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국불교 최대의 청동(靑銅)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동부에서 가장 오래된 뉴욕 원각사(주지 지광스님)에서 12일 청동석가여래좌상 봉불식(奉佛式) 및 점안법회(點眼法會)가 봉행됐다.
이번에 건립된 청동대불은 좌대 포함 7.5m의 높이로 지난 수년간 한국에서 제작돼 지난 3월 원각사에 도착한 것이다. 그간 기초공사 등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달 현재의 자리에 세운데 이어 이날 점안식을 봉행함으로써 마침내 원각사 도량에 미주 최대 규모의 청동석가여래좌상을 모시게 됐다.
원각사에 모셔진 청동석가여래좌상은 미주 한국사찰로는 가장 큰 부처님이며 미주 한국불교미술사에서도 한 획(劃)을 긋는 중대한 불사로 평가받고 있다. 주지인 지광 스님은 “점안은 불상을 모시고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으로 “부처님을 통해 복짓는 법도 배우고 지혜를 닦는 법도 배우고 이 세상을 청정하게 살아가는 법을 부처님을 통해 배우는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봉불식은 증명법사(證明法師)로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이자 원각사 회주인 정우 큰스님을 비롯, 통도사 재무국장 정수 스님, 대만사찰인 뉴버그 보인사 주지 심행 스님, 팔라 원각사 주지 무량스님, 포틀랜드 보광사 주지 종승 스님, 청아사 주지 석담 스님, 구연 스님, 연국사 원주 자해 스님 원각사 세등 스님, 진양 스님 등 한국과 미국의 대덕스님들과 불자 등 50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열렸다.
김정광 신도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점안 법회는 삼귀의와 반양심경 봉독, 큰스님의 법문과 정화섭 불사추진위원장의 발원문, 사홍서원 순으로 이어졌다.
정우 큰스님은 법문에서 “부처님께서 2600년전에 계셨던 영축산처럼 풍요로운 도량에서 이렇게 야단법석(野壇法席 : 야외에서 크게 베푸는 설법)을 하게 돼 기쁘고 자랑스럽다.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 후 많은 중생이 깨달음을 얻었듯이 원각사를 창건하신 법안 큰스님의 원력을 이어나갈 청동대불 점안식을 하게 된 것은 복덕과 지혜의 공덕이며 우리 모두가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정광 신도회장은 “이미 원각사에서는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와 봉안을 했고 청동대불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게 돼 모든 불자의 환희심(歡喜心)을 이끌어낼"것이라며 "오늘을 깃점으로 해서 원각사 대작불사를 하나하나 이뤄나감으로써 미주에선 정말 보기 힘든 한국불교의 모습이 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달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모신 원각사는 청동석가여래좌상 점안식을 계기로 한국전통의 대웅전 건립 등 창건 이래 최대의 대작불사(大作佛事)를 이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이날 정우 큰스님은 올해 원각사 주지로 취임한 지광 스님에게 조계종 총무원장 명의의 주지 임명장을 수여했다.
샐리스베리밀즈(뉴욕주)=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법안큰스님과 숭산큰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진 원각사
원각사는 74년 법안 큰스님과 숭산 큰스님의 원력으로 미동부 최초로 창건된 한국 사찰이다.
숭산 큰스님은 73년 봄 하버드대에서 수학(修學)하기 위해 뉴욕에 당도했는데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스님을 본 불자들이 맨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리며 사찰을 세워줄 것을 간곡하게 당부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동부엔 한국 절이 전혀 없어서 불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정법회(家庭法會)를 하며 꾸려 나갔는데 우연히 맨해튼 식당에서 스님을 본 불자들이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매달린 것이다.
스님은 공부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절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난감해했지만 신도들은 “그럼 코앞에 닥친 부처님 오신날 법회만이라도 이끌어달라”고 청해 일단 보스턴에 올라갔다가 다시 뉴욕으로 내려와 법회를 이끌게 됐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미 72년 도미한 숭산 큰스님의 도움으로 이듬해 원각사가 창건(創建)돼 미주 불자들의 숙원이 이뤄지게 됐다. 원각사는 초기에 맨해튼에 법당이 위치했고 잠시 우드사이드로 옮겼다가 비좁은 법당에 비해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86년 유태계 휴양지였던 현재의 250에이커(30만평) 부지를 매입, 세계 불교대학을 세우고 한국 불교의 구심점(求心點)으로 삼겠다는 원대한 목표아래 이전하게 됐다.
원각사는 불행히도 2년후인 88년 법안 큰스님의 급작스런 와병으로 십수년간 침체기에 빠졌으나 2003년 해외불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정우 큰스님이 주지를 겸임하게 되면서 미동부 원찰(願刹)의 면모를 회복하고 제2의 중흥(中興)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