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北朝鮮)이라는 호칭(呼称)에 대해 북은 “우리나라를 북조선이라고 부른다면 남측을 한국(韓国)이 아니라 남조선(南朝鮮)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하고 ‘조선’, ‘공화국(共和国)’이라고 무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朝鮮)은 일본어(日本語)로서는 조선반도(朝鮮半島)의 전체(全体)를 가리키는 말이다. 반도 전체를 영토(領土)라고 말하고 있는 북측의 주장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한국을 혐오(嫌惡)하는 사람은 북을 ‘조선(朝鮮)이라고 부르면 좋겠지만 나는 남(南 한국)도 좋아하기 때문에 북을 ‘조선’이라고 쓰고 싶지 않다. ‘공화국’ 역시 세계에 공화국이 무수히 있다는 것을 감안(勘案)한다면 역시 사용하고 싶지 않다.
나는 방문단의 다른 일원과 북의 안내인, 재일조선인과의 대화에서는 상대방의 기분(気分)을 나쁘게 하지 않도록 ‘조선’과 ‘공화국’을 혼합하여 쓰고 있다. 그러나 단원(団員)과 북조선(北朝鮮)의 안내인(案内人), 재일조선인(在日朝鮮人)과의 대화에서는 상대방의 을 나쁘게 하지 않도록 '북조선(北朝鮮)'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朝鮮)'과 '공화국(共和国)'을 혼합(混合)하여 쓰고 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기사를 쓸 때에는 이해하기 좋다는 것을 고려(考慮)하여 ‘북조선’을 쓰는 것을 양해를 구한다.
일반적인 기사에서는 짧게 하기 위하여 ‘북’을 사용했으나 앞으로의 기사에서는 북조선측의 기분도 배려하여 ‘북’을 가급적 쓰지 않도록 했다.
북조선은 냉전시대의 종막이후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이 단절되어 심한 경제난에 봉착한 후 94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과 체결한 핵문제의 처리방법에 관한 합의에 기초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여 전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와 관련 미국은 북조선에 원유(原油)를 공급하고 있었다.
북조선은 국제기관을 통해 기근에 대한 인도적 지원으로 식량도 받았다. 2001년에 부시정권의 미국은 북조선에 대한 적대시를 강화하여 원유공급을 중단하고 동시에 북조선이 일으키는 문제의 해결을 중국에 떠맡겨 중국으로 하여금 6자회담의 주최토록 하였다.
미국을 대신해서 중국이 원유와 식량을 지원하게 되어 김정일 총서기가 몇 번씩이나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에 최대의 경의(敬意)를 표했다. 북조선은 2002년 7월에 자유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緩和)하여 사회주의식 계획경제를 후퇴시키는 ‘7.1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과 미국의 분석자의 다수가 북조선도 중국식 시장경제정책을 도입한다고 생각했다. 장성택(張成沢)과 김경희(金敬姫)라는 부부가 경공업주도의 경제강화책을 담당하며 김정일에 동행하여 중국을 방문하게 되어 지난해말에 김정일이 급서한후 부부는 김정은의 교사 역할을 하면서 북조선의 경제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보고 북조선이 중국의 권유(勧誘)에 따라 사회주의경제를 포기하고 중국식 시장경제정책(개혁개방)을 추진(推進)할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평양에서 내가 참가한 방문단과의 회담에 응한 사회과학자협회와 김일성종합대학의 경제학자, 법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전원이 “시장경제정책은 도입되고 있지 않다”, “고난의 행군에서 탈출하여 계획경제정책에 따라 배급할 수 있는 품목을 증가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시장경제정챡의 도입을 요구받고 있지는 않다. 중국에는 중국의, 우리나라에는 우리식의 방법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계획경제에는 배급소를 통해서 나오는 배급과 국영상점을 통해서 아주 저렴한 공정가격에 의한 판매만 존재하나 평양에는 ‘통일거리시장’ 등 개인이 상점을 내고 시장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자유시장이 존재한다. (방문단이 견학을 희망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북조선 정부는 자유로운 시장활동을 용인(容認)하고 있으나 북조선의 학자들은 “국가의 생산력은 향하고 있으나 아직 국가가 인민에게 물자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기 때문에 과도적으로 시장의 존재를 허용하고 있다. 생산력이 증가하여 배급이 완전하게 되면 시장은 축소(縮小)할 것이다”라고 설명(説明)했다.
중국에서도 현재는 원칙만 사회주의국가도 공식론에서는 “시장경제는 과도적인 조치”라는 변명을 하고 있으나 이미 배급(配給)을 그만둔지 오래다. ‘과도적인 조치’는 원칙뿐인 완전한 공론(空論)이다.
대조적으로 북조선은 냉전후의 고난의 시대에서 탈출하여 경제가 향상하면 곧 즉시로 실제의 배급을 재확대하고저 하고 있다. 19 품폭의 가장 기초적인 식량과 의료품의 배급조차 제대로 완전하게 못하고 있으나 방금 이 세계에서 사회주의의 계획경제를 진심으로 강화하려는 나라는 북조선만이다.
이것은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미치고 혼이 나간 바보라고 생각되고 있으나 나는 북조선의 이와 같은 옹고집에 놀라뿐이다.
(중국은 78년부터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며 베트남도 중국의 성공을 보고나서 85년에 도이모이-개방-을 개시하여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따라갔다. 미얀마와 베네수엘라도 국가통제형의 시장경제이다. 쿠바는 가까이에 적을 필요로 하는 미국에 의해 제재(制裁)를 받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나는 이번에 방문하지 않았으나 북조선과 중국은 국경(国境)을 흐르고 있는 압록강(鴨緑江)에 있는 이화도(威化島와 황금평도(黄金坪島)라는 북조선령 두개의 강 가운데 생긴 섬에 중국기업이 공장을 만들고 북조선 사람들을 공원(工員)으로 고용(雇用)하는 국제공업단지로 만드는 것을 결정하여 작년(昨年) 5월에 장성택(張成沢) 등 중조(中朝)의 정부요인도 참가하여 기공식(起工式)을 대대적으로 거행(擧行)했다.
공업단지의 개발은 중국기업이 하고 중국측은 압록강의 교량(橋梁)도 건설했다. 중국이 80년대이후 홍콩(香港)에 인접(隣接)하고 있는 심(深)천을 공업단지로 개발, 생산기술과 공장운영의 노하후를 체득(体得)하고 시민경제책을 성공시킨 것처럼 중국은 위화도 등의 공업단지를 통해서 북조선에 시장경제를 침투(浸透)시키고자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작년 5월의 기공식후 공업단지에 공장이 건설됐다는 정보는 전혀 없다. 기공식의 회장을 만들기 위해 반입(搬入)된 건설기계가 식의 직후에 철거(撤去)되었다는 보도(報道)도 있다. 평양의 학자는 위화도 등의 현상에 대해서 “중국측과 교섭(交渉)을 계속하고 있는 단계(段階)로서 계획 자체는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북조선측이 시장경제를 도입( 導入)하고 싶지 않으면 공원의 고용계약같은 면에서 중국측의 제안(提案)을 거부(拒否)하여 교섭(交渉)이 연장되어 공장의 건설을 못하고 있다해도 이상한 것은 없다.(중조경제협력지역인 황금평은 개발의 동태가 보이지 않는다.)
북조선은 중국으로부터 원유(原油)와 식량(食糧)을 지원(支援)받고 있는 관계로 표면으로는 중국이 요구하는 시장경제의 도입에 찬성(賛成)하는 태도(態度)를 취하고 공업단지의 기공식까지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에 대해 면종복배(面従腹背)로 시장경제의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 중국은 북조선을 산하(傘下)에 넣고 종속(従属)시키는 것을 원하고 있으나 북조선은 원조(援助)만 받고 한편에서는 완강하게 자국(自国)의 방법을 밀고 나가고 있다.
정치적인 도리로 본다면 북조선은 중국에 대해 강점(強点)을 가지고 있다. 본래 사회주의국이라면 자본주의적인 현상인 시장경제의 존재를 가급적으로 부정(否定)하고 계획경제의 유지발전(維持発展)에 노력(努力)하는 것이 정통적인 자세(姿勢)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観点)에서 본다면 중국은 올바르지 못하고 북조선이 정통이 된다. 그런 관계로 중국은 시혜(施惠)를 주는 측인데도 시혜를 받는 측인 북조선에게 강하게 말을 못하고 북조선이 “중국에는 중국의 방식이 있는 것은 알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사회주의(社会主義)의 정통(正統)을 지키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면 정면으로 반론(反論)을 할 수 없게 된다. 북조선이 자국을 정치강국이라고 자찬(自賛)하는 것은 이런 점(点)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중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은 모택동(毛沢東) 시대에 계획경제를 도입하여 기근(飢饉)과 생산력의 저하(低下)를 초래하는 등의 실패(失敗)를 야기하여 결국 모택동이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일으키고 정치와 사회가 대혼란(大混乱)이 되고 실질적으로 중국이 사회주의에 실패한 후였다.
중국은 문혁(文革) 후 사회주의정책이 좌절(挫折)한 상황(状況)이었으므로 모택동 사후(死後)에 권력을 잡은 등소평(鄧小平)이 시장경제정책을 도입하기가 용이했다고 말 할 수 있다.市場経済政策을 導入하기가 용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이 시장경제책을 도입한 것은 미중국교가 정상화한 것과 같은 시기로서 중국은 자본주의진영의 패권국(覇権国)인 미국의 축복(祝福)을 받으면서 자국경제를 시장화(자본주의화)했다.
중국이 국내정책의 좌절을 경험(経験)하고 사회주의계획정책을 단념하여 미국의 축복을 받고 시장경제정책으로 전환(転換)한 것과 대조적으로 북조선은 냉전(冷戦) 후 94년의 미조(米朝)의 기본적인 합의 등의 예외(例外)가 있었으나 미중러 등의 국제사회로부터 ‘붕괴(없어져버려라’로 무시당한 상황중에서 건국이랴 가장 고난(苦難)한 90年代를 모든 힘을 다 써서 자력으로 극복하여 국내적으로는 좌절을 경험하지 않고 2000년 이후에는 경제가 차차로 편하게 되었다.
좌절후에 시장경제를 도입하였던 중국으로부터 “귀국(貴国)도 하시면 어떻습니까?”라고 권유(勧誘)를 받았으나 북조선은 정중한 자세(姿勢)를 취하면서도 내심(内心)으로는 “우리나라는 좌절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5편 계속>
글‧사진=다나카 사카이(田中宇) 번역=김정걸 민족사상연구회장
글쓴이는 도호쿠(東北)대학 경제학부 졸업. 교도(共同)통신사 기자 역임.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사 입사. 일본 최초의 본격 칼럼사이트 MSN저널 창간, 국제문제 칼럼을 집필. 현재 독립저널리스트로 매주 18만 명에게 이메일로 국제뉴스를 송신하는 다나카국제뉴스해설 사이트(www.tanakanews.com) 운영. 저서로<탈레반> <이라크><비미동맹(非米同盟)> <아메리카 초(超)제국주의의 정체> <망간파라다이스>등 1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