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12 프로농구 외국인선수 드래프트가 열린 라스베가스에는 10개 구단 코칭스태프와 단장 등 많은 뉴스메이커들이 자리했지만 특별히 눈길을 끄는 두 사람이 있었다.
강현숙(57) 심판위원장과 주인탁(53) KBL 주치의가 그 주인공. 강현숙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한국프로농구사상 최초의 여성 심판위원장으로 선임돼 화제를 모았다. 고질적인 판정시비와 잡음들을 일소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으로 강구(講究)된 카드였다.
주인탁 박사는 KBL 주치의로 11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그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 동행한 것은 지난 2008년부터. 구단들의 전력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선수들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판별하기 위한 것이다.
강현숙 위원장은 여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남자농구의 만만치 않은 텃세를 거뜬히 이겨내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는 현지 심판외에도 KBL이 파견한 심판진 6명이 가세했다.
트라이아웃이 진행된 24일과 25일 강현숙 위원장은 종일 코트 한켠에서 경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그이의 타겟은 외국인선수들이 아니라 선수들의 파울을 집어내는 심판들이었다.
지난해 심판위원장을 제의받고 며칠을 고민했던 그이는 결심후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여자농구인으로 남자농구에서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한게 사실이죠.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저도 같은 농구인이잖아요. 개인적으로는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자로서, 이 나이에서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여자 농구인들을 위해서라도 롤 모델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단다. 거칠고 힘든 남자프로농구에서 자신의 역할에 따라 후배들이 자신감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현재 가톨릭정형외과 원장을 맡고 있는 주인탁 박사도 트라이아웃이 시작될때부터 바쁜 시간을 보냈다. 부상 및 수술 전력이 있는 선수들은 모두 그가 따로 면접을 하는 대상이었다. 그가 합류하기 시작한 2008년 이전에는 구단들이 종종 부상에서 완치되지 않은 선수들을 선발하는 경우가 있었다.
선수들의 문진에만 의존하는 주먹구구식의 행정때문이었다. 선수들이 자신의 부상상태나 수술전력을 정확히 언급하지 않을 경우 시즌에 들어가 도중하차하는 경우가 생기고 해당 구단들은 전력에 치명타를 입고 우승 도전에서 멀어지는 결과가 초래(招來)됐다.
주 박사는 “기본적인 건강검진은 물론 과거 병력까지 체크하고 있다. 최상의 신체조건을 갖춘 용병 선발에 힘을 보태 한국프로농구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트라이아웃 이틀째인 25일엔 한 선수가 상대 팔꿈치에 입을 맞아 임플란트 시술을 한 치아가 손상되자 주박사가 긴급히 출동해 상태를 확인하고 조언해주는 일도 있었다. 주 박사는 “내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선수 입장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도움을 주었다”며 웃었다.
주 박사는 대한정형외과 스포츠의학회 이사 및 학술위원을 맡고 있으며, 초음파학회 이사 및 정회원, 대한정형외과학회 학술상 심사위원 및 정회원, 대한족부족관절학회 간사 및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라스베가스=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강현숙 위원장 70년대 최고 포인트가드
강현숙 신임 심판위원장은 무학여고 출신으로 70년대 한국농구의 최고 포인트가드로 명성을 누렸다.
172㎝로 당시에는 큰 키의 포인트가드였던 강 단장은 실력은 물론 빼어난 미모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1970년대 여자농구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강 단장은 세계 최강 미국을 두 번이나 꺾은 주역이었고, 세계여자농구 베스트 5에도 두 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1979년 서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준우승을 차지할 때 주장으로 맹활약했다. 특히 1980년 불가리아에서 열린 프레올림픽 대회에서 한국은 예선 탈락했지만, 강 단장은 베스트 5에 뽑히기도 했다.
1980년 9월 홍콩 ABC 대회에서 중국에 31점 차 대승을 거둔 후 국가대표 유니폼을 반납했고, 그해 11월 소속팀에서 추계대회를 치르고 현역 은퇴한 후 결혼식을 올렸다.
2009년부터 대한농구협회 기술이사를 맡고 컴백한 그는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11년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 여자대표 선수단 단장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