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받아든 그들의 손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순박한 눈빛으로 “땡큐”를 연발했다. 다소 낯선 음식이었지만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라면을 포크로 건져올리며 먹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라면이었다.
뉴욕의 한인 장애우들이 히스패닉 노숙자들에게 설날을 맞아 흐뭇한 사랑의 라면봉사를 했다. 뉴욕의 아름다운 라면봉사(뉴아라봉)가 장애우들과 함께 21일(현지시간) 뉴욕장로교회에서 히스패닉 홈리스들에게 별미라면을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뉴아라봉은 한국의 라면봉사모임 ‘아라봉’의 뉴욕지부로 지난해 7월 발족해 매달 한차례 라면봉사모임을 하고 있다. 이채로운 것은 뉴욕밀알선교단(단장 김자송) 장애우들의 재활의지를 돕기위해 장애우들이 직접 조리도 하고 서빙도 하는 훈련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까지 밀알선교단 내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라면봉사시범을 한 장애우들은 이날 처음으로 출장봉사를 하게 됐다. 뉴아라봉을 이끄는 배우 김성아씨와 밀알선교단의 정창모 집사가 설날을 맞아 특별한 봉사를 논의하다가 매주 토요일 뉴욕장로교회에서 히스패닉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펼치는 김공여 권사와 연결이 된 것.
이날따라 뉴욕엔 10cm 가량 눈이 내리고 기온마저 급강하했지만 첫 출장봉사를 한다는 설레임에 장애우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참석한 장애우들은 김상준, 양철승, 박은지, 김순영, 유명희, 김민규, 김민제, 김태형, 케빈, 이광국 씨 등 10명으로 저마다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팀 서빙팀으로 나뉘어 준비를 했다.
오늘의 메뉴는 한국야쿠르트가 협찬한 녹차클로렐라면. 한끼 식사가 되도록 쇠고기와 버섯, 브로콜리, 당근, 계란, 김가루 등 푸짐한 부식이 첨가된 특제 라면이었다. 김성아 씨는 “설날이라 떡국떡도 특별히 넣었는데 모두 잘 드셔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히스패닉 노숙자들은 오후 2시반이 지나면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매주말 이곳을 찾는 히스패닉 노숙자들은 30~40명. 매서운 추위에 낡은 점퍼와 파커 등을 껴입은 이들은 장애우들을 비롯한 낯 선 이들과 취재진의 모습에 겸연쩍은 표정이었다.
뉴욕장로교회에서 주말 봉사를 3년째 있는 김공여 권사는 “토요일 아침엔 인근 우드사이드 파크 등 몇 개 공원에서 노숙하는 분들을 위해 빵과 계란, 커피 등을 나눠주고 오후엔 이곳에서 스패니시 사역담당 목사님과 함께 예배도 보고 식사와 샤워를 한다. 오늘은 설을 맞아 장애우들이 와서 특별한 라면까지 만들어주어 더욱 뜻깊게 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노숙자들은 사실 무전취식을 하는 이들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중남미에서 온 노동자들로 최근 미국경기가 어려워 일감을 찾지 못해 부득이 거리로 나오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갈곳이 없고 일을 잡기가 어려워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도 “한국 교회에서 항상 따뜻하게 환대하고 친절을 베풀어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창모 집사는 “이날 한인 장애우들이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이들에게 우리 장애우들이 조금이나마 희망과 용기를 준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뉴욕=민지영특파원 jymin@newsroh.com
<꼬리뉴스>
뉴욕장로교회, 장애우들에게 설날떡국 제공
이날 라면봉사에 앞서 장애우들은 설을 맞아 뉴욕장로교회에서 제공한 떡국을 함께 나눠 먹으며 즐거운 명절을 만끽했다.
김경화 권사를 비롯, 한영희 집사, 송 섭 집사 등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떡국을 준비해 장애우들을 기쁘게 했다.
이날 라면봉사는 밀알선교단의 김자송 단장을 비롯, 황순희, 정창모, 한영희, 송섭 집사, 뉴욕장로교회의 스페인어사역담당 이효성 목사, 김경화, 김공여 권사, 자원봉사자로 송정훈 전 뉴욕한인보험협회장, 임일찬 씨, 김혜영 씨, 임수영 씨가 장애우들을 도왔다.
특히 임일찬씨는 행사 1시간전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각종 부식을 준비하는 등 베테랑요리사를 방불케 하는 솜씨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뉴아라봉 행사때마다 빠지지 않는 송정훈 회장은 “며칠전 여의도 고등학교 동참모임에서 행사 얘기를 했더니 친구(임일찬)가 가고 싶다고 해서 나왔다”면서 “봉사활동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정말 일을 잘 한다”고 말했다.
김성아 씨는 “날도 추운데 우리 장애우들이 훌륭하게 조리와 서빙을 한 것 같다. 첫 출장 봉사를 히스패닉 홈리스 분들에게 해드려 더욱 보람을 느꼈다”면서 “다음엔 한국야쿠르트에서 인기폭발인 꼬꼬면을 협찬받아 ‘꼬꼬면 일일카페’를 열어 더 어려운 장애우들을 위한 기금마련을 해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뉴아라봉(phikjh@gmail.com)에 관심있는 분들의 성원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