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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 콜럼버스데이 퍼레이드..뉴욕 맨해튼행진

글쓴이 : 김진곤 날짜 : 2012-10-09 (화) 20:07:53

 

세계최대의 콜럼버스데이 퍼레이드가 8일 뉴욕 맨해튼에서 펼쳐졌다.

전 세계 이탈리아계 행사중 가장 크고 화려한 것으로 알려진 뉴욕의 콜럼버스데이 퍼레이드는 이날 5번가를 따라 47스트릿에서 72스트릿까지 3시간동안 이어졌다. 행진 참여자만 100 여 단체에서 3만5천명으로 연도에서 관람한 시민들은 100만명에 달했다.

 

주관단체인 ‘콜럼버스 시민재단’은 1929년 이래 매해 거르지 않고 현재까지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퍼레이드 참가자중 가장 큰 박수와 환호성을 받은 주인공은 이탈리아계인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

 

행진에 참여한 유명인사로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과 척 슈머 연방상원의원, 좐 리우 뉴욕시 감사원장 등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날 퍼레이드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 예년과 별반 차이없는 내용으로 자주 본 시민들에게는 실망스런 반응이 나왔다.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에서 왔다는 마이클 씨는 “베테랑 데이와 별반 다름없는 느낌이 든다. 콜럼버스데이 퍼레이드는 성 패트릭스데이와 마찬가지로 유난히 많은 경찰들과 소방관들이 행진에 많이 참여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콜럼버스 데이 퍼레이드는 1937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10월의 두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정한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탈리아와 미국은 물론, 스페인, 바하마 제도, 우루과이 등 남미 여러 나라에서 행진을 벌이고 있다.

뉴욕=김진곤특파원 ckkim@newsroh.com


 

<꼬리뉴스>


콜럼버스 죽을때까지 신대륙 인도로 믿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이다.

1484년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 탐험을 제안하고 지원을 요청했으나, 희망봉 루트를 준비 중이던 왕이 허락하지 않자, 에스파냐로 갔다.

  

정치, 지리, 종교적 통일을 이룩하고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콜럼버스가 기사와 제독 작위, 발견한 땅을 다스리는 부왕의 지위, 얻은 총 수익의 10분의 1을 요구하자 처음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교회의 성직자들은 포르투갈교회에 대한 경쟁 의식으로 더 넓은 선교지를 필요로 했기때문에 콜럼버스를 위해 여왕을 설득했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해군 제독에 임명하였고, 그가 발견하는 것의 10%를 콜럼버스의 소유로 한다는 조건 하에 선박 2척(핀타호와 니나호)을 내주고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은 면죄해 준다는 조건으로 승무원 모집에도 협력했다. 또 팔로스항(Palos)에 사는 핀손 선장이 자기 소유의 선박인 산타마리아호와 함께 참가하였다.

 

콜럼버스가 탐험을 시작한 것은 당대 유럽인의 사명인 기독교의 전파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이 아니라 각종 향신료의 수입을 위한 인도의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금과 보물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사벨 여왕과의 계약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부의 축적이었다. 그는 총 4차례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했다. 첫 항해의 출범은 1492년 8월 3일이었으며, 같은 해 10월 12일에 현재의 바하마 제도(Bahamas)에서 과나하니 섬(추정)에 도달, 이 섬을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세주의 섬)이라 불렀다.

 

이어서 그는 쿠바·히스파니올라(아이티, Haiti)에 도달, 이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칭하였다. 이후 항해 도중, 산타마리아호가 파손되어 한 섬에 약 40명의 선원을 남긴 후에 이스파니올라(후 스페인)라고 이름지었다.

 

첫 항해 후 1493년 3월에 귀국한 콜럼버스는 왕 부부로부터 ‘신세계’의 부왕으로 임명됐다. 아메리카에서 그가 가져온 금제품은 전 유럽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일화도 생겨났다.

17척에 1,500명의 대선단에 의한 두번째 항해(1493년)는 콜럼버스의 선전에 따라 금을 캐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히스파니올라에 남겨 두었던 식민지 개척자는 인디오의 저항으로 전멸했으나, 콜럼버스는 이곳에 이사벨라 시를 건설하는 한편, 토지를 에스파냐인 경영자에게 분할해 주고 인디언에게는 공납(貢納)과 부역(경작과 금 채굴)을 명령했다.

 

그러나 금의 산출량이 보잘것없자, 항해자들은 인디언을 학대 ·살육하였으며 노예화하였다. 이 항해에서 에스파냐로 보낸 산물은 주로 노예였다.

콜럼버스는 1506년 죽을 때까지 자기가 발견한 땅을 인도라고 믿었다. 그의 서회항로 발견으로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인의 활동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이 탄생하는 근본적인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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