간 글과 시, 그림들이 쌓이다보니 이것부터 출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Looking for Don: A Meditation’이 먼저 나온 배경이다.


김대실 감독은 “남편은 가식이 없고 진실했어요. 우리는 부부였지만 일생동안 지적으로 같이 하는 동반자였지요. 소외되고 억압된 사람들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내가 늦은 나이에 영화감독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영원한 지지자였어요”라고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팰리세이즈팍(뉴저지주)=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김감독이 직접 그린 그림도 수록
‘단을 그리며’는 <가을>과 <겨울>, <봄>의 3장으로 나뉘어 있다. 단 깁슨 씨의 肖像畵(초상화)와 그의 고향 아이오와의 옥수수밭의 풍경 등 김감독이 직접 그린 18점의 그림들이 사이사이 펼쳐진다.
남편의 병세가 깊어지면서 이들 부부는 이별연습을 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이별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그후 우연히 본 그의 컴퓨터에는 수많은 이별이 있었습니다. 아이오와 농장과의 이별, 대학원생활과의 이별, 워싱턴 D.C.로부터의 이별..나도 많은 이별을 했지요. 첫 번째 이별은 고향땅 이북이었습니다. 전 일곱 살이었어요. 지금도 그 추운 겨울 아침을 잊지 못합니다.”
김 감독의 친구이자 序文(서문)을 쓴 그레이스 카발레이 씨가 “단과 대실은 그들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름이었다”라고 회고할만큼 두 사람은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카발레이 씨는 “지구 반대편에서 자란 동갑내기 두사람이 미국땅에서 만나 마흔한살에 부부의 연을 맺고 30년간 살아온 길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었다”며 “그들은 정의와 평등, 인권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 세상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함께 힘을 합쳤다”고 평가했다.
이날 낭송을 마친 후에는 저자 사인회도 이어졌다. 김대실 감독은 정성껏 사인을 해주면서 감사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