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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치범수용소 또 생겼나?” WSJ

글쓴이 : 임지환 날짜 : 2013-01-22 (화) 07:50:14

 

 

최근 북한의 인권문제가 도마위에 오른 가운데 정치범(政治犯)수용소(收容所)가 추가로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월스트릿저널(WSJ)은 21일 위성사진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 “캠프14로 알려진 함경북도 개천의 정치범수용소 옆에 펜스형태의 둥그런 모양이 새롭게 발견됐다”면서 “이는 기존 수용소를 확장했거나 새롭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위성사진전문가 커티스 멜빈은 자신의 블로그에 “구글어스가 지난 18일 북한의 위성이미지들을 업데이트한 것을 2009년 것과 비교분석한 결과 캠프 14주변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사진=NK Econ Watch.com/Google Earth>

 

캠프14는 탈북자 신동혁씨를 통해 잘 알려진 곳이다. 1982년 정치범수용소 내에서 태어나 23세에 탈출할 때까지 수용소에서만 지낸 신씨가 증언한 정치범수용소의 끔찍한 실태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인 블레인 하든이 지난해 출간한 ‘14호 수용소로부터 탈출’을 통해 국제적인 조명을 받았다.

 

WSJ는 멜빈의 구글어스 자료가 폐쇄적인 북한내부의 사정과 변화를 알려주는 설득력있는 정보라고 전제하고 북한의 시와 읍 등지에 시장이 만들어진 것도 그같은 자료분석의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멜빈은 최근 몇달간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에 캠프22로 불리는 정치범수용소의 폐쇄설에 대한 분석을 면밀히 하고 있다. 북한에는 산악지대에 6개의 대형 정치범수용소가 있다. 일부는 외형이 미국의 대도시보다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저널은 “이들 수용소엔 범죄를 저지른게 아니라 북한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10만명에서 20만명이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임지환특파원 jhlim@newsroh.com

 

<꼬리뉴스>

 

신동혁, 정치범수용소 탈출한 유일한 탈북자

 

신동혁(申東赫 32)은 개천 정치범수용소를 탈출한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북한인권 운동가이다. 신동혁은 14호 관리소에서의 생활과 탈출 경험을 외부 세계에 증언했고, 이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實相)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다음은 위키피디아의 인물정보.

 


 

신동혁은 수용소에서 태어나 삼엄한 경비를 뚫고 탈출에 성공한 유일한 탈북자로 2012년에 그의 경험을 토대로 한 영문판 수기(Escape from camp 14)가 출간 됐다.

 

신동혁은 1982년 개천 정치범수용소 내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수용소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대가로 주어지는 "표창결혼"으로 신동혁을 낳았지만 수용소의 다른 구역에 거주하는 아버지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순탄하지 않아서 그는 어머니를 단순히 "먹을 것을 위한 경쟁자"로만 보았고, 신동혁의 어머니는 그를 심하게 때리기도 했다.

 

14살이 되었을때, 신동혁은 어머니와 형의 수용소 탈출 계획을 엿듣게 되고 이를 몰래 수용소 간수에게 알렸다. 가족을 밀고(密告)한 대가로 포상을 기대했던 그에게 수용소 간수들은 정보를 얻기위한 심문(審問)과 고문(拷問)을 자행했다.

 

고문과정에서 신동혁을 뜨거운 불위에 매달려졌고 간수들은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꼬챙이로 배를 찔렀다. 고문의 후유증(後遺症)으로 그는 등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많은 흉터를 얻었다.

 

1996년 11월 29일, 신동혁의 형과 어머니는 수용소 탈출을 시도한 이유로 공개 처형됐고 그는 이것을 직접 목격했다. 가족의 탈출 계획으로 고초(苦楚)를 겪은 신동혁은 그들에 대한 반감으로 처형을 지켜보면서도 슬퍼하지 않았지만, 이때의 기억은 탈출 이후 그에게 짐이 되었다.

 

수용소내의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신동혁은 평양에서 14호 관리소로 끌려오게된 40대의 박씨 성을 가진 수감자를 알게되고, 그와 친해진다. 박은 신동혁에게 관리소 밖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신동혁은 특히 그가 경험에 보지 못한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로 만든 음식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수용소 내의 음식은 옥수수, 배추, 소금으로 만든 죽과 때때로 잡히는 들쥐와 곤충등이 전부였다.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수 있다는 기대에 신동혁은 박과 수용소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이들의 계획은 신동혁이 수용소를 빠져나갈 길을 안내하고, 북한을 벗어나게 되면 박이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2005년 1월 2일, 신동혁과 박은 수용소 철책 부근의 작업에 함께 투입되었다. 간수들의 순찰간격이 길다는 것을 눈치챈 둘은 간수들이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탈출을 감행했다.

 

박이 먼저 철책 밑을 통과하려고 시도했지만,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책에 몸이 닿아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신동혁은 박의 시신을 방패로 삼아 철조망을 통과할 수는 있었지만, 다리가 걸리는 바람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된다.

 

수용소를 탈출한 신동혁은 인근 농가로 들어가 낡은 군복으로 갈아입는다. 군복은 신동혁의 신분을 군인으로 위장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는 필요한 식량을 훔치면서 북쪽의 국경지대로 다가갔다.

 

수용소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동혁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탈출후 민가에서 훔친 쌀 한가마니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이것으로 간식과 담배를 샀다. 중국과의 국경에 도달한 신동혁은 담배와 훔친 음식으로 국경 경비대원을 매수하고,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중국을 떠돌며 노동일을 하던 신동혁은 상하이의 한 음식점에서 한 기자와 우연히 만난다. 신동혁의 탈북 경험이 가진 가치를 알아본 기자는 주중 한국 대사관에 보호를 요청하고, 신동혁은 곧 한국으로 보내지게 된다.

 

신원 확인을 위한 한국 정부의 심사를 거친 신동혁은 그의 경험을 토대로한 수기를 작성하고, 그의 이야기가 언론에 알려진다. 후원자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신동혁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했다. 이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신동혁은 북한 수용소 철폐(撤廢)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동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블레인 하든은 신동혁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2012년 "14호 수용소로부터의 탈출: 북한에서 자유 세계로 탈출한 한 탈북인의 놀라운 여정"을 출판했다. 자신의 자서전 성격의 이 책에서 신동혁은 어머니와 형의 처형 과정에서 그가 숨겨왔던 밀고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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