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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도 기독교도였다<7>북조선에서 생각하다

글쓴이 : 다나카 사카이 날짜 : 2012-10-01 (월) 22:57:29

북조선의 수도(首都) 평양(平壌)에는 지난 날 기독교의 교회(教会)가 많았고 ‘동양(東洋)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다. 김일성 주석의 모친(母親)인 강반석(康盤石)은 대대로 기독교 겨회의 목사(牧師)를 지켜온 가계(家系)의 사람으로 그녀 자신도 경건(敬虔)한 기독교 교도(教徒(였다.

평양 교외(郊外)에서 자란 김일성은 어렸을 적에 어머니와 외가 친척(親戚)을 따라서 평양의 교회에 갔으며 예배(礼拝)에 참가(参加)했다. 이런 경험(経験) 김일성의 인격형성(人格形成)에 영향(影響)을 주고 조선민족(朝鮮民族)이 자기들의 힘으로 고난(苦難)을 이겨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주체사상(主体思想) 등의 김일성의 혁명사상(革命思想)에는 그리스도교적인 발상(発想)이 존재하고 있다. 。

원래 북조선(北朝鮮)에는 기독교 교도가 많았고 기독교적인 요소(要素)가 들어 있는 혁명사상이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기 쉬운 이점(利点)도 있었다. 김일성의 모친은 북조선에서 대단히 존경(尊敬)받고 있다.

또 김일성이 어렸을 때 나가고 어머니의 일족(一族)이 목사(牧師)을 하고 있던 칠곡교회(七谷教会)는 한국전쟁때 파괴(破壊)되었으나 그후 김일성의 지시(指示)로 원래(元來)의 장소(場所)와는 다르지만 평양 시내에 재건(再建)되어 평양의 주요한 교회의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재일조선인(在日朝鮮人)의 지식인(知識人)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북조선측이 설정(設定)한 평양에서의 우리들의 일정(日程)에는 칠곡교회와 같이 평양의 주요한 교회인 봉수교회(鳳岫教会。烽燧教会?)의 일요예배(日曜礼拝)에 참가(参加)하는 것이 포함(包含)되어 있었다.

4월 29일 일요일(日曜日)의 오전(午前) 10시에 봉수교회에 가보니 목사가 우리들을 마중하고 그가 최초(最初)에 우리들 사회과학자(社会科学者)의 방문단에게 얘기한 것은 “사회과학자는 마으크스가 종교(宗教)는 미신(迷信)이라고 주장(主張)했다고 하나 마르크스가 쓴 모든 것을 읽으며 그것이 잘못 됐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마르크스의 남동생은 유대교의 랍비였다”고 말했다.

사회주의의 북조선 사람인데도 갑자기 사상적(思想的)인 도발적(挑発的)인 것을 말하는데 놀랐다. 놀라게 하는 작전(作戦)인지도 모르겠다.

 

▲ 봉수교회 목사(중앙 넥타이 차림)

넥타이와 양복 차림의 목사는 김일성(金日成) 뱃지를 붙이고 있지 앟았다. 교회의 신자들, 누구도 뱃지를 달고 있지 않았다. 밖에서는 뱃지를 달고 있으나 교회에 들어 갈 때는 뗀다고 한다.

신자중에는 노동당원(労働党員)은 없다고 한다. 노동당원은 무신론자(無神論者)가 아니면 안된다. 신자중에는 일당독재(一党独裁)가 아니라는 것을 형식적(形式的)으로 표시(表示)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회민주당(社会民主党)의 당원(党員)이 있다고 한다. 이 당은 종전직후(終戦直後)의 만들어졌을 때부터 기독교도가 많고 노동당의 정책을 전면지지(全面支持)하고 있다. 여성신자중에는 치마 저고리 차림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 교회 입구에서 치마저고리 차림의 간부신자들(중앙의 남성은 일본인)

봉수교회는 신축(新築) 건물이며 깨끗했다.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金大中 大統領)이 북조선과 화해(和解)하는 태양정책(太陽政策)을 개시(開始)한 후 한국(韓国)의 기독교 교회 기부(寄付)를 모아 2008년에 새 건물을 세웠다.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옛적의 교회건물이 파괴(破壊)된 후, 신자는 가정(家庭)에서 예배(礼拝)를 계속했다고 한다. 목사의 설교(説教)도 한국의 교회에서 설교와 비슷하다.

 

▲ 아름답고 깨끗한 봉수교회 외관

일제시대 한반도의 기독교 교도는 북측(北側)에 많았다. 그러나 한국전쟁때 남으로 도망(逃亡)가서 신앙(信仰)을 유지(維持)하고 있는 자가 많다. 한국의 기독교 교도는 북조선에 대해 특별한 감정(感情)을 가지고 있다.

남북(南北)의 교류(交流)를 초기(初期)에 연결한 것은 북조선(北朝鮮)에서 한국(韓国)에 도망(逃亡)가고 거기에서 미국(米国)에 이주(移住)한 기독교 교도였다고 한다. 기독교 관계(関係)에서는 통일교회(統一教会)의 문선명(文鮮明)(미국거주)도 평양을 방문(訪問)하여 김일성에게 “형님이라고 부르게 해주십시요”라고 부탁하여 친(親)하게 되었다고 한다.

통일교회계열의 영자신문(英字新聞)인 워싱톤타임즈는 공화당 우파계(共和党 右派系)이지만 북조선을 ‘악(悪)의 축(軸)'으로 부른 네오콘을 ’보수(保守)가 아닌 리버럴의 아류(亜流)’라고 하며 같은 공화당 우파이면서도 강하게 비판(批判)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 교도는 북조선에 기독교를 다시 넓히려고, 또는 북조선의 기독교 교도를 위해서 봉수교회의 건물을 기증(寄贈)했을 것이다. 반면(半面) 북조선측의 의도는 세계(世界)가 가지고 있는 “종교탄압(宗教弾圧)하고 있다”는 나쁜 이미지를 불식(払拭)하고 기독교 겨회가 자유로운 신앙(信仰)을 보증(保証)받고 있다는 증거(証拠)로서 한국측(韓国側)에서 제안(提案)받은 교회의 재건(再建)을 수락(受諾)한 것이리라.

<8편 계속>

글‧사진=다나카 사카이(田中宇) 번역=김정걸 민족사상연구회장

글쓴이는 도호쿠(東北)대학 경제학부 졸업. 교도(共同)통신사 기자 역임.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사 입사. 일본 최초의 본격 칼럼사이트 MSN저널 창간, 국제문제 칼럼을 집필. 현재 독립저널리스트로 매주 18만 명에게 이메일로 국제뉴스를 송신하는 다나카국제뉴스해설 사이트(www.tanakanews.com) 운영. 저서로<탈레반> <이라크><비미동맹(非米同盟)> <아메리카 초(超)제국주의의 정체> <망간파라다이스>등 15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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