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미주에서 한글과 한국문화 교육에 헌신한 허병렬(許昞烈) 뉴욕한국학교 이사장이 27일 뉴욕한국문화원에서 특강을 가졌다.
허병렬 이사장은 이날 뉴욕지역의 교사와 한국학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두시간동안 ‘한국문화교육의 이론과 실제’라는 제하의 강연을 했다. 허병렬 이사장은 올해 여든여섯의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만큼 생기넘치는 목소리로 한인 2세, 3세들을 위한 한국문화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허 이사장은 “문화(文化)와 문명(文明)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문명이 보편성이라면 문화는 특수성이다. 우리가 김치를 먹고 한글을 사용하듯 모든 민족은 문화적 특수성을 갖고 있고 우열을 가릴 수 없다. 한국이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고 한국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갖는다면 큰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허 이사장은 해외, 특히 다양한 미국문화에 노출된 미주한인 2세들을 위해 체계적인 한국문화교육을 해야 할 필요성을 주문했다. 그는 “한국문화교육은 한민족의 생활문화로 동포사회와 한국학교가 전통적이고 독특한 생활문화를 아이들의 심리발달상태에 맞춰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흥미를 일으키는, 보다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선 한국과 미국의 의식주(衣食住)를 비교하는 학습을 제시했다. 우리 민족의 귀한 정신유산인 전래동화를 들려줌으로써 미국과 유럽의 전래동화와 비교토록 하고 민속놀이, 세시풍속(歲時風俗), 관혼상제(冠婚喪祭), 한국의 상징물 등도 각각 미국의 대상들과 비교 시연하면 아이들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1964년 미국 유학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한글학교 경험을 통해 체득한 허 이사장의 교육 노하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가령 김치를 싫어하던 아이가 김치를 시식하는 것은 물론 자랑스럽게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제기차기 공기놀이 실뜨기 등 전통놀이를 배우면 즐거워합니다. 세시풍속과 관혼상제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식과 미국식을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알게 하고 적절한 예의도 배우게 하는거지요.”
이날 허병렬 이사장은 직접 만든 교재들을 들고나와 참석자들과 함께 시연하는 시간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카드놀이 찾기’는 그림과 짧은 단문을 통해 흥미롭게 우리 말의 어휘와 의미를 인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허 이사장은 2세, 3세들의 교육시 아이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해당국의 언어를 사용하되 고유명사는 반드시 한국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교육과정에는 저학년을 위한 한국의 전통생활문화교육이 포함되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선조들의 정신을 감지하고 한국계 미국인임을 자부하며 나아가 한국역사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할렘의 중학교에서 과학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은주 ‘예술인의 끈’ 회장은 “허병렬 선생님은 진심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는 참교육자이시다. 완벽하면서도 재미있고 긍정적인 선생님의 가르침에 늘 감동받는다. 너무나 마음과 몸이 고우신 선생님처럼 나이를 먹고 싶은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한국의 페스탈로치..영원한 일선교사
한국의 여성 페스탈로치, 한국어 교육의 어머니, 해외 한글교육의 산증인…. 허병렬 이사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1945년 서울사대부국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허병렬 이사장은 1964년 석사학위 취득을 위해 도미한 이후에도 한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74년 뉴욕 브롱스에 뉴욕한국학교를 설립한 그는 2009년 자신의 제자에게 교장직을 넘기고 이사장을 맡게 됐으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선 교사 생활은 한시도 쉰 일이 없다. 1945년 교단에 처음 선 이래 지금까지 무려 68년을 교사로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교과서 편찬위원으로 활동한 허 이사장은 지금까지 16권 이상의 한국어 교과서를 집필하거나 편집에 참여했다. 이같은 공로로 1984년 소수민족 우수인상, 1985년 제29회 소파상, 1989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2004년 KBS 해외동포상 등을 수상했다.
이날 허병렬 이사장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한국옛날 이야기’라는 영어 교재를 소개하기도 헸다. 총 12장으로 나뉜 이 교재는 한국의 생활문화를 그림과 함께 미국의 생활양식(生活樣式)과 비교풀이해 아이들의 흥미를 돋구고 있다.
그는 “난 교과서 냄새가 나는 책은 싫다. 애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재미있게 구성해야 한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저절로 깨닫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 교재는 제본과 장정을 갖추지 못한 채 약식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예산문제 때문이다. 허 이사장은 “돈이 없어서 책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책으로 내는게 꿈”이라고 만년소녀처럼 곱게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