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도청사건으로 폐간된 ‘뉴스오브더월드’ 관련, 영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디어황제’ 루퍼트 머독(80)이 크림파이를 얼굴에 뒤집어쓸뻔한 위기를 아내 등 두명의 여성덕분에 모면(謀免)해 화제가 되고 있다.
머독은 19일 의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는 도중, 한 남성이 손에 크림파이를 담은 종이접시를 들고와 얼굴에 덮어 씌우려는 순간, 중국계 아내 웬디 머독(42)과 법률 자문역 제닛 노바(46) 등 두 여성이 육탄으로 방어해 큰 수모(受侮)를 피할 수 있었다.
▲ 한 남성이 크림파이를 들고 접근하자 재닛 노바가 뛰어들어 저지하는 장면을 연속사진으로 소개했다. 이어 뒤에 있던 머독의 부인 웬디가 합세해 협공하고 있다.
문제의 남성을 먼저 방어한 것은 재닛 노바. 머독의 뒷줄에 있던 노바는 이 남성이 크림파이를 들고 머독에게 접근하자 바로 일어서 몸으로 저지했다. 이어 그 뒤에 있던 머독의 아내 웬디가 일어나 몸싸움을 벌였고 왼손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덕분에 머독은 크림파이를 양복 상의에 묻혔을 뿐 더이상의 봉변(逢變)은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남성은 웬디의 역공으로 크림파이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해프닝은 청문회를 중계하던 영국 TV를 통해 세계 각국의 수백만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네티즌들은 즉각 이 사실을 트위터로 전달하며 머독 부인의 민첩한 ‘남편구하기’에 경탄을 감추지 못했다.
현장에 있던 영국 노동당의 톰 왓슨 의원은 소동이 끝난 직후, “미스터 머독, 당신 부인은 아주 멋진 왼손 훅을 가졌군요”하고 농담섞인 찬사를 보냈다. CBS 이브닝뉴스의 캐이티 쿠리 앵커는 트위터를 통해 “와우, 웬디 머독을 ‘타이거 마더’라고 불러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청문회장의 루퍼트 머독. 뒷줄 가운데 여성이 머독의 부인 웬디다. 사진은 NY타임스
청문회장 경비를 맡은 경찰이 무색하게 기민(機敏)한 대응을 한 웬디 머독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웬디는 머독의 세 번째 아내로 중국 광주(廣州) 출신이다. 2000년 미국에 유학온 그녀는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머독 소유의 방송사인 홍콩의 스타TV에서 일하다 머독을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두 딸 그레이스와 클로에와 함께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살고 있는 그녀의 호화 아파트는 한때 로렌스 록펠러가 살던 곳으로 4400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웬디가 머독의 회사에서 맡은 공식직함은 없지만 머독의 자문역으로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머독에게 크림파이를 뒤집어 씌우려 한 조나단 메이바울스는 경찰조사결과 ‘조니 마블스’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무명의 코미디언으로 밝혀졌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머독 구하기 일등공신은 법률자문역 제닛 노바
뉴욕타임스는 웬디의 ‘남편 구하기’를 놓고 연이틀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타임스는 20일 첫 보도에서 ‘민첩한 수호천사 미디어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주먹을 날리다’라며 다소 선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타임스는 웬디에 앞서 침입자를 저지한 제닛 노바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다음날인 21일 보도에서 ‘침입자를 저지하고도 찬양받지 못한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제닛 노바의 활약상을 전했다.
“그녀는 침입자가 머독에게 접근하는 순간 용수철 튀듯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저지하며 자신의 보스를 방어했다. 이어 머독의 부인 웬디가 합세해 주먹을 날렸다.”
역시 뉴욕에 거주하는 제닛 노바는 프린스턴과 콜럼비아 법대 출신 변호사로 97년 뉴스코프에 입사했다. 머독을 보호하는데 혁혁(赫赫)한 공을 세웠지만 정작 네티즌들은 그녀에 주목을 하기보다는 머독의 부인 웬디에게 집중됐다.
네티즌들은 웬디의 남편구하기 작전을 빗대 “내가 웬디할거야(I'll wendie you)”, “펀치를 날린 여인(the woman behind the punch)”이라는 말을 트윗하며 찬사를 보냈다.
비록 네티즌들의 찬사는 받지 못했지만 이번 공으로 노바에 대한 머독의 신임은 덕욱 돈독해질 전망이다.