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기자회견이 열린 월터 리드 씨어터는 뉴저지 출신의 대극장주 월터 리드(Walter Reade Theater)를 기념하여 명명된 극장으로 앨리스 털리홀과 줄리아드 스쿨과 한 건물로 연결돼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유독 많이 찾는 곳이다.
오후 1시30분 시작된 기자회견은 고란 토팔로비치 집행위원장이 마치 무대 인사하듯 이준익 감독을 첫 머리로 4인의 감독을 차례대로 호명하는 순으로 시작됐다.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자리에 앉은 감독들은 토팔로비치 위원장의 영화제 소개에 이어 인사말을 하는 순서에서 “영화훈련이 잘 되어 있는 뉴욕의 관객들이 인상깊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익 감독은 “한국영화에 대한 미국관객들의 인식이 높은 것에 상당히 놀라웠다”며 “내가 만든 영화제목들과 인물들에 대해 소상히 알고 질문이나 코멘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같아 아시아영화제가 한국영화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덧붙였다.
반면 류승완 감독은 “한국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한 내가 만든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팬을 보면 나 역시 즐겁지만,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믿고 게을러지기 쉬운 감독이 될까 두려워 관객의 반응에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해 기자회견장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데뷔작 ‘해결사’가 뉴욕에서 상영되어 영광”이라는 권혁재 감독은 “뉴욕에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뉴욕에서 직접 관객을 만나며 피부로 느끼는 한국영화의 입지는 사뭇 다르고, 특히 뉴욕에 사는 동포들이 말하는 내 영화에 대한 소감이 한국의 관객들과 다른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고”고 운을 뗐다. 그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하고도 수많은 요인들이 섞여 있는만큼,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자세를 다시 익히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화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진출하는 한국영화인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현재 한국영화계의 동향에 대한 4인의 감독들의 의견도 주목할만 했다.
“칸느, 베니스, 베를린 등 셰계적으로 손꼽히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다, 또는 아카데미상 외국영화부문에 한국영화가 선정된다는 화려한 부분에 몰두하는 것 자체가 웃지 못할 비극”이라고 의견을 말한 류승완감독은 “각 영화제가 갖고 있는 영화제의 본질에 대한 파악하는 한편 아카데미상에 내재되어 있는 미국영화산업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추격자,’ ‘황해’ 등의 영화로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은 나홍진 감독은 “결국 영화는 감독의 창작활동의 산물이므로 어느 곳에 있든 감독으로서 창작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독들의 의견에 대해 영화제 고란 토팔로비치집행위원장은 “미국에서 러브 콜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업성에 집착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며 “영화사에서 보면 대가들은 대부분 자국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특히 홍콩영화는 헐리우드와 다른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홍콩영화의 색깔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4인의 감독들은 한국영화에 대해 비교적 ‘교육(?)’이 잘 되어 있는 관객들에게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계 각지에서 활발하게 상영되고 있는 한국영화의 위상에 자신감을 얻은 듯 감독들은 한결같이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치밀하게 파고들며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고통스러울만큼 힘들다”고 토로한 나홍진 감독의 말처럼 과연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한국영화감독들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화두가 될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를 생각게 한 기자회견이었다.
○…한편 이날 오후 8시부터 시작한 리셉션에는 약 2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盛況)을 이뤘다. 디너로 한국음식뷔페가 마련된 리셉션장에서 고란 토팔로비치 집행위원장은 “다운 타운에서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이 넷이 만든 작은 영화제엿던 뉴욕아시안영화제가 올해로 10살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해마다 풍성한 잔치로 성장하여 이제는 링컨센터 월터리드극장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것이 너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뉴욕아시안영화제의 하일라이트인 한국영화상영에 대해 한국영화계와 한국영화의 질적인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한국영화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리셉션이 끝나고 공식폐막 작품 '황해'가 오후 9시에 상영되었지만 관객들은 400석 극장을 꽉 채웠다. 나홍진 감독은 “영화를 보러 늦은 밤에도 와 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며 “영화상영 전에야 비로소 프린트에 영어 자막이 없음을 알게 되어, 현재 파워 포인트로 영어자막을 만들고 있다”고 해프닝을 알리기도.
지나치도록 잔인한 살인과 격투로 영화 상영 중간중간 비명소리가 났으나,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진 질의응답에도 고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만큼 영화 ‘황해’에 대한 열기로 뜨거웠다. 관객석에는 김영목 뉴욕총영사와 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 찰스 암스트롱 교수가 나란히 앉아 나 감독의 답을 경청(傾聽)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뉴욕 아시안영화제에 한국영화 상영과 감독초청을 적극 후원한 뉴욕 한국문화원의 이우성 원장은 “뉴욕에 한국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음악, 영화, 공연, 그림, 디자인, 공연 등 한국예술의 모든 장르가 함께 어우러져 힘을 합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 원장은 “한국영화의 파급효과가 의외로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속도가 느린 것에 고민하고 있다”면서 “우선 한국영화 매니아층을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뉴욕한국문화원이 뉴욕아시안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보급에 매진함으로써 한국영화를 알리는 사업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뉴욕한국문화원은 한국영화를 홍보하는 영화제를 후원하고, 트라이베카극장에서 한국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독립영화제를 주최하는 등 한국영화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뉴욕=한동신특파원 opwo@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