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인들이 일본군의 성노예(性奴隸)로 희생된 역사는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입니다.”
김영목 뉴욕총영사가 미국 주류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고발해 눈길을 끌었다. 27일 맨해튼 이탈리아총영사관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한 김영목총영사는 뉴욕 SNN-TV와의 인터뷰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추악한 역사만큼이나 끔찍한 일본군 성노예 사건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도식은 2차 세계대전중 나치에 의해 희생된 8천여명의 이탈리아계 유태인과 소수민족을 기리는 행사로 지난 2000년 이탈리아 의회의 결의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폐쇄된 1945년 1월 27일을 기념하여 열리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추도식에는 김영목 총영사를 비롯, 그리스, 러시아, 호주 등 25개국의 총영사들과 카톨릭계의 몬시뇰 힐러리 프랑코(Hilary C Franco), 9.11테러 때 많은 인명을 구한 대니얼 나이그로(Daniel A. Nigro) 뉴욕소방국장, 스테픈 오스만(Stephen Osman) 코네티컷 대한민국 명예총영사 등 주요 인사 350여명이 참석했다.
▲ 김영목총영사와 김용현(오른쪽부터) 김성은 영사가 직원의 안내를 받고 있다.
참석한 각국의 뉴욕총영사중에서 아시아 지역은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김용현, 김성은 영사 등 두명의 영사를 동반한 김영목 총영사의 참석은 참혹한 전쟁범죄에 대한 아시아의 목소리를 한국이 대변했다는 상징성과 함께 일본이 회피하는 강제위안부 문제를 홀로코스트와 연계, 국제사회의 폭넓은 관심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김영목총영사와 SNN-TV앵커 Bill Tingling
김영목 총영사는 특히 뉴욕일원에 영향력을 지닌 SNN-TV의 빌 팅글링(Bill Tingling) 앵커가 소감을 묻자 한국인인 UN 반기문 사무총장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홀로코스트는 인류역사가 기억해야 할 참혹한 역사”라면서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이지만 이는 곧 인류가 저지른 씻을 수 없는 끔찍한 역사이기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역시 유엔 차원에서 중요한 행사들을 열고 있다”고 소개했다.
▲ 스테픈 오스만(Stephen Osman) 코네티컷 대한민국 명예총영사와 김영목 총영사
김 총영사는 “휴머니즘과 인류공영을 위하여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오늘 행사에 숙연한 마음으로 섰다. 대한민국 역시 2차대전이 남긴 참혹한 결과를 이겨내야 했지만, 특히 한국의 여인들이 일본군들의 성적 노예로 희생당한 역사는 아직도 가해자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에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2차대전중에 희생된 유태계 및 소수민족을 추모하는 이런 행사에 한인사회의 언론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 역시 전쟁의 희생자라는 것을 세계에 인식시키는 활동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서 주요 참석자들은 희생된 유태인들의 이름을 낭독하는 순서를 가졌고 김영목 총영사도 이에 참여했다.
대니얼 나이그로(Daniel A. Nigro) 소방국장은 “희생당한 분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다짐하기 위함”이라고 의미를 집약했다.
뉴욕=한동신특파원 dongsin.hahn@gmail.com
<꼬리뉴스>
아우슈비츠 본래 폴란드군의 막사
추도식을 기획한 센트로 프리모 레비(Centro Primo Levi)의 나탈리아 인드리미(Natalia Indrimi 사진 왼쪽) 디렉터는 “이탈리아 의회에서 쇼아수용소에서 희생된 이태리계 유태인을 추모하자는 결의에 따라 나치에 희생된 유태인들은 물론, 이탈리아 파시스트에 희생된 유태인들도 추모하는 날”이라며 “UN에서도 1월 27일을 추모일로 채택했다”고 소개했다.
▲ 힐러리 프랑코(Msgr. Hirary C. Franco), 데이빗 실버맨(David Silberman) Eyewitness Collector Holocaust 기자, 이태리 영사관 지오반나 트라배글린드(Giovanna Travaglind)
카톨릭계를 대표한 프랑코 몬시뇰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말씀했듯이 유태인이야말로 성경으로 사는 우리들에게는 가장 가까운 형제, 자매이며, 사제로서 오늘과 같은 추도식에 참석하여 희생자들을 기리고 명복을 비는 것은 바로 나의 의무요 책임”이라고 전제한 뒤, “전제정권이나 권위의 파괴력에 맞서 세상을 평화로 돌리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 크라코프 서쪽으로 6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폴란드어로 ‘오슈비엔침’이고 독일인은 발음하기 어려워 ‘아우슈비츠’라고 하는 수용소에서 28개국에 흩어져 살던 150만 유태인이 개스실에서 처형당했다.
아우슈비츠는 본래 폴란드군의 막사(幕舍)로 1940년 4월 이곳을 수용소로 전환한 나치독일은 수용소 인원이 넘치자 이곳에서 3km 떨어진 브레진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10배 크기로 제2수용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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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후반기, 소련군이 진입하자 나치는 수용한 유태인들을 독일 내의 다른 곳으로 옮기고, 1945년 1월중순 마지막 대피를 위해 수용소를 해체하기 시작했고 1945년 1월 17일부터 21일 사이에 걸을 수 있는 유태인 약 5만6,000명을 주변의 부속캠프로 옮겼다. 죽음의 행진이라 불리우는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유태인들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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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진입으로 제2수용소는 철저히 파괴되었지만, 제1수용소는 그대로 남아 오늘날 인류 최대 비극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